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Battle of el-Mansourah (http://www.acig.org/artman/publish/article_266.shtml) >
Battle of el-Mansourah
(엘 만수라의 전투)
저자: Dr. David Nicholle, Sherif Sharmy
작성일: 2003년 9월 24일
내용:
이집트 공군(EAF, Egyptian Air Force)이 1973년 10월 전쟁의 첫날에 실시한 시나이 반도에서의 공습은, 전쟁 초기에 아랍측이 거둔 아랍측의 승리에 막대한 공헌을 하였다. 이집트 내에서는, 이 일련의 공격들이 아랍측이 이 전쟁을 승리라고 간주하는 데 대한 핵심부분으로 간주되고 있다.
중동 외부에서도 상당한 부분들이 알려져 있고 또한 인정되고 있다. 그러나 이 기간을 제외하더라도 이 10월 전쟁의 나머지 기간에도 상당히 많은 공군 작전들이 벌어졌으며, 다만 일반적으로 이 기간에 이집트 및 시리아 공군이 성취한 바는 얼마 없는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최근까지도 이러한 나머지 기간의 작전들에 대해서는 통상적으로 일반에 자세히 소개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 중의 한 특정한 전투는 예외인데, 이 전투의 경우 이집트 정부가 이 전투를 기념하여 '공군의 날'의 날짜를 11월 2일에서 10월 14일로 변경하기까지 하였다. 이 전투를 이집트 공군은 '만수라 공중전(Mansourah air battle)'이라고 부르고 있다.
1973년 10월의 전쟁을 아랍 측에서는 라마단 전쟁(Ramadan War)이라고 부르며, 이스라엘 측에서는 욤 키푸르 전쟁(Yom Kippour War)라고 부른다. 이 전쟁이 발발한지 9일째 되는 10월 14일 새벽, 이집트 제2군 및 제3군의 총 9개 기갑 여단이 수에즈 운하 동쪽의 기존 교두보를 확장하기 위하여 공세를 개시하였다. 이 공격은 운하 서쪽 지역의 기지들과 나일 삼각주 지역의 기지들에서 출격한 MiG-17, Su-7, 가변익 Su-20, Mirage 기들의 지원 하에 실시되었다. 이 기체들을 호위한 것은 104 비행단(104th Air Wing) 소속의 MiG-21들로, 이들 대부분은 엘 만수라 기지(el-Mansourah HQ)에 주둔하고 있었다.
(이집트 방공군(Egyptian Air Defence Force) 소속 104 비행단(Wing)의 3개 비행대대(squadron)에 장비된 MiG-21MF. 2개 대대는 엘 만수라에, 1개 대대는 탄타에 주둔했다.)
이에 맞선 이스라엘 공군은, 1967년 6월에 이집트 공군을 박살내고 얻었던 공중 우세를 되찾기 위하여, 104 비행단을 소멸하기 위한 4번째 시도를 실시하였다.
엘 만수라(el-Mansourah), 탄타(Tanta), 살리히야(Salihiyah)의 비행장에 대한 공습이 단행되었다. 이전에도, 이스라엘군은 10월 7일, 9일, 12일에 걸쳐 엘 만수라 비행장을 공격하려고 시도한 바 있으나, 이집트 공군과 방공망에 막혀 실패한 바가 있다. 이스라엘 측이 인정한 피해 규모는 7일 하루만 해도 비행기 22대를 잃은 것으로 되어 있다.
이스라엘의 제 4차 공격은 F-4 팬텀과 A-4 스카이호크 등을 포함한 100대가 넘는 항공기를 동원한 공격으로서, 엘 만수라의 거대한 비행 기지를 타격하려는 것이었다. 이 전투의 정점은 거의 연속적인 근접 공중전(dogfight)으로 나타났으며, 이는 최소한 53분간 지속된 것으로 되어 있다. 이집트 측의 집계에 따르면, 이 접전 중 최대 180대의 항공기가 맞물려 싸웠으며, 대다수는 이스라엘 소속이었던 것으로 되어 있다.
