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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번역] 미군 특별내부회식(Dining-In) 교범(팜플렛) - 1985, 미육군 지휘참모대학

박용수 2014. 10. 27. 16:52

< 원문출처 : (http://www.cgsc.edu/carl/download/csipubs/cgscpam.pdf) >

 

 약간 좀 특이한 문서가 눈에 띄어서 번역하여 올리게 되었습니다. 일명 Dining-In이라는 풍습에 관한 문서인데, 가끔 영화(Heartbreak Ridge(1986) 등) 따위에 미군들이 어떤 공식예절에 맞춰 회식하는 장면들이 가끔 나오기에 흥미를 갖게 되었습니다. 일단 내용이 길고 하여, 뒤쪽의 세부 행사절차에 대해서는 생략하고, 전반적인 소개에 해당하는 맨 앞부분 및 역사 관련 부분만 번역하여 올립니다. 

 

 ※ '특별내부회식(Dining-In)'이나, '장교식당(mess)' 등의 몇가지 용어는 문맥에 따라서 적당히 만들어 번역한 것이나 어쩐지 적합하지 않다는 느낌이 듭니다. ()안에 원단어를 병기하였으며, 읽으시는 분 중에서 보다 적합한 용어를 아시는 분이 있다면 알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CGSC Pamphlet 28-1, Dining In. (HTML) (PDF)

미군 특별내부회식 교범, 1985

(Welfare, Recreation, and Morale : DINING-IN, CGSC PAM 28-1, 1985/03/15)

 

 

소개 (Introduction)


 특별내부회식(Dining-in) 행사의 정확한 연원은 밝혀진 바가 없다. 그러나 그 연원에 대해서는 옛 바이킹들이 대전투나 기타 영웅적인 활약을 기리는 격식을 차린 의식을 갖는 전통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하고 믿는 이들이 많다. 어쨌든 이러한 행사에는 좋은 음식과 술, 우정이 깃든 저녁식사가 포함되었다. 나중에 이러한 풍습이 수도원과 대학교, 그리고 궁극적으로 군 장교들의 식당(mess)에도 전파되게 된다.

 

 18세기 초, 영국 육군에서는 연대 장교식당 시스템(regimental mess system)에 격식을 차린 저녁식사풍습(formal dining)을 도입하게 된다. 장교식당의 풍습과 규칙은 곧 영국 육군의 모든 행동을 규제하는 여왕폐하의 규정(Queen's Regulations)으로 제도화되었다. 장교식당은 독신 장교들의 집이자 모든 장교들의 클럽이고, 또한 군인들의 사회생활에 있어서 중심지였다. 장교식당에서 빼놓을 수 없는 특색으로 특별내부회식(mess night)을 들 수 있다. 통상 1주일에 한번 이뤄지며, 연대 장교들은 의무적으로 참석해야 하는 정식 모임이었다. 이 저녁식사의 목적은 장교들을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모이게 하여 이들로 하여금 삶의 즐거움(luxuries of life)을 일깨워 주도록 하는 데에 있었다. 특별내부회식(mess night or Dining-In)은 이제 모든 영국 연대들의 전통이 된다.

 

 세계대전을 통하여 영국군과 미군이 가까운 관계를 취하게 되면서, 미군 또한 영국의 특별내부회식 제도를 자체적인 사회 프로그램의 일부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러한 풍습은 제 2차 세계대전을 통해 퍼져나갔으며, 정규적인 사회기능을 맡게 된다. 불행하게도 전통을 만드는 것은 그리 쉽지 않은 일이라, 세계대전을 마친 뒤에는 미육군 부대들에서 특별내부회식이라는 것이 인기를 잃게 된다. 게다가 미육군에서는 장교들이 빈번하게 부대를 옮기기 때문에, 장교들이 특정 부대와 그 전통에 연대감을 갖기란 그리 쉽지 않은 일이다. 이러한 사실들이 특별내부회식의 쇠퇴를 불러오게 된다.

 

 오늘날에는 이러한 특별내부회식이 다시금 많은 육군 부대 및 단체들에게 되돌아오고 있는 상황이다. 고급지휘관들은 특별내부회식이 젊은 장교들에게 전문의식(professionalism)과 단결심(esprit de corps)을 고취시킨다는 것을 다시금 인지하고 있다. 고급지휘관들은 특별내부회식이야말로 육군의 기상과 전문의식, 영혼을 강화하고 영속화시키는 이상적인 모임임을 인지하고 있다.

