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적 · 아프리카 반군

[스크랩] [번역] 해적질과의 기나긴 전쟁사 : 역사적 경향 / 미육군 지휘참모대학, 2010년 / 제 5장. 현대 해적 (3)

박용수 2014. 10. 27. 16:42

< 원문출처 : 미육군 지휘참모대학 (http://www.cgsc.edu/carl/download/csipubs/wombwell_32.pdf) pp 133~ pp 138 >

 

 


(5장 계속)


 다른 시대, 다른 장소에서와 마찬가지로 동남아시아에서 역시 해적질을 부추기는 조건들이 작용하였다. 지형 조건은 결정적인 중요성을 갖는다. 동남아시아는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병목지점- 말라카 해협- 을 갖고 있다. 매년 이 해협으로 5만척 이상의 배들, 즉 세계 해운수송의 25% 가량이 통과하고 있다 (그림 12 참조). 일본, 중국, 대한민국으로 향하는 석유의 사실상 전부가 이 해역을 통과하며, 그 규모는 일일 약 1억 300만 배럴에 해당한다. 게다가 일일 약 1만척에 달하는 어선들이 이 해협에서 조업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또한 기타 다른 사업들로 이 해협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수도 일일 약 8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따라서 말라카 해협은 지난 150여년 전 대영제국이 해적질을 소탕하러 다닐 당시처럼, 해적들에게 풍요로운 사냥터가 되고 있다.

 

(그림 12. 말라카 해협, 인도네시아, 동남아시아)

 

 그러나 동남아시아의 해적질은 단지 말라카 해협에서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필립 수로(Phillip Channel)와 싱가포르 해협(Singapore Strait)는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를 인도네시아의 리아우 군도와 분리시키는 지형인데, 이곳 역시 해적질이 성한 곳이다. 17,500여개의 섬으로 구성된 오늘날의 인도네시아는 해적들의 천국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림 13 참고). 인도네시아의 해안선은 34,000마일 이상에 달하며, 이곳에는 수많은 골짜기와 항고, 하천, 기타 인도네시아 해적들이 활동하기 좋은 장소들로 가득차 있다. 마찬가지로 말레이시아 역시 2,900마일 이상의 해안선을 갖고 있으며, 이곳 역시 해적들이 숨기 좋은 수많은 격오지들을 갖고 있다. 이 지역을 매일 200여척 이상의 상선들과 수많은 소형 선박들이 돌아다니기 때문에, 수로는 대단히 혼잡하다. 말라카 해협과 마찬가지로, 엄청난 교통량과 좁은 수로, 얕은 해저 깊이 등은 상선들로 하여금 필립 수로와 싱가포르 해협을 통과할 때 속도를 줄일 수 밖에 없도록 만들며, 이 또한 해적들에게 취약해지는 요인이 된다. 따라서 동남아시아의 지형조건은 해적들에게 밀집된 목표 지역을 제공해 주며, 따라서 약탈 기회도 증가하게 된다.

 

(그림 13. 싱가포르 및 리아우 군도)

 

 정치적 조건 역시도 동남아시아에서의 해적질을 부추긴다. 해적질은 지역 문제(regional issue)이며, 이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이 범죄의 영향을 받는 3개 지역국가 -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 간의 협력이 필요하다. 불행하게도, 이러한 협조가 항상 기대되지가 않는데, 이는 주권 문제들 탓이다. 한 국가에서 활동하는 해적들은 단지 몇 분만에 한 국가의 영해에서 타국 영해로 건너가, 배를 공격하고는, 다시 원래 고국의 영해로 도주하여 피해국의 해상 경찰력의 추적을 따돌린다. 또는 도적들이 한 국가의 영해 내의 배를 납치한 뒤, 이를 몰고 타국 영해로 들어가 장물을 처분하며, 이 과정에서 제 3국에 위치하고 있는 보스들의 통제를 받는다. 바다의 국경을 통한 침투가 용이하다는 점은 해적들이 이 지역에서 활동하기 쉽게 만들고 있다.

