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전쟁

[스크랩] [번역] 카프지 전투 : 개요 및 기초 분석, 1996 (The Battle of Khafji: An Overview and Preliminary analysis) (2)

박용수 2014. 10. 27. 15:34

 < 원문 출처 :

  The Battle of Khafji: An Overview and Preliminary analysis (https://research.au.af.mil/papers/ay1996/ari/titusj.pdf) 15-29페이지 부분.>

 

 

 


 

 카프지 전투에 있어서의 차단작전(interdiction)

 

 군사적 측면에서, 공중 차단(air interdiction)은 "적의 군사적 잠재력이 아군에게 효과를 발휘할 수 있기 전에 파괴, 무력화, 또는 지연시키기 위해 시행되는 작전들"이라고 되어 있다. 연합군 공군력은 사우디 아라비아 북동부 및 쿠웨이트 남부의 4일간의 카프지 전투에서 이 기능을 대단히 잘 수행하였다. 순정주의자들(purists)은 아마도 이 전투에서는 전통적 기준으로서의 근접항공지원(CAS)과 차단작전(interdiction)의 구분이 가끔씩 불분명했다고 주장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라크 후속부대가 카프지로 향하는 것이나 쿠웨이트 남부의 집결장소에 모이는 것에 대한 공습이 대단히 성공적이었다는 것을 부인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전투 초기 시기에 있어, 미 중부군 공군(CENTAF)은 공중 차단 노력을 2개 지역에 지향시켰다: 카프지와 해병 관측소(OP)들에 지향되는 공격부대가 오고 있는 쿠웨이트 동부 및 남동부 지역과, JSATRS 영상 및 공격부대 보고, 기타 정보자산들에 의거 이라크군이 상당히 많이 집결하고 있는 쿠웨이트 중부 및 서부 지역이었다. 해당 지점의 교통량 분산정도와 방향(1월 30일 20:00 무렵)에 근거한 바로는, 이라크군이 와디 알 바틴(Wadi al-Batin; Wadi는 건천을 의미함)을 따라 이동하기 위해 집결하는 것으로 판단되었다. 미 중부군 공군(CENTAF)의 견해에 따르면, 이들이 취할 만한 목표로는 미 중부군 육군(ARCENT)과 미 중부군 해병대(MARCENT) 작전지역(AO) 사이의 약 50마일 폭의 전선을 담당하고 있는 아랍 연합군 북부사령부(JFC-North) 소속 이집트-시리아 부대들일 가능성이 높았다. 1월 30일과 31일에 취합된 정보에 따르면, 상당수의 이라크 차량들이 중부 쿠웨이트로부터 2개의 줄기를 타고 이동 중에 있었다. 이동차량의 2/3 가량은 쿠웨이트, 이라크, 사우디 국경간 접경지역(소위 말하는 삼각 접경(tri-border) 지역)을 향해 남서진 중이었다; 그 나머지는 카프지를 향해 남동진 중이었다.

 

 이라크의 기습 월경 공격에 대비하기 위하여, 호너 장군은 중부군 사령부의 연합 항공 구성군 사령관으로서의 지위를 활용하여 전장의 공중 자원을 효과적으로 분배하였다. 이러한 세심한 조율이야말로 제한된 수의 야간전투-가능 자산들을 효과적이고도 매끄럽게 사용하는 데 필수적이었다. 야간 차단 작전동안 F-15E들은 JSTARS와 연계하여 삼각접경지역에서 중부 쿠웨이트의 알 자흐라(Al Jahrah)에 이르는 지역에 대한 무장 정찰을 실시했다. 비록 미 중부군 해병대(MARCENT)지역에 집중하긴 했지만, 해병대 항공기 역시 남부 쿠웨이트지역에 넓게 사용되었다. 해병대 F/A-18D의 고속 전방항공통제사(Fast FACs)들도 사우디-쿠웨이트 접경지역의 야간 차단 공습을 통제하는 데 있어 특별히 훌륭한 역할을 수행했다. 또한 공군의 A-10들과 AC-130들, 해병대의 AH-1들은 아랍 연합군 동부사령부(JFC-East) 지원임무 및 카프지 위아래의 해안도로 정찰을 위해 투입되었다. 또한 미 중부군 해병대(MARCENT) 지역으로 A-10 공격기가 꾸준히 지원되었고, 서부 쿠웨이트 지역에서 JSTARS에게 발견된 목표물에 대해서는 LANTIRN이 장비된 F-16 전투기들이 투입되었다. LANTIRN 장비된 F-16들은 필요한 경우에는 카프지와 쿠웨이트 국경 사이 지역의 아랍 연합군 동부사령부(JFC-East) 병력들을 지원하는 데에도 투입되었다. 이처럼 다양하고 빠른 템포의 야간 차단작전은 쿠웨이트 남부 및 중부 지역의 병목지점(choke points) 및 병력 집결지점에 대한 B-52 폭격으로 보다 보강되었다.

