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문출처 : ABC 뉴스 (http://abcnews.go.com/blogs/headlines/2013/08/american-pows-ring-makes-it-home-after-desperate-world-war-ii-trade/) >
2차대전 포로수용소에서 한 미군포로가 팔아야 했던 반지가 되돌아오다.
(American POW’s Ring Makes It Home After Desperate World War II Trade)
작성 : 수잔 클라크
2013년 8월 21일
제 2차대전 당시인 1943년 미 육군항공대 부조종사였던 데이빗 콕스 시니어는, 그가 탄 항공기가 격추되면서 18개월에 달하는 독일 포로수용소 생활을 시작해야 했다. 그와 그의 동료들은 의료지원을 제대로 받지 못했고,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렸다.
이 시기, 콕스는 절망적인 선택을 하나 해야 했다. 그는 과거 부모님께서 자신이 미 육군항공대 소위로 임관한 기념으로 주셨던 금으로 된 임관반지(aviator ring)를 팔기로 했다. 콕스는 이 소중한 반지의 댓가로, 한 이탈리아 포로로부터 2개의 초코렛 바를 받을 수 있었다.
그가 붙잡혀 있던 포로수용소가 해방되고 1945년 8월 고향으로 돌아온 뒤, 콕스의 부모님은 콕스에게 다시 복제반지를 만들어주셨다. 콕스의 아들인 데이빗 콕스 주니어의 말에 따르면, 복제반지에도 원래 것과 마찬가지로 이름과 생년월일이 새겨져 있었지만, 데이빗 콕스 시니어는 결코 원래 반지를 잊지 못했다고 한다.
화요일에 ABC 뉴스에서 이미 67세의 나이였던 콕스 주니어는, "아버지께서는 제게 몇 차례 이 사건에 대해 이야기해 주셨는데, 매우 배고파서 반지를 팔아야 했었고, 당시에는 그게 아무래도 매우 이성적인 결정이라고 생각했었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아버지께서 고향으로 돌아와 다시 배를 채우고 편안하게 살게 되니, 다시금 그 반지가 그리워졌다고 하시더군요." 라고 인터뷰를 통해 증언한다.
콕스 시니어는 1994년에 사망하였다. 하지만 그의 반지, 즉 원본반지가 마침내 그의 가족에게 돌아오게 된다.
아들의 설명에 따르면, 전쟁 직후 유럽은 심각한 경제위기에 있었기 때문에, 보석은 대단히 중요한 교역품이었다. 이 반지 또한 여러차례 주인이 바뀐 것으로 보이며, 마지막으로는 한 러시아 병사가 하숙비 명목으로 한 여성에게 제공하는 것으로 마무리되게 된다.
그 여성의 손자가 독일에 거주하는 헝가리인인 마틴 키스였다. 키스의 이웃인 마크 터너와 민디 터너는 미국인이었다. 키스는 어느 날 이웃 집에 저녁을 먹으러 놀러갔는데, 그 과정에서 이 미국인들에게 반지를 보여주며 그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콕스에 따르면, 키스는 영어를 그리 잘 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들 부부에게 반지의 원주인을 찾는 것을 도와달라고 했다고 한다.
터너 부부는 이를 수락한다. 사실, 저녁을 먹은 그날 밤, 마크 터너는 구글을 통해, 반지에 새겨진 이름과 "잃어버린 반지(lost ring)"이라는 문구 2가지로 검색을 했다. 검색 결과로 나온 것은 한 석사논문이었는데, 그 내용의 일부로 콕스 시니어가 갖고 있던 전시 일기의 일부를 인용하고 있었고, 또한 콕스의 부대가 2차대전 당시 활동했던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 논문을 쓴 사람은 노르우드 맥도웰이었는데, 다름아닌 콕스 주니어의 사위였다. 맥도웰이 콕스에게 그 반지가 발견될지도 모른다고 이야기 했을 때, 콕스는 믿을 수가 없었다. 이메일로 반지의 사진을 받고 나서야 믿을 수가 있었다.
"반지에 새겨진 글자가 정말 선명했어요... 소름이 돋았죠, 그 사진을 보고는 정말 소름이 돋았습니다."
독일로부터 반지가 발송되었다. 콕스가 그 반지를 처음으로 보았을 때, 이 원본반지와, 그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복제반지간의 차이를 보고 놀라지않을 수 없었다. 복제반지의 경우 장기간 사용하여 띠부분이 마모되어 지금은 보석상자 안에만 보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는 제가 전 생애동안 보아왔던 복제반지보다, 원본반지의 상태가 더 좋은 상태였다는 것에 놀랐습니다. 그게 제 처음 반응이었어요. 그러고 나서 든 생각이 제 아버지가 여기 있었더라면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께서 이걸 보았더라면 좋으셨을텐데..."
키스의 할아버지는 2차세계대전 당시와 전쟁 후까지 여러 해 동안 소련 포로수용소에 갖혀있었다고 한다. AP 통신과의 앞선 인터뷰에서, 그는 데이빗 콕스 시니어와 자기 자신의 할머지가 이 "기쁜 결말"을 보지 못하고 돌아가신 것이 아쉽다고 밝힌 바 있다.
키스는 탁송비용조차 받는 것을 거부하였으며, AP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옛 속담에 이르길 :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낫습니다"라고 답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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