 

 불행하게도, 인도네시아는 자국 영해에서 해적질을 소탕하는 데 있어 상대적으로 소극적이다. 이 문제의 일부는 자원 문제와 연관이 있다 - 인도네시아인들은 17,000개 이상의 자국 섬들을 제대로 순찰할 만한 자원을 갖고 있지 못하다. 그러나 문제의 또다른 측면에는, 타국의 입장과는 달리 인도네시아는 해적질이 자국의 안보와 경제에 심한 악영향을 미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이 존재하고 있다. 싱가포르나 말레이시아와는 달리, 인도네시아는 해운 터미널 역할을 하지 않기 때문에, 이 지역을 매년 통과하는 대규모 무역을 통해 얻는 것이 별로 없다. 게다가 인도네시아 관리들은 해적들보다는 아체 반군(Aceh rebel)들을 더 큰 위협으로 보고 있다. 아체 반군들은 범죄 행위들과 무기, 사람, 물건 등의 밀수, 불법 조업 등을 자행함으로써 인도네시아에 매년 40억 달러 이상의 손해를 입히고 있다. 따라서 인도네시아가 자국의 안보와 경제에 보다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이러한 문제들에 보다 중점을 두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반면, 외국 무역에 의존적인 섬나라인 일본의 경우, 이 지역의 해적질 문제에 지난 1990년대 중반부터 큰 관심을 보여왔다. 일본은 소비 식량의 70퍼센트를 바다를 통하여 수입한다. 유럽, 아프리카, 오스트레일리아, 중동 등과의 일본의 무역량 중, 사실상 대부분이 이 지역을 통과한다. 또한 일본의 수입량 거의 대부분이 말라카 해협을 통과한다. 따라서 동남아시아에서의 해적질을 소탕하는 것은 일본의 경제 안보에 중요하다.

 

 정치적 불안정과 부패 또한 인도네시아에 근거지를 둔 해적들이 번성하게 만든 요소 중 하나다. 1998년 수하르토(Suharto)의 독재정권이 붕괴하면서, 인도네시아는 정치적 불안정의 시기로 접어들며, 이는 1997년의 아시아 금융 위기와 2004년의 아시아 쓰나미(Asian tsunami)로 더욱 심각해졌다. 이러한 위기에도 불구하고, 인도네시아는 천천히 민주주의로 이동하고 있다. 그러나 수하르토 치하에서 번성했던 부패는 아직도 문제가 되고 있다. 약 25년 전에는 인도네시아 해군과 해경이 부업으로 해적질을 했었다는 수많은 보고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비록 시간이 지나고 정권이 바뀌었지만, 비슷한 범죄 행위들이 오늘날에도 우려의 대상이 되고 있다. 왕립 말레이시아 해경(Royal Malaysian Marine Police)은 인도네시아 해상 부대들이 부업으로 해적질을 하고 있다고 공공연하게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이러한 부패는 2가지 역할을 한다. 첫째, 선출직 관리들과 보안군 요원들간의 불신은 선출된 정부의 합법성을 좀먹게 된다. 둘째, 이는 인도네시아와 주변국들, 즉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간의 관계를 악화시킨다. 만약 말라카 해협 및 주변 해역들에서 해적질을 멈추고자 한다면, 3개 국가들간의 좋은 관계는 필수적이다.

 

 마지막으로, 인도네시아의 수많은 섬들 사이에 해적들이 안전한 해방구들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 지역의 해적질이 계속 번성하는 것이다. 필립 수로와 싱가포르 해협에서 활동하고 있는 대부분의 해적들은 바탐 섬(island of Batam)을 기지로 삼고 있는데, 이 섬은 리아우 군도의 일부로서, 싱가포르 남쪽 9마일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1980년대의 경제 호황 당시, 수만명의 인도네시아인들이 이 섬으로 일자리를 찾아 몰려들었다. 거품이 터지고 이들이 일자리를 잃게 되자, 이들 상당수가 범죄 행위, 예컨대 해적질로 생계를 잇게 된다. 근방의 싱가포르의 해운로와 직접 연결되어 있고, 또한 풍부한 인력 풀을 갖게 됨으로써, 바탐 섬은 이 지역의 해적질의 온상이 된다. 말라카 해협 북쪽 지역에서의 주요 용의자는 수마트라섬의 아체(Aceh) 주에서 활동하는 도적들이다. 아체 주의 경우 여러 해 동안 분리주의자들의 반란으로 골치를 썩히고 있으며, 이로써 해적질에 적합한 지역으로 변화하였다. 따라서 양개 지역에서 해적질이 번성하는 데 필요한 3개 조건 - 지리적 위치, 정치적 불안정, 안전한 도피처 - 이 발생함으로써 해적들이 재등장하게 된다.