(이 사진의 183호 팬텀기는 F-4E형으로, 1973년 당시 69 'Patishim'(비행대대)에 소속되어 있었다. 10월 14일 전투에서 이 부대의 팬텀 II 중 한대의 손실은 이스라엘 측에서도 확인된다. 그러나, 이 기록에서는 이 격추가 아군의 오인사격에 의한 것으로 되어 있으며, 승무원들은 무사히 구출되었다고 되어있다. 팬텀기는 대량의 무장을 적재하고도 고속 장거리 비행이 가능함에 따라 대단한 인상을 남겼으며, 당시 중동에서는 이스라엘 전투기 하면 무조건 팬텀이라고 보고하는 경향도 있었다. 아마 이집트 공군이 1973년 10월 14일 전투에서 17대의 팬텀을 격추했다고 주장한 것도 이런 것이 원인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러한 숫자상의 우위를 제외하고도, 이스라엘 공군은 항공기 성능이나 승무원의 훈련 정도, 경험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집트 측의 우위는 단지 자국령 위에서 싸우고 있다는 점 외에는 없었다. 1967년의 참패 이후 저하되어 있던 이집트 공군측의 사기는 이집트 공군기들이 침입자들을 격퇴해 나감에 따라 점차 앙양되어 오고 있었다.
제 104 비행단의 경우 전쟁 제 1일째인 10월 6일부터 이미 전투에 몰입해 있는 상태였으며, 그 작전들에는 제공권 장악 및 지상 공격, 엘 만수라 지역 자체 방어 등이 있었다. 이스라엘군이 엘 만수라를 급습하리라는 것은 이미 예상되고 있는 일이었다. 10월 14일 일요일 오후 3시는 모든 것이 고요했지만, 시나이 지역 전투는 클라이맥스를 향해 달리고 있었으며, 비행장 위에는 여러 대의 MiG-21이 비상대기 중이었고, 그 안에서 비행사들은 내리쬐는 이집트의 태양빛을 받으며 기다리고 있었다.
오후 3시 15분경, 나일 삼각주 해안의 공중 감시초소는 이집트 공군 최고 사령부에, 바다로부터 20대의 팬텀기가 포트 사이드 및 삼각주 지역을 향해 남하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이집트 공군 사령부에서는 호스니 무바라크(Hosni Mubarak) 중장(Air Marshal) - 당시의 이집트 공군 사령관이자 오늘날의 이집트 대통령 -이 보고를 받고 104 비행단장인 아흐메드 압달라만 나시르(Ahmad Abd al-Rahman Nasr) 장군에게 16대의 MiG-21을 긴급출동(scramble)시킬 것을 지시했다. 이들은 더도 말고 기지 상공 방호만을 실시할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이들에게는 적이 목표물에 접근하기 전에는 적을 찾아 교전하지 말라는 지시도 내려져 있었다.
비행사들은 당연히 탐지된 적기를 공격하라는 지시를 받을 것으로 예상했지, 이러한 명령을 받을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하여 당황했다. 그러나 이것은 수뇌부의 이스라엘 전술에 대한 고려에서 나온 것이었다. 즉 1960년대 말에 계속 이어져 온 소모전(War of Attrition) 기간 동안에 얻은 교훈으로, 이스라엘군은 계속 정해진 패턴으로 공격해 오고 있다는 것이었다. 요컨대, 이들은 3단계로 거쳐서 공격을 하는데, 1단계로 일단의 전투기들이 이집트 방어부대를 유인해내어 목표물로부터 이격시키고, 두번째로 전투기의 호위를 받은 공격기들이 이집트 지상 방어시설을 무력화 시키고, 마지막으로 지상 공격기 주력 부대가 최종 목표를 타격한다는 것이었다.
그에 따라 이집트 공군 수뇌부는 앞서 발견된 팬텀기들은 단지 미끼에 불과하다고 본 것이며, MiG기들에게 이들을 요격하지 말라고 지시했던 것이다. 실제로 이스라엘 팬텀기들은 잠시동안 먼 지역에서 큰 원을 그리며 돌다가 MiG-21들이 유인되어 오지 않자 바다 쪽으로 퇴각해 버렸다.
