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전쟁·장미전쟁

[스크랩] [번역] 헨리 5세 (Commander Dossier: Henry V) - Armchargeneral.com

박용수 2014. 10. 27. 16:51

< 원문출처 : (http://www.armchairgeneral.com/commander-dossier-henry-v.htm) >

 

 


 

Commander Dossier: Henry V

 

 

저자: Gerald D. Swick

 

 

(헨리 5세는 영국 왕으로서, 중세 전쟁기술의 대가였다.)

 

젊은 전사(Young Warrior)

 

 몽마스의 헨리(Henry of Monmouth)는 1387년 9월 16일, 보운의 메리(Mary de Bohun)와 헨리 볼링브로크(Henry Bolingbroke) 사이에서 태어났다. 리차드 2세 국왕(King Richard II)이 아일랜드 반란에 신경쓰는 사이에 그의 부친이 영국 왕위를 찬탈하던 1399년 당시, 그는 단지 어린 소년에 불과했다. 비록 볼링브로크가 리차드파의 수많은 음모를 극복하며 헨리 4세(Henry IV)로서의 지위를 유지하긴 했지만, 그의 아들이 왕위를 승계할 수 있을지 여부는 여전히 불투명했다.

16세가 되던 해, 헨리 왕자는 부친의 웨일즈 주둔군의 총사령관이 되었고, 결국에는 오웨인 글린디르(Owain Glyndwr)가 이끄는 웨일즈 반군을 무찌르게 된다. 시루스베리(Shrewsbury) 근방에서 반군과의 전투(1403년 7월 21일)에서는 장궁 화살로 인하여 얼굴에 부상을 입는데, 이 전투는 매우 간발의 차로 승리한 전투였다.

 

 젊은 헨리는 전투에 대한 직관력이 있었으며, 이러한 내적 소질은 웨일즈에서의 초기 전투를 통해 다듬어진다. 경험을 통해 그는 포술과 보급문제, 공성전술과 리더십 기술 등을 익히게 된다. 그는 창의적인 전쟁기계들도 발명하였는데 예컨대 바퀴가 달린 도개교(drawbridge on wheels)를 들 수 있으며, 비록 실전에 사용되지는 않았지만, 부유 공성탑(floating siege tower) 역시도 그가 발명한 것이었다.


 

왕위의 확보(Securing the Crown)

 

 1413년 부친이 사망하자, 왕자는 스스로를 헨리 5세 국왕(King Henry V)으로 선포한다. 왕국 내의 많은 자들이 아직도 리차드의 후손쪽을 지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헨리는 휘하 군대를 확장하는 한편 그의 왕위를 강화하기 위한 일련의 질서유지작전(law-and -order campaign)을 수행하여 성공을 거두게 된다.

 

 헨리 4세가 카톨릭 교회와 사이가 나빴기 때문에, 헨리 5세는 카톨릭 관리들을 감동시키기 위한 신앙에 관한 쇼들을 함으로써 공격적으로 교회의 지지를 얻고자 하였다. 그는 휘하 군대 내에 음주와 매춘부의 출입을 금지하기까지 하였는데, 스스로를 "신이 사람들의 죄(sin)를 벌하기 위하여 보낸 신의 째찍(scourge of God)"이라고 부르기까지 하였다.

 


아쟁쿠르(Agincourt)

 

 헨리가 가장 엄격하게 다루었던 죄는 프랑스 영토에 대한 자신의 주장에 반대하는 죄였다. 그는 영국 왕위뿐만 아니라, 프랑스의 왕위까지도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하였는데, 이는 좀 미심쩍은 혈연관계에 근거하는 것이었다. 그가 야심차서이기도 했지만, 또한 프랑스와의 전쟁을 수행할 경우 - 당시 프랑스는 샤를 6세 국왕(King Charles VI)의 불안정한 지배 하에 느슨하게 여러 지방들이 묶여있는 연방체에 불과했으며, 내전으로 황폐화된 상태였다 - 신하들을 자신의 지휘하에 단결시킬 수도 있다는 점을 잘 이해하고 있었을 것이다. 2년간에 걸쳐, 헨리는 외교채널을 통하여 자신의 프랑스 왕위주장을 밀어붙였으며, 이를 통해 그는 공성장비 및 보급품을 준비할 시간을 벌게 된다. 1415년 8월, 약 1만명의 병력이 1500여척의 배에 분승하여 노르망디를 침공하게 된다.

 

 헨리 5세의 군대는 먼저 아브르(Harfleur) 시를 공격하여 신속하게 함락시킨다. 이들은 노르망디 전역에 공포의 시대를 펼치게 되는데, 방화와 약탈을 일삼았고, 여성과 종교관련 장소들을 보호하라는 헨리의 명령도 무시한다. 그러나 헨리가 내린 이 명령에 과연 진정성이 있었는지 여부는 오늘날 의문시되고 있는데, 사실 폭력과 굶주림이야말로 지역민들의 저항을 붕괴시키는 데에 크게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8월 25일 아쟁쿠르 촌락 부근에서 헨리는 프랑스군과 마주치게 되는데, 문헌에 따라 프랑스군의 병력규모는 영국군의 3배에서 8배 가량 되었던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헨리는 휘하의 보병(men-at-arms) 900명을 3개 그룹으로 배치하였으며, 장궁병 5000명을 V자 대형으로 전방과 측면에 배치하였다. 이어진 전투에서 영국군의 화살폭풍이 프랑스 기병을 학살하게 된다. 헨리는 "상처입은 사자(like a maimed lion)"처럼 싸웠고, 프랑스 측이 10000여명을 잃는 동안 단지 500명만을 잃게 된다. (역주: 저자의 다른 글에서는 영국군 손실 규모가 100명, 프랑스군은 1만~2만이라고 묘사되어 있음.)