 

 이 지역에서 벌어진 최초의 현대 해적질 중의 하나는 1981년 5월 20일, 라이베리아 국적의 유조선 한척이 필립 수로에서 공격당했던 사건이다. 80년대 전반 기간, 인도네시아 해적들은 인도네시아 국적 선박들은 공격을 피했는데, 이는 분명 인도네시아 당국의 주목을 끄는 것을 피하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이러한 자제에도 불구하고, 인도네시아 해적들은 최초 공격 직후부터 극심하게 활발한 활동을 벌이게 된다. 이들은 필립 수로에서 21척의 선박들을 공격하였으며, 싱가포르 근방에서 정박 중인 배들에 대해 돈을 훔치거나 개인 물품을 뺏는 행위는 그보다 훨씬 많았다. 대부분의 공격은 불규칙하고 기회주의적 공격으로써, 대개 좀도둑질이었다. 이 패턴은 80년대 후반까지도 계속된다.

 

 1990년대 기간, 동남아시아에서는 매년 평균 99건의 사건이 벌어진다. 90년대 기간 인도네시아 해적들이 보다 조직화되면서, 이들은 장기 선박점거(long-term ship seizure) 및 선박절도(ship theft)를 시작하게 된다. 이러한 공격에는 보다 많은 무기와 인원, 그리고 조직을 필요로 한다. 해적들이 노획선박을 통제해야 했기 때문에, 선원들에 대한 폭력행위도 아울러 증가한다.

 

 장기 선박점거의 사례는 1991년 8월 싱가포르 해협에서 25명의 해적들이 스프린스타 호(Sprintstar)를 탈취하면서 발생한다. 선박을 빼앗는 과정에서, 해적들은 1등 항해사(chief officer)를 살해한다. 나머지 선원들은 해적들이 약 3백만 달러 상당의 배의 화물을 다른 배로 운반하는 동안 배 안에 감금되었다. 음식과 옷감, 전자제품, 담배 등을 운반하던 소형 화물선 파 트레이더 호(Far Trader)는 1992년 12월에 비슷한 운명을 맞는다. 무장 해적들이 선원들을 감금하고 배를 태국(Thailand)으로 몰고 갔으며, 이곳에서 해적들은 배에 실린 7백만 달러 상당의 화물을 다른 배로 옮겨 싣는다. 비록 1993년의 IMB 보고에는 장기 선박점거 사례가 없었지만, 1994년~1997년 사이에는 9건의 사건이 추가로 등장한다.

 

 1998년 4월에는 일단의 해적들이 유조선 페트로 레인저 호(Petro Ranger)를 탈취하려 시도한다. 이 유조선에는 150만 달러 상당의 디젤유와 항공유가 실려있었으며, 말레이시아 동쪽에서 4월 16일 납치당한다. 해적들은 선원들을 감금하고, 배를 중국 남부로 몰고 간다. 항해 중, 해적들은 최근 취득한 온두라스 등록에 맞추기 위하여 배에 가짜 이름 - 윌비 호(Wilby) -을 써넣는다. 페트로 레인저 호를 납치한 뒤 6일이 지난 뒤, 해적들은 대부분의 디젤유를 이들이 예전에 훔친 보다 작은 유조선들에 옮겨 싣는다. 이 작은 유조선들은 분명 훔친 기름을 해남도(Hainan Island)로 밀수하는 데에 사용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작은 유조선 중 한척이 판매액을 갖고 돌아온 직후, 윌비 호와 작은 유조선 둘 다 밀수를 의심한 중국 해경(Chinese Marine Police)에 의해 억류된다. 중국인들은 결국 상황을 눈치채고 해적들을 체포한다. 중국인들은 페트로 레인저 호와 선원들을 풀어주었지만, 돈과 나머지 화물들은 증거로서 챙긴다. 해적들은 페트로 레인저 호의 선장에게 자신들이 어떤 중국 해군 장교와 함께 일하고 있다고 떠벌였는데, 실제로 이들은 범죄에 대하여 기소당하지 않는다. 그 대신 이들은 인도네시아로 추방되었고, 인도네시아 관리들은 사건 조사 없이 이들을 석방해버린다.

 

 중국은 1990년대 중반의 대규모 조직 해적질 사건들의 대부분에서 뚜렷하게 등장한다. 납치된 배들이 종종 중국 항구에서 나타나 이곳에서 매각되거나, 혹은 중국 관리들이 선주에게 석방 비용을 강요하는 일이 발생한다. 국제적 압력에 따라 중국은 마침내 정부 관리들 사이의 부패를 단속하기 시작하였고, 암시장 활동을 붕괴시킴으로써, 해적들의 장물에 대한 주요 시장 하나를 제거하게 된다.