약 3시 30분 경, 이집트 방공사령부 - 이들은 육군과 공군과 별도의 조직으로 되어 있다 -에서 약 60대의 팬텀으로 보이는 적기가 3가지 다른 방향에서 접근하고 있으며, 각각 발팀(Baltim), 다미에타(Damietta), 포트 사이드(Port Side)를 향하고 있다고 경고해왔다. 무바라크 중장은 요격 명령을 내리면서 파일럿들에게 왜 이전의 팬텀기들을 요격하라고 하지 않았는지를 설명할 수 있었다. 아흐메드 나시르 장군 (이후 이집트 공군 사령관이 된다)은 이미 상공에 떠 있는 16대의 MiG-21기들이 적을 향해 이동하는 동안 각각의 기체들이 취할 요격 경로들을 지정해 주었다. 이 기체들의 임무는 3방향으로 접근하는 이스라엘기들을 모두 공격하여 이들이 흩어지게 함으로써, 추후에 출격한 아군기들이 보다 손쉽게 공격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었다. 엘 만수라 기지에서 16대의 MiG-21이 추가로 출격하였으며, 탄타 기지에서도 8대가 이미 공중에 있는 MiG기들을 지원하기 위해 출격하였다. 3시 38분 경, 이집트군 레이다 기지에서 최고 사령부에게, 추가로 16대의 이스라엘 항공기가 같은 방향에서 매우 낮은 고도로 이동중이라고 보고하였다. 엘 만수르 기지의 마지막 8대의 MiG-21이 출격하였으며, 아부 하마드(Abu Hamad) 공군기지의 MiG-21 8대도 지원을 위해 출격하였다. 이후에 벌어진 공중전은 대단히 격렬하였으며, 약 160대의 팬텀 및 스카이호크기가 62대의 MiG기들과 교전을 벌이게 된다.
약 3시 52분 경, 이집트군 레이다는 같은 방향에서 약 60대에 이르는 팬텀 및 스카이호크기가 추가로 저공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것을 알렸다. 이들의 임무는 앞서의 제 2파 공격대가 놓친 목표물들을 공격하는 것으로 추정되었다. 이에 따라 인샤스(Inshas) 공군기지의 MiG-21 8대가 출격했다. 이스라엘의 3파 공격대는 나일 삼각주의 데르커니스(Dernernis) 마을 근처에 도달하여 근접 공중전(dogfight)에 휘말려들었고 이 무렵 2파 공격대는 동쪽으로 퇴각하기 시작했다. 이 시점에, 연료 재보급을 위해 착륙했던 약 20대의 MiG기들이 재 이륙하기 시작했다. 2파의 공격이 실패하고 이집트 전투기들이 예상보다 많다는 것을 감지한 이스라엘 3파 공격대 지휘관은 퇴각을 결심했다. 퇴각하는 마지막 이스라엘 항공기가 해안선을 넘어간 시각은 4시 8분이었다. 엘 만수라의 공중전이 종결된 것이다.
지역시간 10시경, 카이로 라디오 방송국은 '선언문 39호(Communique Number 39)'를 발표하면서, 여러 이집트 비행장 상공에서 여러 공중전이 벌어졌으며, 그 중 가장 치열했던 것은 북부 삼각주 지역에서 벌어졌다고 발표했다. 이 발표에서 이집트 공군은 3대의 전투기를 잃은 반면 이스라엘군은 15대를 잃었다고 공표되었으며, 시나이 반도 및 수에즈 운하 주변에서도 육군과 방공군에 의해 다수의 이스라엘 항공기가 격추되었다고 공표되었다.
이스라엘 라디오에서는 다음날 아침, 이스라엘 공군이 총 15대의 이집트 항공기를 격추하였다고 보고했다. 나중에 이 숫자는 7대로 줄어든다.