 

 겨울이 다가옴에 따라, 헨리는 영국으로 철군한다. 프랑스 측에서 고용한 제노바 선박들이 아브르에 주둔한 영국군 수비대의 보급로를 위협함에 따라, 헨리는 대형군함 30척을 취역시켜 영국 해협에서의 위협을 일소한다. 이것이야말로 이후 명성을 떨치게 되는 영국 왕실해군(Royal Navy)의 출발이었다. (역주: 위키피디아에서는 16세기의 헨리 8세 시기가 영국 왕실해군이 정식으로 시작된 시기라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교묘했던 프랑스 왕좌 (Elusive French Crown)

 

 1417년 프랑스로 돌아온 헨리는 강인한 결단력과 포격술을 활용하여, 모든 공성전에서 승리를 거두게 된다. 그는 당대의 기준으로써는 흔하지 않은 수중의 전투기강을 부하들에게 주입시키기도 하였다. 그러나 전장 외에서의 휘하 병력들의 기강은 그렇지 않아, 이들의 약탈 수준은 중세 시대의 기준으로 보아도 야만적인 것으로 분류되었다. 이들이 너무나도 완벽하게 약탈을 자행했기 때문에, 헨리 국왕이 전쟁을 지속하기 위해 노르망디 주민들에게 부과한 벌금과 몸값 중에서 단지 일부만이 지불될 수가 있었다.

 

 협상 끝에 프랑스 부르군디 가문이 헨리 측에 서게 되었고, 이후 헨리는 파리를 점령하고 샤를 6세의 딸 캐서린(Katherine)과 자신과의 혼인을 성사시키게 된다. 이로써 샤를 6세는 자신의 생애 동안에는 왕위를 유지하지만, 사후에는 헨리에게 왕위를 물려주는 것으로 합의가 이뤄진다.

 

 그러나 헨리는 결국 프랑스 왕관을 써보지 못하고 죽게 된다. 헨리가 사망한 것은 1422년 8월 31일로, 당시 34세였으며 (사망 원인은 설사병(dysentery)으로 추정된다) 그에 대항하는 프랑스 세력과의 전쟁 과정 중이었다. "미친 샤를(Mad Charles)"은 헨리가 죽은지 불과 6주 뒤에 사망하였다.

 

 헨리는 프랑스의 1/3을 정복하였지만, 그 댓가로 영국 정부는 심각한 빚더미에 올라앉게 된다. 이후 30년만에 그가 정복한 모든 지역이 상실된다. "신의 째찍"이 선사한 황폐화로 말미암아 기왕의 프랑스와 영국간의 적개심은 더욱 강화되었고, 이는 20세기에 양차 세계전쟁이 발발할 때까지도 지속되게 된다.

 

 어쨌든 헨리 5세는 영국에서 영웅으로 받들어지고 있으며, 또한 셰익스피어의 가장 유명한 역사극으로도 기억되고 있다. 그가 남긴 유산이라면 영국이 보다 통합되었다는 점과, 성공적인 육군 및 강력한 해군이라고 할 수 있겠다.

 


** Band of Brothers (전우)

 

 헨리 5세가 아쟁쿠르 전투 전야에 휘하 병사들을 독려하기 위하여 했다는 연설문의 윌리엄 셰익스피어 버전으로서, 헨리가 실제 했던 업적들보다도 더욱 그를 역사 속에 빛나게 만든 글이기도 하다. 스타트렉(Star Trek)에서 반지의 제왕(Lord of the Rings), 툼스톤(Wild West's Tombstone), 밴드 오브 브라더즈(HBO's Band of Brothers)에 이르기까지 다음의 유명한 문구는 계속되어 인용되고, 패러디되고, 재생산되었다:

 

We few, we happy few, we band of brothers;
(우리는 소수들, 즐거운 소수들은 전우들이라네)

 

For he today that sheds his blood with me
(오늘 그는 나와 함께 피를 흘린다네)

 

Shall be my brother; be he ne’er so vile,
(그는 내 형제일세; 그는 절대 비겁하지 않다네)

 

This day shall gentle his condition:
(오늘이 그의 조건을 결정한다네)

 

And gentlemen in England now a-bed
(지금 침대에 든 영국의 신사들은)

 

Shall think themselves accursed they were not here,
(오늘 자신들이 이곳에 있지 못한 것을 저주할 것이네)

 

And hold their manhoods cheap whiles any speaks
(그리고 누가 말하든지 자신의 남자답지 못함을 부끄러워할 것이네)

 

출처 : FocusWar
글쓴이 : 운영자-박용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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