 

 이어 1998년 11월, 가장 악명높은 해적 사건 중의 하나가 중국 영해에서 벌어지게 된다. 당시 해적들은 MV 청손 호(MV Cheung Son)를 납치하여 선원 23명을 전원 잔인하게 살해한다. 선원들을 죽인 뒤, 해적들은 희생자들의 시체에 추를 달아 뱃전 너머로 던져버린다. 비록 배와 화물 모두 전혀 발견되지 않았지만, 며칠 뒤, 중국의 어부들이 6구의 시체들을 발견함으로써 범죄가 발각된다. 중국 당국에서는 용의자들을 심문하던 중, 죽은 선원들 사이에서 술을 마시고 있던 해적들의 사진을 발견하게 된다. 1999년 12월, 중국 법정은 38명에게 MV 청손 호의 납치 행위로 유죄 판결을 내리고, 이들 중 13명에게는 사형 선고를 하여 2000년 1월 집행한다. 청손 호 사건에서의 사형 집행 및 엄한 판결로 말미암아 동시기의 다른 해적 집단들이 중국 근방에서 해적질을 하는 데에 억제 효과를 발휘하게 된다.

 

 비록 2002년 10월부터 2005년 9월 말까지는 상선에 대한 장기 선박점거 혹은 절도가 나타나지 않았지만, 이 지역에서의 해적활동이 멈춘 것이 아니었다. 그 대신, 해적들은 보다 쉬운 상대(softer target)인 터그 선(tug)이나 바지 선(barges)을 대상으로 삼았던 것이다. 터그 선은 건현(freeboard; 수면에서 상갑판까지의 부분. 역주)이 낮고 느리기 때문에, 승선 및 탈취가 용이하다. 게다가 여기에 실려있는 화물, 특히 팜 유(palm oil)의 경우 가치가 있고 또한 처분도 용이하다. 2001년 9월부터 2005년 9월 사이에 해적들에게 납치된 터그 선과 토우 선(tow)은 22척에 달한다.

 

 이러한 공격 중 2건은 2005년 2월과 3월에 발생했다. 2월 28일, 해적들은 말라카 해협에서 한 터그선에 승선하여 선장과 1등항해사를 인질로 잡는다. 이들은 인질들을 석방하기 전까지 1주일간을 억류한다. 마찬가지로 2005년 3월 14일, 154명의 인원이 탑승한 바지 선을 끌고 있던 일본 터그 선 이다텐 호(Idaten)를 공격한다. 이 공격은 보다 폭력적이었으며, 이 과정에서 조타실(pilot house)에 사격을 가해 터그 선을 멈춰세운다. 해적 4명이 배에 올라타 3명의 선원들을 인질로 잡았다. 5일 후, 해적들은 인질들을 태국 어선에 태워 석방한다.

 

 말라카 해협 북부의 경우, 2001년 중반에 인도네시아 유조선 한 척이 공격당할 때까지는 상대적으로 해적질에서 안전했다. 티르타 니아가 4호(Tirta Niaga IV)는 기관 고장을 일으켜서 아체 서쪽 해안에 정박하였다. 선원들이 수리를 하고 있는 동안, 도적들이 배를 공격하였고, 배의 금고와 선원들을 강탈하였으며, 선장(master)과 2등항해사(second officer)를 인질로 잡는다. 이들은 2등항해사는 곧 석방하였지만, 선장은 계속 붙잡아 두었다가 결국 몸값으로 3만 달러를 뜯어낸다.

 

 티르타 니아가 4호에서의 성공은 다른 해적들에게도 몸값을 위한 인원납치(kidnapping)가 수지맞는 사업이라는 신호를 주게 된다. 2002년 당시 말라카 해협 북부에서만 5건의 납치가 발생한다. 다음 해인 2003년에는 그 숫자가 4건으로 줄어들지만, 2004년이 되면 8건의 납치시도를 포함하여 다시 14건으로 증가하였다. 인원납치에는 희생자를 배에서 강제로 끌어내는 과정이 필요하므로, 북부 말라카 해협에서의 폭력은 증가하게 된다. 해적들은 또한 거의 항상 무장했으며, 자동무기나 RPG를 갖고 있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게다가 저들은 이걸 사용하는 데에 거리낌이 없었으며, 상선들을 멈추기 위하여 조타실에 일상적으로 사격을 가했다.

 

(계속)

출처 : FocusWar
글쓴이 : 운영자-박용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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