 

 이 참고서의 목적은, 미 육군에 특별내부회식을 부활시키고자 하는 이들에게 도움을 주는 데에 있다. 이 책은 특별내부회식(Dining-in) 혹은 특별외부회식(Dining-out; dining-in은 부대 내부 인원들만 참가하고, dining-out은 그 배우자들 혹은 기타 외부인까지 참가하는 것을 의미한다. 역주)을 기획하고자 하는 장교들이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제작되었다. 이 책에서는 영국과 미국의 연대 장교식당(regimental mess)에 대한 간단한 역사를 소개하였으며, 특별내부회식의 표준과 절차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수록하였고, 이어 정식 저녁식사(formal dining)에 적용되는 서비스 에티켓에 대하여 간단하게 묘사하였다. 이 책에 소개된 내용들을 보강할만한 육군의 풍습과 전통, 예절에 대한 책들은 대단히 많이 존재한다. 권말에는 가장 쓸만한 참고서적들을 기록해 두었다.

 

 

 

제 1장. 영국군의 연대 장교식당의 풍습과 전통
(Chapter 1. The Customs and Traditions of the British Army Regimental Mess)

 

1-1. 특별내부회식(Dining-In)의 진화에 대하여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영국군의 연대 장교식당 시스템의 연원과 절차에 대하여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시스템에서는 오늘날의 영국 및 미군 부대들도 아직도 정식 저녁식사 프로그램에서 유지하고 있는 풍습 및 전통들을 만들어내고 정착시켜온 바가 있다.

 

1-2. 18세기 초, 영국군인들에게는 병영(barracks)이 없었다. 마을에 들어가면 장교들과 병사들은 어쨌든 숙박이 가능한 곳이면 아무 곳이나 들어가서 잤다. 영국인들은 부대기(unit colors)를 장교들의 숙소(officers' billet)에 걸었고, 이곳은 모든 장교들이 자신들의 지휘관들로부터 명령을 받기 위해 기다리는 만남의 장소가 되었다. 이러한 만남으로부터 비롯된 우정의 분위기는 군대의 단결심과 동지의식을 고취시켰다. 이러한 숙소가 일명 장교식당(officers' mess)이라는 명칭으로 불리게 된다.

 

1-3. 18세기 후반부에는 어떤 연대의 경우에는 자체적인 장교식당(own mess)을 갖지 않는 경우가 있었다. 이럴 경우 영국 장교들은 선술집(taverns)을 공동 생활의 원천으로 삼게 되었다. 영국군의 일부로서 장교식당이 정식으로 정착된 것은 19세기에 이르러서의 일이다.

 

1-4. 연대 장교식당은 다양한 중요 기능들을 수행하였다. 이는 단지 대규모 부대에서 실용적으로 저녁식사를 하는 수단이었을 뿐만이 아니라, 장교들끼리 보다 서로 잘 알게하는 역할을 하였으며, 또한 특정 지휘부 소속 장교들간의 일종의 동지의식(sense of cohesion)을 만들어주었다. 또한 젊은 장교들에게는 배움의 장이기도 하였다. 이 기회를 통하여 젊은 장교들은 장차 고급 장교가 되었을 때 공식적인 모임을 주관하는 방법에 대하여 배울 수 있었던 것이다. 손님들을 즐겁게 하는 외에도, 공식적인 특별회식(formal mess nights)은 장교들에게 삶의 풍요로움과 신사적인 행동을 각인시켜주었다.

 

1-5. 그러나 어린 장교들에게 주어지는 조언들이 모두 정중하고 신사적인 행동만을 권한 것은 아니었다. 민병대 부관(adjutant of the militia)이었던 프랜시스 그로스(Francis Grose)는 1782년 작성한 "영국 육군 장교를 위한 권고(Advice to Officers of the British Army)"에서 다음과 같은 색다른 행동을 권고하였다:

 

 만약 당신이 장교식당에 있다면 가능한 한 적게 먹어라, 이로써 주변사람들에게 당신이 돈도 명성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하라. 그리고 먹을 때에는 당신이 풍족한 생활에 익숙해져 있음을 과시하기 위하여 식탁에 올려진 모든 음식에 대하여 흠집을 들쳐낼 것이며, 와인을 욕하고, 접시를 시종병(mess-man)의 머리에 집어던지라... 만약 당신에게 백랍 접시(pewter plate)가 있다면, 그걸 포크 위에 놓고 돌리거나 기타 다른 장난을 쳐라. 이로써 당신을 기다리게 만든 자들을 벌주라.

