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소련·아프가니스탄 전역

[스크랩] [스크랩] CIS 지역 분쟁 - 한국국방연구원(KIDA)

박용수 2014. 10. 27. 16:09
< 원문출처 : 한국국방연구원 World WarWatch (http://www.kida.re.kr/woww/dispute.asp?code=CIS) >

 


지역 분쟁의 특성

 

 2009년 CIS 지역 분쟁의 상황을 살펴보면, 2008년 발생한 그루지야와 러시아 간의 전쟁이 일단 진정되고 있는 국면이며, 이로 인한 파생 분쟁인 그루지야-압하지야 분쟁도 어느 정도 안정을 회복하여 가고 있는 상태라고 분석된다. 2008년 러시아-그루지야 간의 전쟁으로 워낙 위중한 상황을 겪었던 만큼 현재의 상황은 차라리 안정적이라는 느낌도 든다. 그러나 표면적으로 진정되어 가고 있는 듯한 그루지야-러시아 간 전쟁은 향후 그 중요성이 국제 및 동구·카프카즈 지역 문제에 막대한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여, 러시아와 서방 간에 어떤 협상의 결과가 나올지 주목된다. 러시아와 서방 간 협력관계가 유지된다면, 사실상 미국을 포함한 서방 국가들은 동구와 구소련 지역에서 러시아의 영향력을 인정하는 대신, 이란 및 북한 핵문제에 대해서는 러시아의 양보를 받아 낼 것으로 분석된다. 따라서 현재 전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그루지야 문제로 인한 서방과 러시아 간 문제 해결의 방식에 따라 국제 안보 구도가 변화할 수 있다는 예측도 상당히 설득력이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2009년 CIS 지역 분쟁의 특이할만한 사항은 체첸을 비롯한 카프카즈 지역에서의 소규모의 테러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2009년 8월 21일 체첸 그로즈니에서 자살 폭탄테러가 발생하여 경찰관 3명이 사망하고 1명이 부상하였다. 또 8월 약 7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러시아 최대의 수력발전소 ‘사야노-쥬젠스카야’ 발전소 사고도 체첸 반군은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토록 체첸과 카프카즈 지역에서 빈번한 테러가 발생하는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체첸 반군이 카프카즈 지역에서 이슬람 세력 확장을 위해 자신들의 존재감을 과시하기 위한 것이라 할 수 있으며, 이와 동시에 러시아에 ‘앙갚음’을 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분석된다. 이와 함께 러시아 정부가 지난 4월 16일을 기해 10년간 체첸 공화국에서 진행된 반(反) 테러 작전을 종결하면서 반군 세력들에게 운신의 폭을 넓혀주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카프카즈 지역에서 발생하고 있는 테러를 미온적으로 대처하기에는 러시아의 안보 환경으로 미루어 볼 때 적절한 수단은 아니라고 평가된다. 따라서 러시아는 카프카즈 지역에서의 안정이 러시아연방 전체의 안정과 직결된 문제라고 인식하고 이에 적절히 대처하고 있는 입장이다.

 

 

주요 분쟁 동향과 전망


 CIS 지역 분쟁은 전술하였듯이 민족, 영토, 종교라는 배경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CIS의 지정학적 특성상 단순한 분쟁이라도 국제적 영향력이 큰 분쟁들로 비화될 가능성이 있는 분쟁들이 다수 차지하고 있다. 예를 들어 카프카즈 지역의 국가들은 카스피해에서 생산되는 석유 파이프라인이 통과하고 있어 역내 분쟁이 국제화될 가능성이 있는 분쟁으로 평가된다. 또한 러시아가 전통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해 온 CIS 지역에서는 ‘친미 탈러 노선’을 지향하는 국가들이 러시아와의 갈등의 소지를 항상 내포하고 있어 국제 분쟁으로 발전할 가능성도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2009년 CIS 지역의 분쟁 중 국제적 영향력이 높은 분쟁들을 중심으로 정리하여 보고자 한다.

 

 첫째, 2008년 8월부터 발발한 그루지야 전쟁은 그루지야와 친 러시아 성향의 남오세티야 분리주의자들 사이에 벌어진 전쟁이다. 2008년 8월 7일, 그루지야군이 분리 지역인 남오세티야의 수도인 츠한발리에 진군하여 군사 작전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전쟁이 시작되었다. 러시아가 이러한 공격에 반응하여 8월 8일 국경을 넘어 남쪽 남오세티야에 전차 및 야전포 등의 지상 부대를 진군하여 전투가 본격화되었다. 러시아 군은 전쟁 발발 불과 이틀 만인 8월 9일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는 그루지야군을 일시에 제압하고, 츠한발리에서 그루지야 군을 축출하는데 성공하였다. 러시아군은 단지 그루지야 군을 남오세티야에서 축출한 것에 대해 만족하지 않고, 그루지야 전역에 공습을 시작하기 시작하였다. 이에 대해 샤카슈빌리 그루지야 대통령은 계엄령을 발령하고 그루지야 전역을 전시상태로 선언하는 동시에 러시아 측에 휴전을 요청하였으나 러시아 정부는 공식적으로 이를 거부하기에 이른다.

