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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번역] 두번째 베를린 장벽(The Second Berlin Wall), 2008, SSI Op-Ed

박용수 2014. 10. 27. 17:12

< 원문출처 : The Second Berlin Wall (http://www.strategicstudiesinstitute.army.mil/pubs/display.cfm?pubID=864) >

 



두번째 베를린 장벽(The Second Berlin Wall)

 

레이먼드 밀런 중령 (Lieutenant Colonel Raymond Millen)
전략연구소(Strategic Studies Institute)

 

 

 항상 있는 단조로움 속에서도,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업무분담 문제야 말로 나토에서의 가장 최근의 독특한 문제거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프가니스탄에 더 많은 병력과 자금을 투입하기 꺼리는 유럽측의 태도는, 순전히 전략에 있어서의 의견 불일치라기 보다는, 과거 연합군(Alliance)의 탄생 시기로부터 거슬러올라가는 일련의 태도들과 관계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냉전(Cold War)이 시작되었던 시기, 연합군에 있어서의 군사적 기여에 관하여 미합중국과 유럽 동맹국들 사이에 있었던 치열한 논란에 관해서 떠올리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트루만 행정부에서는 유럽 열강들이 일단 경제를 재건하기만 하면 과거의 군사력도 재건할 것이라고 기대하였습니다. 그러나 미국의 안보 보장을 믿지 못했던 유럽의 정치가들은, 미국으로부터의 유형적인 개입이 없는 한, 충분한 군사력을 양성하는 것을 거부하였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 진전이 없자, 미국측은 양보하였고, 1949년 몇몇 사단들을 나토에 전개시킵니다. 그렇지만 유럽측의 반대급부적인 약속은 실현되지 않았습니다.

 

 집단안보(collective defense) 및 미국의 핵우산(U.S. nuclear umbrella) 속에서 보장된 안보를 통하여, 유럽 국가들은 국내총생산(GDP)의 상당부분을 잡아먹는 사회복지 프로그램에 점점 더 많이 투자하게 됩니다. 그리고 사회복지 국가들은 탐욕스럽게 제멋대로가 됩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흥미로운 행동패턴이 지배하게 됩니다. 집단안보의 부담을 공평하게 분담하는 대신, 회원국들은 이러한 부담을 조금씩 다른 회원국들에게 떠넘기고자 시도하게 됩니다. 당시 세계 양강 체계의 한 초강대국이었던 미국은, 유럽의 평화라는 보다 큰 목표가 손상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에 단지 불만을 털어놓는 외에는 그저 용인하였던 것입니다.

 

 미국이 이러한 종류의 행동에 반발하였다 한들, 어떤 것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철의 장막(Iron Curtain) 서쪽에 있는 모든 국가들은, 이들이 나토 회원국이건 아니던 간에, 안보라는 공동재를 향유하였던 것입니다. 미국은 이러한 안보라는 공동재를 어느 특정국가만 향유하지 못하도록 할 수는 없었습니다. 따라서 동맹국들이 미국의 안보정책에 부합하는 정도는, 미국의 리더십에 대해 인정하는 정도와 미국의 협상력(재정적 혹은 명예적 인센티브 등) 활용에 따라 달라졌습니다. 어쨌든 이러한 행동은 그냥 무시하는 것이 편리했습니다.

 

 냉전의 종식은 대서양 양측에 다소 다른 의미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유럽인들에게 있어서 이는 평화라는 배당금을 받을 기회였으며, 국내총생산의 2퍼센트 이하로 국방비를 급격히 축소시키는 형태로 실현되었습니다. 아마도 이러한 방종함은 대부분의 현실주의자들이 예측했던 것처럼 미국이 나토로부터 빠져나왔더라면 나타나지 않을 현상이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미국은 유럽으로부터 또다시 안보 딜레마가 발생하는 것을 두려워하였고, 통일 독일을 나토에 묶어두려고 하였으며, 또한 중앙 및 동유럽 국가들의 행동을 달래는 데에 나토로의 가입 전망을 활용하고자 하였습니다. 이러한 정책 노선들에 있어서, 미국은 분명 성공적이었습니다. 그러나 나토의 지속적인 존재의미에 대한 의문에 대응하기 위하여, 연합국(Alliance)들은 자신들의 이야기에 집단안보 임무(collective security mission)을 추가시킵니다. 유럽인들이 집단안보라는 것이 갖고 있는 의미를 이해하고 그랬던 것인지, 아니면 이것이 실현될 것이라고 믿지 못하면서도 그냥 따라갔을 뿐인지는 각자의 상상에 맡겨야 할 것입니다.