 

 고강도 전투 작전에 희생이 없는 경우는 드물다. 사막의 폭풍 작전 당시 미 공군의 전투 사상자 대부분이 발생한 것이 이 시기였으며, 이는 호출명 Spirit 03 이었던 AC-130 건쉽 한대가 격추되면서 발생한 것이었다. 카프지 북방 수마일 지점의 목표물을 공격하던 도중이던 1월 31일 일출 직후, Spirit 03호는 지대공미사일(SAM)에 피격되어 14명 승무원 전원과 함께 페르시아만에 추락했다. 지대공미사일(SAM)과 대공포(AAA)의 심한 사격에도 불구하고, 카프지 전투동안 연합군이 상실한 항공기는 Spirit 03 외에는 없다.

 

 주간의 차단작전 패턴은 다소 달랐다. A-10과 LANTIRN 미장착 F-16에 대하여 주간 임무가 주로 맡겨졌고, 특히 동부 쿠웨이트 지역에 있어서는 "밀어내기 근접항공지원(push-CAS)" 시스템이 사용되었다. 밀어내기 근접항공지원 개념 하에서는, 특별한 근접항공지원 목표물이 없는 경우에도 공격기를 기 계획된 목표물이나 살상지대로 밀어넣거나 미 공군 혹은 해병 Fast FAC에게 넘겨주어 차단 목표에 사용하도록 해 주었다. 1월 30일, 카프지 관련 공중 작전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A-10 단일 기종이 총 293 소티를 실시했으며, 이 소티 비율은 전쟁 나머지 기간동안 한번도 이를 넘지 못했다. 1월 29일에서 31일까지의 전투가 한창인 동안 쿠웨이트 남동부의 목표물에 대하여 1000회 이상의 공격 소티(strike sortie)가 실시되었다. 2월 1일에서 3일 사이에는 남부 KTO 지역에 추가로 554회의 공격 소티가 실시되었다.

 

 이러한 공중 포위의 강력함과 효과성으로 인하여, 사담 후세인에게 카프지 공세를 지휘하도록 임명된 이라크 3군단 사령관 살라 아부드 마후무드 소장(Maj Gen Salah Aboud Mahmoud)은 휘하 부대가 OP-4 전방 모래 언덕을 돌파한지 24시간만에 작전 취소를 반복적으로 건의할 지경이 되었다. 퇴각 요청에 대해 바그다드에서는 "귀관은 모든 전투의 어머니에서 싸우고 있다"라며 기각했고, 마흐무드는 다시 바그다드에 "그 어머니가 아이들을 죽이고 있다"라고 맞받아쳤다. 약 12시간이 지난 1월 31일 아침, 마흐무드는 일방적으로 휘하 여단들에게 접촉을 끊고 중부 쿠웨이트로 퇴각하도록 지시했다. 다음날(1월 31일) 감청된 또다른 이라크 무선통신에 의하면, 사우디 아라비아로 향하던 2개 사단이 아직 쿠웨이트 내에 있는 상황에서 공습에 의해 2000명의 병력과 300여대의 차량을 상실함에 따라 방향을 돌렸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강력하고도 지속적인 공습이 가져온 점증적이고도 공포스러운 효과에 대해서는 2명의 A-10 조종사의 증언으로 확인해 볼 수 있다. 이들은 2월 1일, 와프라 지역 근처의 병력 집결소에 대한 B-52 공습의 결과를 확인하기 위하여 출격하였는데, 이들이 목격한 바에 따르면 생존한 이라크 차량들이 미친듯이 움직이는 것이 마치 "바퀴벌레가 가득한 아파트에 불을 켰을 때" 와 같이 보였다고 했다.