 

 이후에 연대 장교식당들에서 벌어진 사건들을 보면 많은 영국 장교들이 그로스의 권고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1-6. 비록 그 목적이 공식적이긴 했지만, 장교식당은 해당 연대 장교들간에 풍자와 풍파들을 일으키는 지속적인 원천이었다. 질투와 말다툼이 장교식당을 종종 들끓게 하였다. 이러한 휘발성 환경은 자주 심한 장난이나 난동, 경우에 따라서는 결투에까지 이르게 하는 원인이 되었다.

 

1-7. 19세기 초에 제 85 경보병연대 장교식당에서 벌어진 한 사건이야말로 얼마나 골치아픈 사건들이 영국 장교들 사이에 존재했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해당 연대의 장교들간의 분위기는 질시와 말다툼으로 충만해 있었기 때문에, 심각한 다툼이나 도전, 싸움 등이 빈번했다. 군법재판이 그야말로 일상적인 일과처럼 되어버렸다. 더 이상 방치할 경우 통제가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따라, 연대의 모든 장교들이 다른 부대로 전출되게 된다. 제 85 경보병연대로 새로 부임한 장교들은 일명 "세련된 추출물(elegant extracts)"이라는 명칭으로 불렸는데, 이는 이후에 아예 이 연대의 별칭이 되어버렸다.

 

1-8. 결투 행위는 신사들간의 궁극의 심판행위였으며, 장교식당에서 꾸준히 벌어졌다. 평소에는 얌전한 장교들이 장교식당에서 다른 동료 장교들에게 떠밀려 결투까지 하게 된 사례들이 여럿 존재한다. 비록 연대장은 결투를 가능한 한 억제하려 했지만, 연대장이라고 모든 사건들을 다 단속할 능력은 없었다. 종종 연대장마저 이러한 신사들의 기사도에 말려드는 경우가 있었다. 이러한 사건 중의 하나가 1824년에 제 10 후사르 연대에서 벌어진 일이다. 연대장 런던데리 후작(marquis of Londonderry)은 젊은 장교 코넷 배티어(Cornet Battier)에게 장교답지 못한 행동을 했다며 장교식당 밖으로 나오도록 지시한다. 심각한 언쟁이 이어졌고, 결국 연대장은 배티어와 권총결투를 하게 된다. 배티어의 권총이 불발되었고, 연대장은 배티어에게 한번 더 기회를 준다. 이에 배티어는 사양하고 명예의 전장에서 빠져나온다. 나중에 그는 후작의 부연대장이었던 헨리 하딘지 경(Sir Henry Hardinge)에게 채찍형을 받는다.

 

1-9. 1850년대의 결투 억제책으로 인하여, 영국 육군에는 일명 심한 장난 및 난동의 시대(period of practical joking and horseplay)가 찾아오게 된다. 이러한 새로운 종류의 유흥은 곧장 연대 장교식당 시스템에서 떼놓을 수 없는 요소로 자리잡게 된다. 결속력과 형제의식이야말로 영국 장교단의 덕목으로 간주되어 있었기 때문에, 부적격자나 주변과 동떨어진 인물은 금방 식별되어 장난의 대상이 되었다. 의무감을 느낀 장교들은 이 불쌍한 영혼에게 온갖 종류의 장난을 쳐서 괴롭히게 된다. 흔히 벌어졌던 것으로는 희생자의 숙소 방문을 강제로 열고 들어가서 창문을 깨부수고 가구들을 부수며, 침대에는 온갖 이상한 물건들을 올려놓는 것이었다. 야전인 경우 폭풍이 부는 날 그의 텐트 줄을 느슨하게 만들어 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이 불쌍한 친구는 억지로 복종하든지 연대에서 떠나는 수 밖에 없었다.