전쟁이 끝난 뒤의 조사에서, 이집트 공군은 최초의 전과 주장보다도 전과가 더 컸다고 판단하게 되었다. 오늘날 이집트군은 엘 만수라 공중전에서 이스라엘 항공기 17대를 격추시키고 6대의 미그기를 잃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집트 공군기의 손실에 대해서는, 3대가 공중전에서 적에게 격추당하고 2대는 연료 부족으로 추락, 1대는 격추시킨 팬텀기의 폭발 잔해에 휘말려 폭발된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집트 조종사는 2명이 전사했고, 나머지는 안전하게 구조되었다. 이러한 숫자들이 정확한지에 대해서는 물론 두고 봐야할 점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불과 수 킬로미터 근방에서 723년 전에 벌어졌던 십자군들과의 전투와 마찬가지로 이 엘 만수라의 공중전은 이집트의 승리였다는 것은 분명하다. 조그마한 대학 마을인 엘 만수라 (이집트 말로 '승리')는 다시금 역사에 그 이름을 남긴 것이다.
비행사들의 증언:
- Medhat Arafa, 현 이집트 공군 중장(Marshal)
나는 당시 미혼이었고, 기지가 곧 내 집이었다. 당시 나의 주 임무는 야간 지상 공격이었다. 10월 7일(이스라엘군의 엘 만수라에 대한 1차 공격일)에는 이스라엘군 팬텀기가 내 지프를 맞추어 뒤집는 바람에 나는 부상을 입었다. 당시에는 별로 아프지 않아서 다음날 저녁의 시나이 지역 공습에도 참가했지만, 공습에서 돌아와 착륙한 뒤에는 통증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내 동료들은 내게 병원에 가라고 했다. 병원에서 X선을 찍어보니 근육 일부가 파열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의사는 내게 휴가를 내고 쉬라고 했고, 나는 그리 하겠다고 약속하고 카이로의 공군 병원을 나섰다. 물론 다른 가벼운 부상을 입은 비행사들처럼 나는 부대로 돌아와 참전했다.
나는 10월 12일에 팬텀기 한대를 격추했지고, 이후에도 몇 차례 출격하긴 했지만, 결국 내 손을 움직이지 못할 정도가 된 18일에는 지상 근무로 전환하게 되었다. 엘 만수르 공중전이 있던 날에는 내 어깨는 붕대로 감싸여 있었다. 나는 예비대로 활동하는 4대의 MiG-21로 구성된 'Situation-One' 그룹에 속해 있었고, 출격 명령은 3시 30분에 받았다.
2분 뒤에 상공에 올라갔을 때에는 이미 전투가 시작된 뒤었다. 한 공역에 이렇게 많은 비행기들이 모여 있는 것을 본 것은 처음이었고 이는 참으로 무서운 광경이었다. 우리는 단순히 적과 교전하는 것에만 신경쓰는 것이 아니라 동료들에게 적기가 그들의 꼬리를 물고 있다는 점도 알려서 이들의 생명을 구했다. 나는 연료가 고갈되면서 착륙했으며, 재 이륙했을 때에는 동료들과 함께 동쪽으로 퇴각하는 이스라엘 항공기들을 추격했다.
- Ahmed Yousefel-Wekeel, 현 이집트 공군 소장 (Air Vice Marshal)
우리 비행전대(Air Group)에서 2개 비행대대(squardon)는 엘 만수라 공군기지에서 요격과 방공 임무를 수행하고, 다른 한 비행대대는 탄타 기지에서 양 기지를 방호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것으로 임무가 결정되었다. 10월 14일까지 우리들의 피해는 전무했다. 당일, 다른 셋과 함께 비행하면서, 우리는 6대의 팬텀기를 요격했고, 우리는 3기씩의 2개조로 나뉘어 적을 공격했다.
팬텀기들은 우리들과 싸우기 위해 폭탄을 버려야 했다. 미사일을 사용하기에는 너무 가까웠고, 기관포로 팬텀 한대를 잡았다. 2개의 낙하산이 펼쳐졌다. 당시에는 나는 얼마나 많은 항공기들이 전투에 참가하고 있는 지 알 수가 없었다. 나중에 그 숫자를 듣고 나서 깜짝 놀랐고, 이런 농담까지 했다; "젠장~ 이집트 땅 위에도 교통 체증이 심한데, 이제는 하늘 위에도 마찬가지야!"