 

 어쨌든 2월 2일간 상당히 분산되어 있던 이라크군 차량들에 대하여 지속된 차단작전의 성과는 대단한 것이었다. 이 전투의 가장 가시적인 성과는 이라크 제 5기계화사단이 사실상 전멸했다는 것이었다. 정확한 숫자를 대는 것은 여려운 문제이긴 하지만, 이 부대가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는 것은 명백했다. 지상전 피해만으로도 제 5기계화사단은 최소한 40대의 전차와 그와 비슷한 숫자의 APC를 상실했다. 카프지 북방과 와프라 부근의 병력 집결지에 대한 공습 역시도 대단히 높은 소모를 강요했을 것으로 판단되며, 이는 다수의 적군 포로(EPW) 보고서들에 의해서도 뒷받침되고 있다. 실제로 이전까지 이라크군 정예부대의 하나로 간주되던 제 5기계화사단이 카프지 전투를 지나서는 실효 전력에서 완전 배제되게 되었다.

 

 1월 29일부터 시작되는 4일의 기간동안, 미 중부군 공군(CENTAF)는 전장에서 총 544대의 전차와 314대의 APC, 425문의 화포를 파괴하였다고 보고하였다. 이후에 벌어진 분석에서, 이들 중 2/3 가량은 카프지 전투와 관련된 차단작전을 통해 이뤄진 것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이러한 숫자의 중요성에 대해 명확히 하기 위해 비교해 보자면, 카프지 전투 이전의 2주일 동안 공습으로 파괴한 적 차량 숫자는 전차 80대, APC 86대, 화포 308문에 불과했다.

 

 우리는 카프지 공세에 참가한 이라크인들 및 이들과 맞닥뜨렸던 연합군 지상군 인원들을 통하여 공군력의 효과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확인해 보는 것이 가능하다. 비록 심문 보고서의 내용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주의하여 다룰 필요가 있긴 하지만, 공통적으로 이들이 반복적으로 공습의 막심한 물리적, 심리적 효과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가 없다. 이라크 포로들이 공통적으로 언급하는 바는 침공을 저지하는 데 있어 공습이 결정적이었으며, 침공에 참가한 부대를 문자 그대로 박살내는 효과를 냈다는 것이었다. 아마도 이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언급은 한때 이란-이라크 전쟁에도 참가했던 이라크 제 5기계화사단의 베테랑병사의 증언일 것이다. 이 베테랑 병사의 증언에 따르면, 연합군 공군력이 30분동안 자신의 여단에 가한 피해가 지난 8년간 이란군과의 전투 과정에서 받은 피해보다 많았다는 것이었다.

 

 지상에서 이라크군과 대치했던 미 해병대원들도 공군력의 결정적 역할에 대하여 증언하고 있는데, 즉 첫째로 이라크 침략자들을 저지하고 다음으로 이들을 각각 격파했다는 것이다. 한 해병대 소대장은 그가 OP-4 전투 종료 후 생포한 이라크인들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이 이라크인들은 전장의 A-10 공격기들 때문에 차량을 버리고 도망치다가 포로가 된 것 같다." 1월 30일, 쿠웨이트 국경선 부근에서의 전날 밤 전투를 회상하며, 미 중부군 해병대(MARCENT) 사령관 월터 E. 부머 장군(General Walter E. Boomer)은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우리 피해를 제외하면 어제 밤 일에 별로 불쾌한 일은 없었다... 내 생각엔 우리 공중 애들이 놈들을 막아낸 것 같다; 놈들이 뭘 하려고 했는지 몰라도 별로 성공적이지 못했다."

 