 

 8월 12일 그루지야는 러시아로부터 사실상 항복을 하였으나, 러시아 군은 공세를 늦추지 않고 그루지야 전역으로 진격하기 시작하였다. 8월 12일 러시아는 전쟁을 시작한지 5일 만에 그루지야에 대한 공격을 종료한다고 발표하였으나 실질적인 군사행동을 러시아는 지속하고 있었으며, 이에 대한 서방의 항의가 거세어지기 시작하였다. 8월 13일 그루지야와 러시아는 프랑스가 내놓은 평화안에 합의함으로써 사태의 종결을 눈앞에 두고 있었으나, 8월 14일 미국이 그루지야 사태에 개입할 뜻을 선언하고, 군함을 통한 그루지야에 대한 보급물자 지원을 강행하자 러시아가 강력 반발하면서 한 때 흑해 지역에서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하였다. 러시아가 국제사회의 반발을 인식하여 프랑스가 제시한 최종 평화안에 서명하고, 8월 23일에 러시아가 철군협정에 서명하면서 군대를 철수했지만, 미국은 협정위반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러시아·프랑스·그루지야 3국이 합의한 새 평화안은 국제사회가 남오세티야와 압하지야의 향후 지위와 안전 담보 방안을 논의한다는 것, 러시아와 그루지야는 모든 적대행위를 중단한다는 점 등 6개 항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르코지는 “평화중재안은 8월 13일 열리는 EU 외무장관 회의에서 공신력을 확보한 뒤 향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의 근거로 제시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새 평화안에는 분쟁의 씨앗이 된 그루지야 내 자치공화국인 남오세티야와 압하지야의 장래 문제가 빠져 분쟁이 재발할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샤카슈빌리는 “두 자치공화국의 장래 문제는 해석상 차이가 있을 수 있어 평화중재안에서 삭제하기로 그루지야·프랑스·러시아 3국이 의견을 모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남오세티야와 압하지야가 이미 독립을 선포하고 러시아를 비롯한 벨라루시, 니카라과 등이 독립을 승인한 바 있어 향후 이들 국가의 장래 문제가 분쟁의 단초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또한 두 지역에서 러시아계 주민 보호를 이유로 주둔하고 있는 러시아 평화유지군의 처리 방안도 언급되지 않고 있다. 중재안 합의 이후에도 메드베데프는 “남오세티야와 압하지야 주민들이 그루지야의 통치를 받을지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샤카슈빌리 대통령은 “어떤 경우에도 그루지야 영토의 통합성이 문제되는 상황을 용인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두 자치공화국의 독립 문제가 계속 불씨로 남을 전망이다. 
 

 둘째, 흑해함대 소유권을 둘러싸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에 발생한 분쟁은, 러시아 소유였던 크림반도를 1954년 소련 최고회의가 우크라이나에 증여하기로 결정하면서 비롯되었다. 크림반도를 둘러싼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의 분쟁은 소련의 해체가 결정적 단초를 제공하였다.


 크리미야는 1991년 8월 구소련의 불발 쿠데타 이후 동년 9월 4일에 우크라이나로부터 주권선언을 하였고, 소련 해체 이후 1992년 5월 21일에는 크리미야 최고회의가 독립선언을 채택하고 독립에 관한 국민투표를 실시하기로 결정하였다. 크리미야의 이같은 결정에 대해 러시아 정부는 별 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으나, 단 크리미야의 지위에 관해서는 러시아·우크라이나·크리미야 대표가 공동으로 협의, 결정해야 한다는 결의안을 채택하였다. 그러나 크림반도의 중요성은 흑해함대 사령부가 크림반도 내에 있으며 흑해함대 최대의 군항인 세바스토폴항 또한 크림반도 내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러시아로서는 흑해함대가 우크라이나의 소유가 된다면 18세기 이후 유럽 남부지역으로 진출하기 위해 수많은 희생을 치르면서 얻은 전유물을 모두 상실하게 되는 결과를 얻게 된다. 또한 지중해와 유럽으로 진출할 수 있는 해상통로가 사실상 없어지기 때문에 전략적으로 러시아는 흑해함대를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러시아 최고회의는 이 시점이 결정적 호기라 판단하고, 1954년 소련이 우크라이나에 크림반도를 증여한 결정을 유보한다고 결정하였다. 이에 대해 우크라이나는 크게 반발하는 가운데 즉시 ICJ(국제 사법 재판소)에 제소하였고, UN은 크림반도에 대한 우크라이나의 영유권을 인정하였다.


