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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번역] 드레드노트 전함까지의 군함의 역사 (The Roots of Dreadnought) - Armchairgeneral.com

박용수 2014. 10. 27. 17:01

< 원문출처 : (http://www.armchairgeneral.com/the-roots-of-dreadnought.htm) >

 

 


드레드노트 전함까지의 군함의 역사 (The Roots of Dreadnought)

 

 

 

(1906년, 항해 중인 HMS 드레드노트 함(HMS Dreadnought)의 모습. 미해군 역사 센터 소장본.)

 

 세계사에서 가장 커다란 전환점 중의 하나는 1500년 무렵에 "전장범선"("full-rigged" sailing ship)이 서유럽 해안에 출현한 것이다.. 이 종류의 선박은 대포(cannons)로 무장했으며, 일련의 돛(banks of sails)에 의해 추진되고, 대양에서의 폭풍에서도 견뎌낼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었다. 이 선박은 고대시기 지중해에서 개발되어 사용되어오던 노에 의해 추진되는 갤리선(galley)을 압도하였다. 갤리선은 대서양과 같은 험한 바다에서는 대단히 부적합한 선박이었다.

 

 이러한 범선류는 18세기 전반기에 2종류의 목제 군함(wooden men o' war)이 등장하면서 그 절정기를 맞게 된다. 즉, 2~3층의 갑판 위에 64~100문의 대포가 설치된 "전열함(ship of the line)"과 단층 갑판 위에 26문의 대포를 설치한 보다 가볍고 빠른 "프리깃 함(frigate)"의 2종류이다.

 

(트라팔가 해전에 참가한 HMS 빅토리 호(HMS Victory)의 모습. J.M.W. 터너 그림. 미국 국회도서관 소장)

 

 이들 선박들은 함체 크기와 대포 무게간의 적절한 균형을 갖추고 있었다. 목제 범선은 약 3세기 반 동안 바다를 지배하게 된다. 어떤 배의 경우에는 시골 장원(country mansions)보다도 크기가 컸으며, 400명 이상의 승무원을 탑승시키기도 하였는데, 이러한 숫자는 당시 유럽의 웬만한 마을 하나의 인구보다도 많은 것이었다. 호라시오 넬슨 제독(Admiral Horatio Nelson)의 기함이었던 빅토리 호(Victory)는 1805년의 트라팔가 해전(Battle of Trafalgar) 당시 100여명의 승무원을 탑승시키고 있었으며, 크기는 170 X 53 피트에 달했다.

 

 19세기가 되면 증기선박이 범선류를 대체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1862년 3월 8일, 남부연합군의 철갑선(ironclad) 버지니아 호(Virginia)(원래 명칭은 매리맥 호(Merrimac))가 버지니아주 햄튼 로즈(Hampton Roads)에서 5척의 북부연방군 군함을 격침 혹은 좌초시키면서, 목제 군함의 시기는 종말을 고하게 된다. 버지니아 호는 그 다음날 "뗏목 위의 치즈통(cheesebox-on-a-raft)" 모습을 하고 있던 북부연방의 철갑선 모니터 호(Monitor)와 교전하여 비기게 된다.

 

 미국 남북전쟁이 끝난 후, 군함들은 버지니아 호의 항양성 함체(seagoing hull)와 중장갑(heavy armor)을 본따고, 모니터 호의 선회포탑(revolving turret)과 대형 함포(massive gun)를 조합한 형태로 발전하게 된다. 그리고 "혼성포대(mixed-battery)" 전함이 표준으로 자리잡게 된다. 1891년을 예로 들면, 미 합중국에서는 3척의 11,700톤, 15노트 속력의 전함을 건조하게 되는데, 각각은 2문의 13인치 선회포탑과 4문의 8인치 선회포탑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 그림에 묘사된 모니터호와 매리맥 호간의 해전은 남북전쟁 당시 벌어진 철갑선간의 최초 해전으로서, 1862년 3월 9일, 버지니아 주 햄튼 로즈 근방에서 발생하였다. Currier & Ives 작품. 미국 국회도서관 소장.)

 

 20세기에 들어 보다 강력한 화약과 보다 정밀한 조준 방법이 개발됨에 따라, 장거리 대구경포를 장비한 전함이, 기존의 혼성포대를 장비한 군함이 대응가능한 거리보다 훨씬 먼 곳에서 이들 함선들을 격침시키거나 대파시킬 수 있다는 점이 명백해지게 된다. 이러한 사실과 함께 신형 터빈 엔진이 도입되면서, 영국 왕실해군은 1906년에 드레드노트(Dreadnought)를 생산하게 된다. 이 선박은 10문의 12인치 함포를 가졌고, 속도는 21노트를 낼 수가 있었다. 드레드노트의 등장으로 기존의 모든 전함들은 구식이 되어 버렸고, 이와 함께 보다 크고 장거리 사거리를 갖는 함포를 갖는 전함을 건조하는 해군 건함경쟁이 촉발되게 된다.

 

 이후 전함의 전성시대는 항공모함의 갑판 위에서 떠오른 항공기의 엔진소리와 함께 종말을 고하게 된다.

 

출처 : FocusWar
글쓴이 : 운영자-박용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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