- Nasr Mousa, 현 이집트 공군 소장
나는 10월 전쟁 당시 엘 만수르 공군기지에서 방공 임무를 띄고 MiG-21을 조종했다. 우리는 10월 5일, 내일 전쟁이 발발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10월 14일, 엘 만수르 공군기지에 대한 격렬한 공격이 있었고, 우리들은 긴급 발진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우리는 8명이었다. 상공으로 접근하면서, 우리는 이스라엘 팬텀기들이 폭격 코스로 접근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우리는 즉각 보조 연료 탱크를 버리고 그들에게 전속력으로 달려들었다. 나는 내 사선에 적기 한대를 올려놓았지만 그 전에 황금률 - 적을 공격하기 전에 뒤를 확인하라-이 기억났다.
백 미러를 보았을때, 팬텀 한대가 내 뒤에 따라붙은 것이 보였다. 나는 우측으로 급격히 돌아 그놈의 꼬리를 붙잡았고, 기관포로 격추시켰다. 낙하산은 보이지 않았다. 우리 MiG-21은 팬텀보다 기동성이 월등했다(easily outmanoeuvred). 나중에 1980년경 이집트 공군이 팬텀기를 입수했을 때, 나는 얼마나 이 기체가 무거운지를 알 수 있었다. 나는 전투에 참가하고 총 30분간 공중에 머물렀고, 착륙했을 때는 연료가 바닥나 있었다.
- Ahmed Naser, 현 이집트 공군 중장
이 공중전은 알려진 제트 전투기간의 전투 중에서 가장 긴 전투였다. 우리 MiG기들은 착륙, 재급유, 재무장, 재이륙을 7분내에 해야 했다. 통상 이륙에는 3분이 걸렸지만, 우리 조종사들은 이걸 1분 30초로 단축했다. 이는 우리 조종사들이 얼마나 잘 훈련되어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 전투에서 우리 MiG기들은 2:1의 숫적 열세에서 전투했지만, 결국 승리했다. 전투간에는 기사도 정신의 예라 할만한 것도 있었다. 우리 조종사 중에 Mohamed Adoub 중위는 팬텀기를 격추시켰지만, 너무 근접해서 격파하는 바람에, 적기의 파편에 미그기 역시 손상을 입게 되었다.
이스라엘 조종사와 모하메드 둘다 가까운 지점에서 탈출하였다. 지상에서 농부들이 이스라엘 조종사를 죽이려고 하였지만, 모하메드는 이스라엘 조종사를 살려줬다. 그 이스라엘 조종사는 병원으로 보내졌고 생존했다. 사실 그 다음날, 모하메드는 그 이스라엘 조종사를 방문해 주었다.
추가적 의문:
엘 만수라에서 진짜로 일어난 일은 무엇일까?
(이스라엘군이 보유하고 있던 미라지 및 네시르(Nesher) 전투기들은 어디에 있었을까? 위의 글에 따르면, 1974년 10월 14일의 전투에서는 미라지 및 네시르 전투기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스라엘군이 이런 훌륭한 근접 전투 기체들을 호위기로 사용하지 않고 100여대나 되는 팬텀/스카이호크 항공대를 보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실제로 이스라엘측 기록에 따르면 당일 113 비행대대의 네시르가 포트 사이드 부근에서 이집트 항공기 2대를 격추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이것은 이집트 공군기들이 일군의 이스라엘군 팬텀기들을 격퇴한 이후에 일어난 것으로, 만약 당일 이스라엘군 팬텀기들이 포트 사이드 지역에서 이집트 공군기에게 격퇴당한 것이 사실이라면, 이것은 이스라엘측의 이날 엘 만수르 전투에 대한 첫번째 시인이 되는 것이다. 물론 어쩌면 이건 전혀 별개의 전투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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