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전쟁·장미전쟁

[스크랩] [번역] 장궁 (The Longbow) - Armchairgeneral.com

박용수 2014. 10. 27. 16:51

< 원문출처: (http://www.armchairgeneral.com/weapon-files-the-longbow.htm) >

 

 이번에 번역하는 글은 중세 유럽의 대표적 무기 중의 하나인 장궁에 대하여 간단히 소개하는 글입니다. 장궁이라는 무기는 백년전쟁의 크레시 전투와 아쟁쿠르 전투 등에서의 활약으로 특히 유명한 무기이기에 백년전쟁/장미전쟁 게시판에 올리긴 하였지만, 이 전쟁에만 사용된 무기는 아닙니다. 이 무기가 갖는 명성 탓에 오늘날에도 간간히 이에 관한 논쟁이 벌어지곤 하며, 그 주제로는 과연 갑옷(풀-플레이트 아머)을 관통할 수 있느냐, 말에서 내린 기병에게도 효과가 있는가, 등등이 자주 등장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Weapon Files - The Longbow


저자: Gerald D. Swick


 이 웨일즈 무기는 치명도와 발사속도에 있어서 중세 전장에 있어서의 "기관총"이라 불릴만 했지만, 이를 수천명 단위로 사용했던 것은 잉글랜드(영국)에 한정되어 있었다. 1272-1307년간 재위한 에드워드 1세(King Edward I)는 웨일즈 궁사들의 장궁공격에 혼쭐이 난 이후 스스로 자신의 장궁부대를 대규모로 창설하게 된다.

 

 
기술 및 훈련 (Technology and Training)

 

 장궁의 길이는 약 6.5피트(= 1.98미터)였으며, 통상 주목(yew wood)으로 만들어졌다. 장궁 제조를 위하여 말리고 형태를 만드는 과정은 대략 4년 가량이 소요되었다. 양물푸레나무(ash-wood)로 만든 30인치(= 76.2 센티미터)짜리 화살은, 거위 깃털을 달고 4개 면을 갖는 금속제 "보드킨(bodkin)" 촉을 달았을 경우, 60야드(= 54.9미터) 이상 거리에서도 기사의 갑옷을 관통할 수 있었다.

 

 장궁의 장력(draw/pull weight)은 약 60~120파운드(= 267뉴턴~ 534뉴턴) 가량이었다. 전투에서 분당 15회까지 사격할 정도의 솜씨를 보이려면 궁수는 고도로 훈련받아야 할 뿐만 아니라 컨디션도 좋아야 했다. 비록 200야드(=183미터) 거리에서 기사의 투구 앞가리개(helmet visor) 사이의 틈으로 화살을 명중시켰다는 이야기는 과장일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전투에 있어 이 무기의 진정한 강점은 끔찍한 화살의 폭풍을 적에게 쏟아부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 장궁병 5000명이면 분당 30,000~ 75,000발의 화살을 적에게 쏟아부을 수가 있었다.

 

 궁수들은 통상 60-72발의 화살을 전쟁터에 들고나갔는데, 이는 10분 내에 소진되는 분량이었다. 따라서 궁수들에게는 어린 꼬마들이 따라다니면서 후방으로부터 추가적으로 필요한 화살을 가져와 건네주었다.

 

 석궁(crossbow)의 경우 당시 유럽의 대다수 군대에서 흔한 무기였는데, 장궁의 280야드 사거리에 비해 좀더 긴 350야드의 사거리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사격속도는 분당 1~2회에 불과했다.

 


영국군의 무기 선정(England's Weapon of Choice )

 

 에드워드 3세(King Edward III) 휘하의 영국 장궁병들은 크레시 전투(Crecy)(1346) 당시 제노바 용병 석궁병대와 대결하여 신속하게 승리를 거두었고, 이어 돌격하는 프랑스 기사들도 학살한다. 영국군은 적에게 10,000~ 20,000명의 피해를 주는 댓가로 약 100명을 잃었을 뿐이었다.

 

 아쟁쿠르 전투(Agincourt)(1415)에서는 헨리 5세(King Henry V) 휘하의 영국 장궁병들 역시 에드워드 3세의 엄청난 승리를 재현하였으며, 숫자상 훨씬 우세했던 프랑스군을 학살하게 된다. 당시 영국군의 화살폭풍에 격파되기 전까지, 프랑스군 포병은 단지 1회의 일제사격만을 실시할 수 있었다.

 

 헨리 5세가 장궁병에 대해 갖고 있던 신뢰감은 그가 프랑스를 침공했을 때의 부대 병력구성에도 반영되어 있다. 당시 그의 부대에는 보병(men-at-arms)과 기사(knight)가 단지 2000명이었고, 포병 역시 60명에 불과했으나, 장궁병은 8000명이나 포함되어 있었다. 헨리 5세는 장궁병들을 말에 태움으로써 - 비록 사격은 말에서 내려서 했지만 - 신속한 배치가 가능케 하였다. 헨리 5세는 부하들이 장궁병의 지원 없이 공격하는 것을 금지하였다.


 

 

방호 (Protection)

 

 궁수들을 기병 돌격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하여, 각개 궁수들은 칼 한자루와 긴 나무말뚝 하나씩을 소지하였다. 궁수들은 자신이 선 지점 앞에 말뚝을 경사지게 박은 뒤에 끝을 뾰족하게 깎았다. 궁수들의 갑옷은 사슴가죽 여러겹으로 만들거나(layers of stuffed, quilted deer hide), 혹은 쓰러진 적에게서 노획한 갑옷을 활용하였다.

 

 장궁은 16세기 무렵 화약무기에 의해 밀려나기 전까지 중세 전장에서 가장 효과적인 투발 무기로서 각광받게 된다.

 

 

 


< 보충참고자료 >

 

 

 

(동영상 출처: http://youtu.be/o4Vd3KP-LnQ )

 

출처 : FocusWar
글쓴이 : 운영자-박용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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