 첫번째 근접항공지원(CAS) 중심의 밤과, 이어 차단작전이 남부 쿠웨이트까지 진행된 3일간의 밤 동안 JSTARS야말로 작전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었다. 카프지 전투 기간 동안 JSTARS 시스템은 마치 신(deus ex machina; 그리스 및 로마 희극에서 매우 어려운 상황을 타개해주는 역할로 등장하는 신)과 같은 역할을 수행했다. 항공기 탑재 레이다로 야간에 적의 차량 움직임을 탐지 및 추적할 수 있는 JSTARS는 정확하고 효율적인 공습에 있어서 필수적이었다. 이라크 공세가 이뤄지기 앞서서의 일련의 거의 믿기지 않는 우연한 사건들을 통해, 2대의 프로토타입 E-8A JSTARS가 1월 중순 사우디 아라비아에 도착했다. 승무원 훈련이나, 교리, 항공임무명령서(ATO) 어디에서도 JSTARS가 직접 공습 목표물을 할당한다는 내용은 나와있지 않았다. 이에 따라, 최초의 항공임무명령서(ATO)에서는 JSTARS는 반드시 탐지한 모든 목표물들을 공중전장 지휘통제센터(ABCCC)에 넘겨주도록 했고, 그 다음에 공중전장 지휘통제센터에서 타격기들에게 지시를 내리게 되었다. 그러던 것이 카프지 전투 바로 전야가 되었을 때 JSTARS가 직접 F-15E들에게 지상 목표물에 대해 직접 지령을 내리는 개념을 실험하게 되었던 것이었다. 이 실험은 성공이었고, 1월 28일의 항공임무명령서는 JSTARS가 직접 타격기들의 차단 작전을 통제하는 것으로 수정되었다.

 

 카프지 전투의 4일간의 기간 동안, 거의 모든 F-15E의 야간 소티들(총 104 소티 중에서 100 소티)과 상당수의 F-16 야간 소티들(총 142 소티 중에서 40 소티)은 JSTARS에 의해 통제되거나 JSTARS가 찾아낸 목표에 대해 수행된 것들이었다. 또한 JSTARS는 이들 소티 중에서 절반 가량을 KTO의 이동 목표물에 대해 재할당하기도 했다. 어떤 경우에는 B-52까지도 JSTARS가 찾아낸 목표물을 타격하기 위해 방향을 바꾸기도 했다. 1월 31일이 되자, 당초 이 새로운 시스템을 "장난감" 정도로 보고 있었던 미군 고급 장교들은 모두 견해를 바꾸어 JSTARS의 새로운 신봉자들이 되었다.


 

 차단작전의 의의

 

 되돌아보면, 이라크의 카프지 공세기간 동안 최소한 3번의 전투가 있었다. 최초의 전투는 사우디-쿠웨이트 국경지대를 따라 펼쳐진 OP들에서 벌이진 것으로서, 미 해병대와 연합군 근접항공지원(CAS)에 의해 격퇴된 12시간에 걸쳐 벌어졌던 일련의 탐색전들로 이뤄져 있다. 두번째 전투는 카프지 마을 내부와 주변에서 벌어진 것으로서, 대체로 지상에서는 사우디군에 의해 치뤄진 전투이면서도 공중 지원이 다시금 중요한 역할을 보여줬던 전투이기도 하다. 세번째 전투는 이라크군 입장에서는 가장 파괴적이었던 것으로서, 연합군 항공전력에 의해서만 치뤄진 전투이며, 쿠웨이트 시티와 사우디 국경선 사이의 도로와 집결지들을 따라 적의 후속부대들을 공격한 전투이다. 이 전투는 이라크군이 이동을 시도한 야간에 주로 벌어졌으며, 적의 병력 대형과 보급 수송대를 격파하였으며, 이는 가끔씩은 적이 대형을 갖추기도 전에 실시되기도 하였다. 그 과정에서 이 공중 차단작전으로 말미암아 적의 공격 일정이 지연되고 교란되었으며, 일부 주요 부대들의 경우(예를 들어 대부분의 제 3 기갑사단 부대들) 아예 전투에 참가하지도 못하게 만들었다. 대규모 피해를 감수하지 않고는 이동조차 할 수 없게 된 이라크인들은 마흐무드 장군이 절망적으로 말한 "(전쟁의) 어머니가 아이들을 죽이는" 상황에 빠지게 된다. 이 전투는 항공전력이 고대로부터 내려온 군사적 질문인 "어떻게 적 육군을 격파할 것인가"에 대한 새로운 해답이 된 전투가 되었다.