 

1-10. 샌드허스트 사관학교에서도 비슷한 풍습이 존재하여 소심한 장교들에게 철의 의지(iron will)을 심어주는 교육목적으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커리큘럼"은 귀족 동창들에 의하여 실시되었는데, '삽으로 때리기(shovelling)'라는 것도 있었다. '삽으로 때리기'의 절정은 해당 학생을 탁자 위에 올려놓고는 삽으로 때리는 부분에 있었다. 그 외에도 "환기시키기(ventilating)"라는 것도 있었는데, 이 경우 해당 학생을 환기구에 묶어놓고 포크로 찌르는 것이었다. 모포말기(blanket-tossing)또한 존재했다. 또다른 기법으로는 학생을 납치하여 옷을 벗긴 다음 연병장에 던져놓는 것이었다. 이 마지막 기법의 경우에는 특히 나중에 도움이 된다고 믿어졌는데, 즉, 위병소를 나체로 당당히 걸어서 통과할 수 있는 자라면 나중에 어떠한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당황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었다.

 

1-11. 샌드허스트 졸업생들은 이러한 해학과 경솔함을 영국 육군으로까지 전파시켰다. 물론 연대 장교식당이야말로 이를 위한 좋은 통로였다. 어느 정도의 근엄함은 유지하면서도 또한 어느 정도의 즐거움은 허용하기 위하여, 대부분 연대들은 어느 정도의 밤들을 장난이나 야단법석, 난투극 등을 벌이는 시간으로 할당해 두었다. 이때 벌어지는 활동에는 닭싸움(cockfighting)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이 경우 장교 2명이 서로의 몸을 한데 묶은 뒤에 상대방을 넘어뜨려야 하는 게임이었다; 말뚝박기(high cockalorum)이란 게임에서는 한팀의 인원들이 상대방 팀의 구부린 등 위로 양 다리를 벌리고 점프하여 올라탐으로써 상대방을 무너뜨리는 방식이었다; 레슬링도 있었다; 벽타기도 있었다; 지붕타기도 있었다. 이 밖에 특별내부회식(mess night) 일정표에 들어있는 행사로는 좀 만용에 가까운 장기자랑(feats of derring-do)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예를들어 넘어지면서(while standing on one's head) 물 한컵을 마신다거나, 일종의 "사이먼 놀이(Simon Says)"로서 특정한 지시를 수행하든지 아니면 술한잔을 마시든지 고르는 게임 등이 있었다. 명예 문제 탓에 참가한 고급 장교의 경우에도 이러한 환락에 끼어드는 경우가 있었다.

 

1-12. 영국의 연대 장교식당에서의 장교들의 행동이 상당히 거칠어 보이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것은 당시 상 페테르부르크의 짜르의 장교들이 하던 행동들에 비한다면 그저 애교에 불과했다. 러시아에서는 장교 2명이 서로 암실 안에 장전한 권총을 가지고 들어갔다. 두 장교들은 암실 안에서 조심스럽게 다니면서 교대로 "구구(Coo Coo)"라고 소리를 냈으며, 이에 상대는 소리 방향으로 권총을 발사했다. 이 위험한 게임을 하면서 얼마나 많은 러시아 비둘기들이 시체가 되었는지는 알려진 바가 없다.

 

1-13. 연대 장교식당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이 경솔하게 하는 일이라거나 위험한 것은 아니었다. 종종 모든 장교들이 대단히 엄숙한 마음으로 실시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렇지 않을 경우 비난, 도전, 경우에 따라서는 군법회의를 각오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부적합한 행동으로 인하여 심각한 결과를 야기한 한 사례로 1840년 제 11 경-용기병대(11th Light Dragoons)의 연대 장교식당에서 벌어진 사건을 살펴볼 수 있다. 당시 기병감(inspector-general of cavalry)이 연대에 방문함에 따라, 그는 다른 외부 손님들과 함께 장교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하도록 초대받았다. 당시 샴페인을 가져오도록 되어 있었음에도, 한 손님의 요청에 따라 존 레이놀드 대위(Capt. John Reynolds)는 모젤 포도주(Moselle) 한병을 주문하여 코크 마개가 있는 상태로 테이블에 올려놓는다. 이때 연대장은 이 병에 에일(ale)이 들어있다고 생각하여 격분한다. 연대장은 이러한 짓은 용서받을 수 없는 죄라고 생각했다. 연대장은 레이놀드 대위에게 "이 식사는 신사들의 식단으로 대접되어야지, 선술집이나 맥주집에서의 식단같아서는 안된다"라고 경고하였다. 결국 레이놀드는 연대에서 쫒겨난다. 그러나 이러한 추방으로 사건이 종결된 것은 아니었다. 연대장은 영국 육군 총사령관으로부터 "영국육군의 규정은 모든 장교들로 하여금 어떤 상황에 처하여서도 반드시 신사적으로 행동하여야 함을 분명하게 명시하고 있다"라는 내용이 적혀진 공식 견책을 받게 된다.