 

 유럽에 대한 미국의 안보 개입 확대가 확고해지고, 1993년 유럽연합(EU)이 탄생하면서, 유럽 정치인들 사이에는 외교 및 안보 정책에 있어서의 다소 비전통적인 견해가 퍼지게 됩니다. 이 새로운 정책의 중심부에는 안보와 안정을 뒷받침할 국제적인 기구나 정권, 또는 어떤 강제적인 장치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이론적으로는, 이러한 접근법이 높은 수준의 군사적 준비태세 필요성을 감소시켜 주었습니다. 따라서 훨씬 많은 수준의 예산을 사회복지 프로그램에 투입할 수 있게 하였으며, 따라서 모든이들을 - 미국을 제외하고 - 만족시켜 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서유럽 정치인들에게는 크게 유감스럽게도, 홉스의 자연국가(Hobbes' state of nature)는 보스니아, 크로아티아, 코소보에서 있었던 유화정책에 찬물을 끼얹었습니다. 이 전쟁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나토의 후원을 받은) 미국의 개입을 필요로 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유럽 정부들은 화려한 수사 속에서 군사적 역량을 강화하겠다고 다짐하였고, 이는 우선 방위능력구상(Defense Capabilities Initiative, DCI) 및 프라하 역량강화 공약(Prague Capabilities Commitment, PCC)을 탄생시키고, 이어서 유럽연합(EU)의 지상목표로 유럽신속군(EU Rapid Reaction Force, EURRF)을 창설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유감스럽게도 유럽 국가들은 DCI/PCC라는 목표를 달성하는데 필요한 국방비 증액을 이뤄내지 못했으며, 게다가 어떠한 종류의 서두름도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처음의 고상한 발표와는 반대로, EURRF는 유럽 안보의 기둥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 파생물인 유럽전투단(EU Battle Groups, EUBG) 역시도 대규모 분쟁을 다룰 능력이 없었으며, 또한 위험한 환경에도 병력을 파견할 수 있을 정도의 정치적 의지는 결여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유럽 안보 기둥이란 것도 결국은 미약한 전투력만을 갖고 있는 평화유지군 이상은 되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아프가니스탄 문제에 있어서의 유럽인들의 말과 행동간의 불일치는 역시도 당혹스러운 것입니다. 9/11의 여파 속에서, 나토는 V번 조항(Article V)에 따라서, 어느 정도의 자산을 항구적 평화작전(Operation Enduring Freedom)에 제공하였습니다; 아프가니스탄에서의 동맹에는 비 나토 국가들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또한 참가하는 모든 국가 정부들은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커다란 목표에 대해서 동의하였습니다. 하지만, 유럽 정부들 대부분은 재정적으로 군사적으로 자신들의 서약을 이행하는 데에 지속적으로 실패하였으며, 그 상당수는 2003년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합당한 설명을 대자면, 유럽 정치인들은 자신들의 정치 체계의 노예이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근본적으로, 유럽인들의 정치 체계에서는 방탕한 사회복지 프로그램을 선호하고, 국방비 감축에 집착하며, 평화유지작전을 특별히 선호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의원내각제 정부(parliamentary government)의 특성상, 이들은 분명 유권자들의 변덕스러운 감정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연정(coalition governments)인 경우, 즉, 의회 다수를 점하지 못하여 다른 정당과 함께 연합하여 정부를 꾸려야 하는 체계에서는, 논란이 있는 이슈에 대해서 마비를 겪게 되거나 아예 붕괴되는 경우가 속출하게 됩니다.

 

 아프가니스탄의 안보 도전은 동맹국들 간에 분열을 일으키고 있는데, 그 원인은 이들이 과거의 부담 떠넘기기 버릇을 다시금 드러내고 있는 데에 정확한 원인이 있으며, 또한 미국이 과거와 달리 이들의 주장을 대규모 군사력 기여를 통해 뒷받침해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대서양간의 갈등들은 쉽게 해결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한편으로 유럽인들이 자신의 국방비가 과도하며 다른 동맹국들은 그들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고 하는 오래된 말버릇은 이제 미국 또한 심심찮게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새로운 도전에 대응하기 위한 군사비 증액이 신성한 사회복지 프로그램을 위협한다는 포퓰리즘적 태도는 이제 유럽 정부 내에서도 수그러든 것 같습니다. 이러한 국가정책들의 말단에는 동맹 혹은 연합군의 냄새를 낼 목적으로 전장에 배치된 무장 군대가 있으며, 이들은 결정적인 결과를 낼 수 있는 무력은 아닙니다. 수많은 국적을 가진 소규모 분견대들의 연합군은, 다국적주의의 이론적인 장점을 갉아먹습니다. 아프가니스탄의 상황에서, 전체의 총합은 이들 각각을 더한 것보다도 작은 상황입니다.

 

 당면한 진정한 이슈는,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성공 혹은 실패가 연합군(Alliance)을 위협할 것인가가 아닙니다; 오히려 미국이 나토가 갖고 있는 통합 군사구조의 유용성에 대해 계속 믿을 것인지에 대한 문제입니다. 나토라는 조직이 유지되고 있는 것은 사실상 미국이 그 존재가 계속 유용하다고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앞으로는 미국이 연합군을 조직하기 위해서 쌍무적인 협상으로 전환할 가능성이 있으며, 이러한 원인은 많은 나토 회원국들의 구두쇠 근성(niggard behavior) 때문입니다. 원래의 베를린 장벽과 마찬가지로, 오늘날의 은유적 베를린 장벽이란 정치인들이 사회복지 체계와 허약한 정치 체계에 노예화 된 것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미래 세대들이, 유럽인들은 왜 도전이 위협으로 성장해 나갈 때까지 잠자코 있었는지를 되돌아 볼 때, 이 부분이 시작점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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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FocusW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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