 

 보다 대규모의 작전 효과 측면에서 보면, "세번째" 전투야말로 사담 후세인의 군대가 연합군 항공전력 앞에 무기력하다는 것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 전투였다. 이 시점까지의 어떤 사건들과 대보더라도, 카프지 전투의 기억이야말로 이라크인들의 전투 의지를 파괴한 것이었다. 전쟁 나머지 기간동안, 이라크인들은 이동을 최소화했으며, 단지 분산하고 참호를 파고들어가기만 했다. 이라크인들은 기동이 단지 공습에 대한 취약점만 늘린다는 것을 배우게 된 것이었다. 물론 기동을 하지 않게 됨에 따라 이라크인들은 반격 작전 수행은 물론 조직적인 철수조차도 할 수 없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카프지 전투 이후에 이라크군 전 계층에 무기력감이 침투하게 되었다는 것에 대해서는 그리 큰 상상력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2월 5일부터 실시된 레이저 유도폭탄에 의한 "탱크 뽀개기(tank plinking; 목표를 파괴하는 데 필요한 것보다 훨씬 과대한 능력의 화기로 파괴하는 것)" 역시도 이러한 절망감을 증폭시키는 데 일조했을 것이다. 이날 이후로는 분산되었거나 땅속에 들어가 잇는 차량들조차도 급작스럽고 고살상력의 공습으로부터 벗어날 수가 없었다.

 

 비록 카프지 전투가 이라크인들에게 심오한 인상을 남기긴 했지만, 연합군 상급 지휘관들에게 있어서는 그 효과가 즉각적으로 감이오지가 않았다. 슈왈츠코프 장군(General Schwarzkopf)의 의견에 따르면, 이 공격이 "군사적 논리를 벗어났고," 단지 "선전용 보여주기식 작전"이었을 뿐이라고 평가절하했다. 카프지 전투의 중요성에 대해서 감을 잡지 못했던 것은 단지 미 중부군 사령관(CINCCENT) 뿐만이 아니었다. 호너 장군 역시도 중부군 사령부 상급 참모들 전체에 대하여 "전투가 끝나기 전까지는 뭐가 진행되고 있는 지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다"라고 언급한 바 있다. 매일매일 벌어지는 대량의 전투 작전들과 연합군 지상전 준비를 위한 업무들에 시선을 빼앗긴 연합군 지휘관들로서는 그 시점에서 카프지 전투의 의의에 대해 숙고할 기회 내지는 그럴 의향 조차도 갖지 않고 있었다.

 

 카프지 전투의 중요성이 왜 당시에는 감이 오지 않았는지에 대한 또다른, 그리고 아이러니한 이유를 대자면, 항공전력에 의한 적의 격파가 너무나 철저해서 그게 시작하기도 전에 끝났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요컨대 항공전력의 엄청난 파괴 효과가 연합군의 승리의 범위를 가려버렸다는 것이다. 매우 정확하고, 파괴적이고, 쉴새 없었던 공습으로 인하여 국경선에 모습을 드러낼 수 있었던 이라크인들은 상대적으로 극히 소수에 불과했다. 항공전력으로 인하여 중부군 사령부의 주도권은 전혀 도전받지 않게 되었고, 재배치해야 했던 연합군 지상군도 없었으며, 중부군 육군의 서쪽으로의 "대회전(Great Wheel)" 과정은 전혀 저항 없이 진행되었다. 요컨대 미처 알아차리기도 전에 전투는 종결되었던 것이다. 전후 걸프 지역에서의 공중작전에 대한 한 심층 연구에서는 이러한 아이러니를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다:

 

  카프지에서의 전투는 애초 제한전으로 구상되었던 것이 아니었다... 이렇게 돌아가게 된 것은 기동을 시도하는 이라크군에 대한 공습의 효과로 인해 그렇게 되었을 뿐이었다. 알 카프지는 이라크가 유일하게 시도한 대규모 지상전 시도였으며, 이의 실패가 갖는 중요성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이라크가 유일하게 기대할 수 있었던 것은 스스로가 나가떨어지기 전에 조기에 지상 소모전을 개시하는 방안이었다. 이러한 이라크의 유일한 희망이 막혀버리게 되고 두번 다시 시도할 수 없게 됨으로써 이 전투를 통해 이라크가 잃은 바가 무엇인지를 확인할 수가 있다. 알 카프지에서, 항공전력은 당시로서는 눈치채지 못한 중요한 승리를 거두었던 것이다. 