 1994년 들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해군 사이에 경미한 충돌이 일어났다. 이에 대해 양국은 상호 이해의 중요성을 실감하고 협상에 들어갔으나, 흑해 함대에 대한 입장 차이로 난항을 거듭하여 갔다. 1995년 옐친 러시아 대통령과 쿠츠마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정상회담을 갖고 흑해함대 분할에 관하여 합의를 도출하는데 성공하였다. 이어 1997년 5월 양국은 흑해함대 분할에 관해 3개항에 합의하며 완전 타결했다고 발표하였으나, 양국 정부는 합의 사항에 대해서는 비공개를 원칙으로 한다고 발표하여, 그 내용은 밝혀지지 않고 있다.


 이후 흑해함대 문제는 양국의 필요에 의해 상당 기간 분쟁이 없을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우크라이나 대선에서 반러·친미적 성향을 가진 유센코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양국 관계는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된다. 유셴코 정부는 나토 가입을 희망하면서 러시아와 대립하였고, 러시아는 가스 공급 및 가격 인상을 공표하면서 양국 관계는 악화되기 시작하였다. 2008년 그루지야 전쟁에서 우크라이나는 그루지야를 지지하면서 러시아에 대한 반감을 불러일으켰고, 이에 대해 러시아는 또 다시 우크라이나에 대한 가스공급 중단을 발표하게 되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에 연 1억 달러 정도의 임대료를 받고 흑해 함대 기지를 임대하고 있으나, 러시아와의 관계 악화로 2017년 임대 기간이 만료되면 흑해함대의 철수를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셋째, 체첸 분쟁으로, 러시아내 체첸 공화국이 소연방 해체기에 러시아연방으로부터 분리 독립을 선포하자, 체첸의 탈러시아를 묵과할 수 없는 러시아연방이 개입하면서 비롯된 분쟁이다. 구소련 공군 장군 출신인 두다예프가 체첸-잉구시 소비에트공화국을 전복시키고 체첸의 독립을 선포하자 러시아연방은 이를 묵과할 수 없었다. 주지하다시피 러시아는 약 120여개의 소수 민족으로 구성된 다민족 국가로서 체첸공화국의 독립 움직임은 다른 소수 민족들의 분리 독립 운동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체첸은 역사적으로 가장 오랜 기간 동안 러시아에 항거해온 민족이다. 제정 러시아가 체첸을 완전히 굴복시킨 19세기 초반부터 50년간이나 러시아와 전쟁을 지속하여 온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후 소련에 편입되면서도 끊임없이 체첸인은 독립 국가로서의 열망을 간직한 채 살아왔다. 체첸인의 독립 의지가 남다른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 연유한다. 그러나 러시아는 체첸 공화국의 독립을 허용할 경우 러시아내 소수 민족의 분리 독립 요구가 거세어질 것은 자명한 이치이기 때문에 체첸의 독립을 허용할 수 없는 입장에 있다. 이러한 양측의 견해에 뚜렷한 차이가 있기 때문에 서로 양보할 수 없는 부분들이 많다. 동 분쟁의 결과는 러시아내 독립을 원하는 다른 소수민족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따라서 체첸의 분리 독립이 체첸인의 열망대로 실현된다면, 러시아내 다른 소수 민족들도 분리 독립을 위해 무장 투쟁을 벌일 가능성도 없지 않아 러시아로서는 체첸이 연방 유지를 위한 아킬레스건이 되고 있다.


 2차 체첸 전쟁이 종식된 지 9년이 지났지만, 현재 상황은 아직도 평화와는 거리가 멀다고 평가된다. 체첸 공화국은 크레믈린의 배려 하에 마치 독립국가와 같은 지위를 누리고 있으나, 반군의 입장은 아직도 독립의 의지가 강하다. 향후 체첸 문제가 어떤 식으로 전개될 것인가는 역시 러시아의 입장에 달려 있다. 러시아는 러시아 내 이슬람교도들을 회유하기 위하여 이슬람 방송을 신설하겠다고 공표하는 등 이슬람 유화정책을 한층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 정국 혼란이 다시 찾아올 경우 러시아 내에서 새로운 민족주의가 대두할 가능성이 있으며, 체첸과의 분쟁이 악화될 개연성은 충분하다고 본다. 체첸이 50년간 러시아와 항쟁을 계속한 끈질긴 면이 있다면 러시아도 자국 영토에 비하면 손바닥만한 땅을 차지하기 위해 50년간 체첸과 전쟁을 수행한 경험이 있는 것이다. 러시아 연방의 분리를 원하지 않는 러시아 입장으로 볼 때 체첸 사태는 원만한 해결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 보인다.