 

1-14. 비록 앞서의 사건들 및 행사들이 재미있긴 하지만, 영국 연대 장교식당의 진정한 유산은 그 풍습과 전통에 대한 꾸준한 보존에 있다. 이들 상당수가 아직도 영국과 미국 육군의 여러 공식 식당 절차에 남아있는 상태다. 이번에는 건배 제의 및 건배(proposing and drinking of toasts)에 연관된 몇몇 사건들에 대하여 간단하게 소개하도록 하자.

 

1-15. 몇몇 영국 연대들의 경우 왕을 위한 건배(toast to the king)를 하지 않는다. 이러한 풍습의 연원은 "자신들 연대는 전투에서 너무나도 뛰어난 전공을 세웠기 때문에, 왕을 위한 건배라는 상징적 충성표시 따위는 하지 않도록 왕이 이들을 면제해 주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쉽게 말해서 이들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자들이라는 것이다.

 

1-16. 영국 해군(Royal Navy)의 경우에는 왕을 위한 건배(toasting the king)시에 착석한 채로 실시한다. 이러한 기묘한 풍습이 시작된 연원은 과거 영국 왕세자(prince of Wales)가 배에서 일어나 건배 제의를 하다가 배의 들보에 머리를 부딛힌 사건에서부터 비롯되었다고 한다. 당시 그는 "내가 왕에 즉위하면 이런 멍청한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하겠다"라고 했다고 한다. 그는 왕이 되어 이 약속을 지켰다고 한다.

 

1-17. 또다른 영국의 흥미로운 전통으로는 제 14 경-용기병대의 활약에서 비롯된 것을 하나 들 수 있다. 반도전쟁(peninsular War) 당시 비토리아(Vittoria)에서 프랑스군을 격파한 동 연대는, 조셉 보나파르트(Josephe Bonaparte)의 개인마차를 노획하였다. 이 마차에서 찾아낸 것 중에서 가장 값비싼 보물은 황제의 은제 요강(silver chamberpot)이었는데, 이 물건은 아직도 연대 장교식당에 전시되고 있다. 가끔 특별한 일이 있을 경우, 이 "성스럽지 않은 술잔(unholy grail)"에 샴페인을 채워 저녁 테이블 위로 돌리곤 한다.

 

1-18. 결론적으로 연대 장교식당의 풍부한 풍습은 아직도 영국 육군에 살아있다. 모든 연대들이 정기적으로 특별내부회식(mess night)을 실시한다; 이는 미군의 특별내부회식(Dining-In)과 비교할 만한 것이다. 규정(Queen's Regulations)에 따르면 모든 독신장교들은 특별한 이유로 승인받은 경우를 제외하면 반드시 여기에 참석하게 되어 있다. 비록 연대장이 복장에 대해서 규정하는 경우가 때때로 있지만, 통상 정복을 입도록 되어있다. 장교식당 위원회 의장은 군기들(colors, standards, and guidons)을 뒤에 배치한 채 식사를 주관한다. 연대의 트로피나 유물들, 기념품등이 근처 테이블에 전시된다. 비록 행사가 과거에 비해서는 많이 문명화되긴 했지만, 아직도 행사 자체는 엄숙한 측면과 편한 마음의 장난이 섞인 모습을 띄고 있다.

 

1-19. 이러한 괴롭히기 및 놀이들 중 일부는 오늘날 올바른 리더십 원칙의 함양와 개인 존엄성에 대한 존중이라는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못하기 때문에, 완화되거나 사라지게 된다. 그러나 가벼운 장난을 나누거나, 초청연사와의 전문적인 토의, 부대 지휘부와의 끈끈한 유대감 등을 유도할 수 있는 이러한 장교들의 모임은 반드시 유지되어야 할 것이다.