 

 

 


  
결론

 

 뉴욕 타임즈지의 국방 부문 특파원장인 마이클 고든(Michael Gordon)과 퇴역 해병 중장 버나드 트레이너(Lt Gen Bernard Trainor)의 의견에 따르면, 카프지 전투야 말로 사막의 폭풍 작전에서의 "가장 중요했던" 전투였으며, 전쟁의 "결정적인 시점(defining moment)"이었다고 말하고 있으며, 이 의견은 오늘날 걸프 전쟁에 대해 가장 잘 대변해주는 표현으로서 자리잡고 있다. 고든과 트레이너에게 있어서, "결정적인 시점"이란 이라크 군이 연합군의 항공전력을 맞아 전장에서 기동하지 못하게 된 시점을 의미한다. 다른 말로, 카프지 전투에서 활용된 항공 전력은 스스로가 현대 대규모 군대를 맞아 상당히 큰 부분의 적을 저지, 속박, 파괴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였다는 것이다.

 

 전투들은 항상 개별적인 사건들이며 결코 정확하게 재현되지는 않는 일련의 사건들이긴 하지만, 또한 이들을 너무 자유롭게 일반화해서 보는 것도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전투들이 구성하고 있는 전쟁들이나, 각개의 전투들은 새로 등장한 무기들이나 교리들이 시험되고 정교화되는 일종의 도가니로서 간주되기도 한다. 새로 떠오르는 기술들이나 작전 개념에 대한 효과나 장단점들에 대한 교훈을 얻기 위해, 우리는 이러한 전투에서의 경험들을 밀접하게 연구할 필요가 있다.

 

 그런 측면에서(in that sense), 카프지 전투는 오늘날의 항공전력의 기술과 교리들의 여러가지 강점과 약점들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 JSTARS와 같은 새로운 자산들과, 기존의 시스템들인 F-15E, LANTIRN 장착형 F-16, F/A-18D, AH-1 등과 같은 것들은 하루 종일 밤낮을 구분하지 않고 적을 찾아서 타격할 수 있는 대단한 능력을 제공하였다. 이러한 정찰-탐지-타격 능력들의 결합으로 말미암아, 연합군은 이동 중인 적을 찾아 조준하고 타격할 수 있었다. JSTARS가 A-10과 같은 구식의 시스템들과 연계되어 사용되었을 때, 전투 첫날 밤에 간신히 국경선만 넘을 수 있어서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던 전방부대에 대한 현장 탐지(isolate in-place) 및 재보급이나 퇴각(make resupply or even retreat) 임무를 수행하는 데에도 큰 역할을 하였다. 동시에, 비록 A-10이나 LANTIRN 미장착 F-16들이 이 특별한 전투에서의 전과에 상당한 기여를 한 것은 사실이지만, 카프지 전투의 경험을 보다 일반적인 수준에서 살펴본다면 지상군이 정기적으로 24시간 작전을 시도할 것이 예상되는 시기에 주간 시계비행만 되는 시스템(day VFR-only systems)의 가치는 상대적으로 낮아졌다고 할 수 있겠다.

 

 JSTARS와 같은 새로운 혁명적인 시스템의 기여도를 살펴보자면, 카프지 전투가 항공전력 교리에서의 오래된 교훈을 재확인해 주었다는 것을 언급할 필요가 있다. 요컨대 겉으로는 가치가 잘 드러나지 않지만, 연합군 항공전력의 공중우세가 있었기 때문에, 연합군에 새로운 정찰 자산이 주어졌을 때 이를  처음부터 폭넓게 사용하여 원하는 목표물을 자유롭게 공격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카프지 전투에서 제공권이야말로 지상 혹은 공중의 모든 다른 작전들을 가능하게 한 것다. 지난 1991년의 1월 말과 2월 초의 일들을 돌이켜보면서, 호너 장군은 현대 군사 작전에서 공중우세가 만들어내는 결정적인 차이에 대하여 강조한 바 있다.

 

 ... 사막의 폭풍 작전 동안과, 특히 이 조그만 전투에서는 우리가 완전한 제공권을 잡은 탓에 이라

크인들은 항공기 사용을 봉쇄당했다. 나는 결과 자체가 말해준다고 생각한다. 만약 여러분이 제공권

을 잡지 못한다면 전쟁을 하지 않는 편이 나을 것이다.

 

 사실 공중우세를 얻고 유지하는 것은 군사적 측면에서 계속 매우 결정적인 측면으로 남아있을 것으로 보이며, 카프지 전투에서의 이라크인들의 행동으로 미뤄 짐작해 본다면, 공중우세를 얻지 못한 측의 입장에서는 완전한 절망 속에서 기습 공격에 의지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 본다.