 

 

지역 분쟁의 전망

 

 CIS 지역의 분쟁 원인은 몇 가지 중요한 특성을 지니고 있으므로 여전히 평화롭게 분쟁이 해결될 것이라는 기대를 하기 어렵다고 평가된다. 즉, CIS 지역 분쟁의 특성은 첫째, 러시아 혁명의 유산으로 나타난 국경 획정으로 인한 민족 간의 분쟁이다. 이런 특징은 특히 카프카즈 지역에서 극명하게 나타나고 있는데 러시아 혁명 이전에는 카프카즈 지역의 아제르바이잔, 아르메니아, 그루지야간의 국경선은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다. 오직 제정 러시아에서 파견한 총독이 이 지역을 총괄하여 통치하고 있었으나, 이후 무리한 민족 통합과 국경획정은 민족 간의 분쟁을 예고하고 있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에스토니아-러시아, 타지키스탄 내전은 이 특징에서는 제외된다.


 둘째, 이 지역의 분쟁은 탈냉전기 소련 중앙정부의 통제력이 약해지면서 간접적 원인을 제공하였다. 물론 이전에도 민족 간의 갈등이 전무한 것은 아니었으나 소련의 강권 통치하에 분쟁으로 발전하지는 못했다. 즉 고르바쵸프의 페레스트로이카는 소련 국민에게 자유도 주었지만 아울러 민족 간의 갈등 또한 가져다 주었다. 소련의 각 민족에 대한 통제력에 잠재되어 있었던 민족 간의 갈등이 고르바쵸프의 정치적 민주화에 따라 급속히 구소련 전역으로 발전한 것이다.


 셋째, CIS 지역에 있어서 아직 러시아의 영향력이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다. 러시아와 직접적인 분쟁이 아니더라도 러시아는 직·간접적으로 개입하고 있다. 분쟁의 해결에도 러시아는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으며 CIS 평화유지군과 러시아군을 파견함으로써 지역 안정에 커다란 공헌을 하고 있다.


 그러나 민족, 영토, 종교라는 원인을 가진 분쟁은 사실상 어느 일방이 완전히 소멸될 때까지 확실한 해결 방안은 부재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CIS 지역 분쟁은 러시아가 강력한 리더십을 가지고 있을 때 표면적으로나마 안정을 찾을 수 있으며, 러시아의 국력이 쇠약해진다면 언제든지 안정을 깨고 대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같은 맥락에서 CIS 지역의 분쟁 중 가장 주목을 받고 있는 그루지야 분쟁은 2008년과 같이 긴박감은 없으나 여전히 긴장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샤캬슈빌리 대통령은 여전히 대통령직에 머물고 있으며, 친미정책을 강화하고 있다. 이런 그루지야에 맞서 러시아는 가스 공급 가격의 인상 및 대그루지야 경제 제재에 나서고 있어 여전히 긴박한 상황을 유지하고 있다. CIS 지역 중 카프카즈 지역은 향후에도 가장 긴박한 긴장 상태를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카프카즈 지역에 대한 러시아의 고민은 카프카즈 지역의 분리주의 세력과의 전면전을 치르기도 쉽지 않으며, 그렇다고 테러라는 국가안보 위협의 주요 요소를 방치할 수도 없는 입장이라는 것이다. 테러 자체가 문제일 뿐 아니라 분리주의에 대한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할 경우 러시아 연방의 다른 지역까지 분리주의가 전이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마냥 손을 놓고 있을 수도 없는 입장인 셈이다. 일부에서는 러시아가 카프카즈 산맥 남쪽에 자리한 그루지야의 두 자치 공화국(압하지야, 남오세티야)에 군대를 주둔시키는 것이 북카프카즈 지역의 안정을 담보하려는 전략이란 시각도 없지 않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북카프카즈 사태는 남쪽의 그루지야 문제와 맞물려 러시아 안보에 지속적인 위협 요소가 될 것이라는 점이다. 향후 러시아의 계속되는 경제난과 국내 정국의 불안정으로 인해 통제력이 약해질 경우 CIS 지역에 분쟁의 재발 여지가 다분하여 국제사회의 관심이 러시아와 이 지역에 모아지고 있다.

 

출처 : FocusWar
글쓴이 : 운영자-박용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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