 

 

 

제 2장. 미 육군의 연대 장교식당에서의 풍습 및 전통
(Chapter 2. The Customs and Traditions of The United States Army Regimental Mess)

 


2-1. 미 육군에서의 연대 장교식당 풍습은 유럽 군대에서처럼 확고하게 확립되어 있는 관습이 아니다. 그 결과 미군의 식당절차는 그리 통일되어 있지가 못하다. 오늘날 미군의 초창기 연대 장교식당 풍습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풍습이나 전통은 많이 남아있지 않다. 이러한 희소성은 미국의 광대한 영토에서 흔했던 다양한 풍습들과 사회적 모순등에 기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미국 동부에서는 보스톤, 뉴욕, 필라델피아, 워싱턴 부근에 주둔했던 보다 사교적이었던 정규군 및 민병대 사이에서는 정식 저녁식사가 흔했었다. 그러나 서쪽 변경지역의 고립된 초소들에서는 육군 장교들의 정식 저녁식사가 그리 화려하지 않았다. 특별내부회식(Dining-In)이란 개념은 버팔로와 인디언들이 사는 이 원시적인 지역에는 적합해 보이지가 않았다.

 

2-2. 장교식당이 번창하게 된 것은 20세기가 시작하고 나서의 일이었다. 그러나 이 시기에도, 이것은 단지 장교 클럽(officers' clubs) 수준이지 영국 육군의 영구적인 장교식당에 비교할 수준은 못되었다. 그러나 미 육군이 정식 저녁식사에 대한 확고한 규정을 마련한 것 또한 이 시기였다. 적당한 복장규정이나 예절, 기타 사회풍습에 대한 관심이 기울여졌다. 예를 들어 장교가 지각한 경우, 착석하기 전에 식사 멤버들에게 정중한 사과를 하도록 되어 있었다. 또한 정식 저녁식사는 엄격하게 남성들만의 행사였다. 여성이 참가하는 것은 단지 비상사태인 경우에만 허용되었고, 이 경우에도 공식적인 저녁식사 장소와 동떨어진 방에서 식사가 제공되었다.

 

2-3.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미 육군에서의 정식 저녁식사 풍습은 인기를 잃게 된다. 다행히도 몇몇 부대에서는 몇몇 특별한 경우 이러한 풍습을 유지시킨다. 이를 부추기고 지도해 준 문헌으로 1917년 제임스 A. 모스 중령이 작성한 '장교 매뉴얼(Officer's Manual)'을 꼽을 수 있다. 육군에서의 정식 저녁식사 절차에 대한 지침서가 필요하다고 본 모스는, 국내외에서 연대 장교식당 행사에 참가해 본 적이 있는 여러 미군 장교들로부터 자료를 모아 주로 유럽식 규칙에 의거한 지침서를 만들어 내었다. 그의 책은 식사진행에 대한 적절한 절차를 소개하고 있다.

 

2-4. 연대 장교식당(regimental mess)의 1차 목적은 "전우애와 온정, 단결심을 고양"시키는 데에 있었다. 이곳에서는 독신 장교들만이 식사하는 것이 아니었으며, 일정 주기마다 연대 모든 장교들이 모여 함께 식사하도록 함으로써 연대 장교들간의 친목을 도모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1917년 4월 포트 레벤워스의 육군병과학교(Army Service Schools)의 제 2 임시장교대대(2d Provisional Officers' Battalion of the Army)에서 연설하는 과정에서, 찰스 밀러 대위는 장교식당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묘사하였다:

 

 이곳은 연대장(colonel)이든 하급장교(lieutenant)든 신사라는 동등한 입장에서(in the social equality of gentlemen) 만나 전우애와 동지의식을 함양하는 곳이어야 하며, 이는 젊은이들이 선임들을 존경 및 존중하며, 나이든 이들은 후임들을 친절함과 배려로 대하는 것을 배우게 되는 곳이어야 한다; 이곳은 외부 세계에 대항하여 연대의 결속력을 강화시키는 장소가 되어야 한다... ; 이곳은 원칙의 정신과 영혼이 거주하는 곳이어야 하며, 이러한 원칙들은 연대를 만들고 또한 연대의 명성과 명예, 전통을 온전히 유지시키는 것이기도 하다.