 

 항상 그렇긴 하지만, 전투 경험이 일종의 제한점과 향상시켜야 할 부분을 알려주는 부분이 있다. 여기에는 보다 연구 및 분석이 이뤄져야 할 다양한 이슈와 의문점들이 있다. 그러한 이슈들을 대략 모아본다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을 것이다:

 

 

 항공전력 단독으로 진군하는 지상군을 저지(stop)할 수 있을 것인가?

 카프지 전투 동안, 항공전력은 이론의 여지 없이 야간에 개활지를 이동하는 이라크 기계화 부대를 저지했다. 이곳에서 사용된 "저지"라는 것의 의미는, 교전을 위해 남쪽으로 이동하는 적 야전군에게 대량의 피해를 안겨주어 결국 연합군 지상군 부대와 접촉하지 못하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더불어, 이 당시 이 지역에서는 CBU-87(combined effects munition)이 가장 최신의 대전차 지역제압 탄약이었을 때 벌어진 일이라는 점을 언급해 둘 필요가 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CBU-87은 SFW(sensor fused weapon)이나 BAT(brilliant antiarmour submunition)탄, 그외 향후 가용하게 된 최신 무기들에 비해서는 훨씬 덜 효과적인 탄약이다. 아마도 이 의문점은 더 이상 '항공전력이 진군하는 지상군을 저지할 수 있을 것인가?'가 아니라 '그러려면 얼마나 많은 항공전력이 필요한가?'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연합 작전에서의 공군과 해병대간의 상호작용

 다른 것들 외에도, 카프지 전투에서는 2개의 다른 군종-공군과 해병대-이 함께 일할 수 있는 능력에 대한 실험장이었다는 점을 볼 수가 있다. 대체로 잘 이뤄지긴 했지만, 양 군종간의 작전 상호작용에 대한 보다 심층 연구가 있다면 분명히 조율과 상호 적응이 필요한 문제들에 대해 확인할 수가 있을 것이다. 잠재적으로 연구할 만한 점이 많은 분야로서는 공군과 해병대 부대간의 합동 전투 환경에서 보다 잘 협동할 수 있는 피아식별 문제 내지 전술레벨 방법론 분석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본질적으로, 이러한 맥락에서의 중심 질문은 다음과 같을 것이다: 공군과 해병대의 항공 작전에 대한 계획과 실행을 더 잘하게 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다군종 전술 및 전기, 절차 등이 필요할 것인가?

 


 JFACC 개념의 정교화

 카프지 전투의 경과 및 결과는 항공전력 역사에 있어서 가장 오랫동안 지속되온 교훈을 떠올리게 하였다 : 항공전력을 투사를 가장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지휘권 단일화가 이뤄져야 한다. 호너 장군은 CENTCOM JFACC로서, 참조할 바가 없는 상태에서 주어진 임무를 완수하기 위하여, 지휘권 단일화 원칙에 충실하여 가장 효과적인 공중 자산 활용 및 조율을 실시하였다. 장차전에서의 전장 공중 자산에 대한 최대 효과를 뽑아내고자 하는 관점에 있어서, 연구자들은 JFACC를 다른 군종들간의 항공전력 자산을 통합하는 메카니즘 개념으로서 정교화하고 발전시키는 부분에 있어 많은 부분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JSTARS: 통신 및 데이터 시스템 인터페이스

 연합군의 카프지 전투 승리에 대한 JSTARS 초기 시스템의 기여에 있어, 우리는 JSTARS의 여러 구성요소들을 이어주는 정교한 통신 및 데이터 시스템 인터페이스의 품질과 신뢰성을 향상시키는 부분에 특별히 관심을 기울일 가치가 있다. 전투 요원으로서 고려할 핵심 의문점으로는: 작전 상, 임무 수행상 어떠한 필요성을 들어 이 혁명적인 새 시스템의 기술적 정교화 방향을 결정해야 할 것인가? 또한 고려해 봐야 할 것으로는, 발달된 기술에 대한 의존성 향상과 그에 비례하여 증가하는 정보전 취약성 에 대한 문제를 어떻게 조율할 것인가의 문제가 있겠다.

 


 JSTARS: 시스템 능력을 최대로 발휘할 수 있는 교리.

 제 1차 세계대전의 최초의 전차는 주로 철조망 파괴기 용도로 쓰였으며, 그 당시의 군용 항공기는 대다수 사람들에게 "그저 통신, 관측, 정찰에 대한 추가적 수단"으로 간주되었었다. 새로운 전장 자산을 어떻게 써야 가장 효과적으로 쓸 수 있는가에 대한 이해는 이러한 자산들을 낳게 한 기술적 진보에 비해 통상 뒤쳐진다는 사실을 돌이켜 보았을 때, JSTARS의 인상적인 능력을 최대한으로 활용할 수 있는 교리를 연구하는 것은 해볼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항공대학의 다양한 전문군사교육 과정 (PME school)을 수강하는 장교들은 이 과정에 적극적으로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목적으로, 항공대학(AU) 학생들은 전투 및 훈련 과정에서 지금까지 JSTARS로부터 얻은 경험들을 모으고 평가하는 과업에 참여할 수 있을 것이다. 항공대학(AU) 학생들은 그런 연후에 "무엇이 통상 최적으로 이뤄졌는가"에 대한 논리적 일반화를 이러한 경험들을 통해서 이끌어내는 연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연구들은 교리성 논제로 이어져 결국 출판되거나 전자적인 방법 등으로 회람되고, 보다 나은 정교화와 발전을 위한 건설적 비평 내지는 아이디어의 교환을 촉발하게 된다. 어떨 때에는 이러한 연구들이 미래의 JSTARS 운영에 대한 공식 교리에 영향을 주거나 그 바탕이 될 수도 있다.

 


 오인사격에 대한 문제

 카프지 전투에서 가장 기분나쁘게 부각되었던 문제에는 아군 오인사격에 대한 문제를 빼먹을 수 없다. 카프지 전투는 현대 항공전력이 적 전차를 문자 그대로 24시간 내내 파괴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불행하게도 아군 근처에서 작전하는 경우, 항공전력은 아군 전차 역시도 동일하게 파괴할 수 있다는 점을 드러내었다. 걸프 전 당시 발생한 467명의 미군 전투 사상자의 거의 1/4에 해당하는 인원-35명 사망, 72명 부상-이 아군 오인사격으로 발생했다. 이런 아군 오인사상자 중에서 공습에 의한 부분은 사망자 11명과 부상자 15명이다.

 

 아군 오인사격은 대체로 근접도에 비례한다. 이 이유만으로도 전장의 기동군과 CAS를 효과적으로 통합하는 일은 대단히 복잡한 일이 되어버린다. 오인사격을 최소화하는 개념, 작전 절차, 교리 등을 도출하는 데 있어서의 점증되는 어려움으로 인하여 군사 전문가들로 하여금 우리의 연합 군사작전에 효과적인 개념, 절차, 교리를 만드는 데 있어 강력한 의지력과 함께 대단히 영민한 사고과정을 요구하게 되었다. 이러한 어렵고 심오한 주제를 가지고 씨름하도록 불려온 사람들에게 있어 카프지 전투의 한가지 교훈적 특징을 들자면 대부분의 공중 작전들이 벌어진 종심 깊이라고 할 수 있다. 항공전력에 대한 학생들이라면 누구나 알겠지만, 공중 작전의 종심 깊이와 아 지상군에 대한 오인공격간에는 반비례 관계가 성립하게 된다.

 


 지휘자 교육(leader development)

 마지막으로, 최신기술 무기들이 카프지 전투의 비대칭적 요소에 대해 강력한 영향을 미치긴 했지만, 우리는 이러한 무기들의 영향력이 궁극적으로는 사람의 계획과 실행에 의해 좌우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이러한 것은 언제나 대단히 유능한 인간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이는 우월한 군사 교육 및 훈련 시스템의 산물이며, 이러한 사람들이 현대 무기류를 통하여 연합군에게 강력한 군사력 뿐만 아니라 리더십, 작전 유연성, 전술적 민활함, 군사기술 전반에 걸친 우수함 등에 있어서의 명백한 유리함을 안겨준 것이다. 이러한 점을 언급함에 있어 우리의 미래 도전사항으로서는 전쟁의 승자에게 종종 닥쳐오는 안이함에 극력 저항하면서 우리의 교육 및 훈련 프로그램을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일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하 원저자 주(note) 부분 생략)

출처 : FocusWar
글쓴이 : 박용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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