 요약하면, 연대 장교식당은 장교들 사이에서 단결심과 전문가의식을 함양시키는 가장 중요한 단일 수단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2-5. 비록 장교식당은 주로 사교적(social)이었지만, 식사시간의 경우, 특히 저녁식사의 경우에는 준-공식적인 형태였다. 연대장 혹은 선임장교가 저녁 식사를 관장하였다. 장교식당에 집합한 장교들은 그가 도착하면 그를 따라 장교식당으로 들어간 뒤, 그가 착석한 뒤에 착석하였다. 그는 식탁의 머리부분(head of the table)에 앉으면서 부연대장(lieutenant colonel) 혹은 차선임 장교를 오른쪽에, 부관(adjutant)을 좌측에 앉혔다. 나머지 장교들은 계급 순위에 따라서 식탁 양쪽에 앉았다. 저녁식사는 전원이 예복 (dress uniform)을 입어야 하는 공식 행사였다.

 

2-6. 필요에 따라서는,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장교식당에 연대의 기념품을 전시하는 것이 풍습이기도 하였다. 이 전통은 물론 영국 육군의 전통에서 출발한 것이다. 예를 들어 영국 육군의 제 8 기병대(8th Horse)(이후 제 7 용기병 근위대가 됨)의 경우 프랑스군 팀파니(kettledrum)들을 장교식당에 전시하였다. 이들 전리품들은 1743년 데팅겐 전투(battle of Dettingen) 당시 연대가 노획한 것이었다.

 

2-7. 연대 저녁식사는 통상 2개 부로 나뉘어 실시되었다; 공식 저녁식사(formal dinner)와 비공식적인, 식사 후 담배시간(after-dinner smoker)이었다. 공식적인 부분은 일명 "식탁보 걷기(removing the cloth)"라는 절차와 함께 종결되었는데, 이것 역시도 영국 풍습에서 비롯된 것이다. "식탁보"가 제거되는 공식적인 시점은 선임장교가 커피를 받아들었을 때였다. 주관하는 장교의 허락이 없는 한, 어떤 장교도 이러한 교체시점 전까지 자리를 뜰 수 없었다. 또한 중요한 저녁식사 행사인 경우에는, 주관 장교가 자리를 뜨기 전까지는 아무도 자리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2-8. 연대 군목(regimental chaplain) 혹은 기타 "성직에 있는 사람(man of the cloth)"이 저녁식사에 참가하는 경우, 이 사람이 식사 전에 감사기도(to say grace)를 하도록 초대되었다. 이것은 주관 장교가 머리를 숙임으로써 실시되었다. 추가적으로, 손님들은 식사가 시작되기 전에 주관 장교에게 소개되었다.

 

2-9. 연대 저녁식사는 신입 장교들에게 적합한 복장과 품위, 우아한 삶에 대해서 가르쳐주는 적합한 장소였다. 신규 임관된 장교들은 각자의 봉급을 소비하여 "자신의 신분에 맞는 조용한 권위 속에 살도록" 부추겨졌다. 신임장교들에게는 이러한 봉급이 "단순하게 살고 옷을 입으면서도, 그러나 항상 신사적으로 살고 입을 수 있도록" 제공된다는 점을 주지시켰다.

 

2-10. 결론적으로, 특별내부회식(Dining-In) 풍습은 미국 육군 장교들 사이에서 꾸준히 지속된 풍습은 아니다; 잘해봐야 단속적으로 가끔 유지되었던 풍습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풍습이 장교들 사이에서 단결심을 고양시킨다는 점을 이해한 몇몇 선견지명이 있는 장교들 사이에서는 유지되었던 중요한 풍습이기도 하다. 비록 미국 육군이 영국군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긴 했지만, 이러한 특별내부회식(Dining-Ins)의 풍습들과 전통들의 상당수는 미국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3. 특별내부회식의 기획 및 실시 (Planning and Conducting the Dining-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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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에티켓 (Etiquet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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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 (Appendi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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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FocusWar
글쓴이 : 운영자-박용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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