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적 · 아프리카 반군

[스크랩] [번역] 해적질과의 기나긴 전쟁사 : 역사적 경향 / 미육군 지휘참모대학, 2010년 / 제 5장. 현대 해적 (5)

박용수 2014. 10. 27. 16:47

< 원문출처 : 미육군 지휘참모대학 (http://www.cgsc.edu/carl/download/csipubs/wombwell_32.pdf) pp 144~ pp 151 >

 

 


(5장 계속)


소말리아의 해적 (Somali Piracy)

 

 흔히 해적들의 낙원(pirate's paradise)이라고 불리는 소말리아는 해적들이 번성하기 위한 모든 조건들을 충족시키고 있는 곳이다. 이곳은 최적의 지리적 여건과 상당한 정치적 혼란, 그리고 육상의 수많은 안전한 해방구들이라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 이것들이 조합되어 이곳을 현대 해적들이 창궐하는 지역으로 변모시켰다.

 

 소말리아 연안의 해적질이 문제가 된 것 자체는 상당히 오랜 역사를 갖고 있지만, 이것이 급격한 증가를 보인 것은 2008년으로, 2007년 당시 홍해와 소말리아 연안을 합해 44건이었던 것이, 2008년에는 111건으로 급증하게 된다 (표 4 참조). 이러한 해적질 급증의 원인을 설명하는 것 중의 하나는 소말리아인들이 이 시기에 어업에서 해적질로 눈을 돌렸다는 것인데, 한때 번성했던 소말리아 수산업에서보다 적어도 10배 이상은 많은 돈을 벌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전문가들의 추산에 따르면, 2008년 기간 소말리아인들이 긁어모은 몸값은 약 1억 5천만 달러에 이른다고 한다.

 

(표 4. 소말리아 연안에서의 해적질 건수)

 

 소말리아의 지리적 위치는 이곳을 해적질에 이상적인 곳으로 만들어주고 있다. 이곳은 해안선 길이가 1880마일에 달하긴 하지만, 인도네시아와 같이 해적들이 숨어서 피해자들을 덮칠만한 수천개의 작은 섬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이곳이 갖고있는 이점은 매년 2만여척의 배들이 통과하는 아덴만(Gulf of Aden)과 가깝다는 점에 있으며, 여기에는 전세계 석유 생산량의 7~12퍼센트를 운반하는 유조선들이 포함되며, 또한 남아프리카에서 페르시아만까지의 항로와도 인접해 있다. 이러한 지리적 위치로 말미암아 소말리아를 기지로 하는 해적들은 아덴만을 휘어잡을 수 있었고, 또한 인도양 상당부분 역시도 휘어잡은 것으로 보인다 (그림 14 참조).

 

(그림 14. 소말리아 해안의 모습)

 

 소말리아는 또한 정치적 혼란으로 피폐해진 나라이기도 하다. 소말리아는 1991년 모하메드 시아드 바르(Mohamed Siad Barre)가 축출당한 이래 제대로 된 정부가 존재하지 않는 상태이다. 1991년 이래로 군벌들과 이슬람 법정연합(Islamic Courts Union), 기타 14개의 과도정부들이 이 나라를 지배하기 위한 시도를 해 왔다. 이들 중 전국을 장악하는 데 성공한 측은 없으며, 2008년 12월에는 압둘라히 유수프 아흐메드 대통령(President Abdullahi Yusuf Ahmed)이 사임하였다. 현재 대통령은 셰이크 샤리프 아흐메드(Sheik Sharif Ahmed)인데, 온건 이슬람주의자이면서도 이슬람 법정연합의 전직 지도자이기도 하다.

 

 2004년 8월에는 케냐에서 과도연방정부(Transitional Fedral Government)가 압둘라히 유수프 아흐메드 대통령 지도하에 발족되었다. 2006년 여름 기간, 이슬람 법정연합 휘하의 이슬람 민병대가 모가디슈(Mogadishu)를 장악한다. 이들의 존재로 인하여 미국과 에티오피아가 반응하게 된다. 2006년 12월, 에티오피아 군대가 침공하여 이슬람 민병대를 모가디슈에서 몰아낸다. 다음 달, 유수프 대통령이 모가디슈에 사상 처음으로 입성하게 된다. 비록 그가 수도에 들어서긴 했지만, 국가 통치에 있어서 달라진 것은 거의 없었다. 게다가 국민들로부터 증오의 대상인 에티오피아 군대의 주둔으로 말미암아 전국에서 소요가 발생하게 된다. 그 결과 2006년 말 이래로 약 1만명의 사람들이 전투에서 사망하게 된다. 최소한 백만명의 사람들이 고향에서 쫓겨나게 되었으며, 전 국민의 절반 가량에 해당하는 약 7백만명이 기아상태에 빠지게 된다.

 

 소말리아의 식량위기는 정치적 혼란과 해적질 두가지로 말미암아 악화된다. 2008년 전반기 동안만 20여명의 원조 일꾼들이 살해당하게 되면서, 여러 원조단체들이 활동을 중단하거나 아예 소말리아에서 떠나게 된다. 동시에 2005년 기간 여러 원조선박들이 납치당하는 사건이 벌어지면서, 이후 원조단체들은 군사적 호위가 없는 상태에서는 식량선박을 보내지 않게 된다. 2008년 6월 경 네덜란드가 유엔 세계식량계획(World Food Program, WFP)의 선박들에 대한 호위를 그만 둠에 따라, 일시적으로 해상을 통한 모든 식량원조가 중단되게 된다. 지상 운송수단을 통한 식량원조 역시 마찬가지로 위험했을 뿐만 아니라 보다 비용이 많이 들었다. 민병대들은 이러한 식량 원조행렬을 빈번하게 공격 및 납치하였다. 이 해의 전반기에만 5명의 운전수가 살해당한다. 이러한 혼란 와중에서 해적질이 번성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놀라운 일일 것이다.

 

 소말리아가 교역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 국가라는 점에서, 해적들이 갈취해온 자금은 해안 공동체 입장에서는 엄청난 혜택이라고 할 수 있다. 그 결과 소말리아 연안을 따라 수많은 해방구들이 탄생하게 되었으며, 해적들에게 중요한 지원기지가 되고 있다. 이들 중에서 가장 유명한 항구들을 들면 에일(Eyl), 호뵤(Hobyo), 하라데레(Xaradheere)를 꼽을 수 있는데, 이곳들은 또한 사실상 독립상태인 푼트란드 주(province of Puntland)에 위치하고 있다. 해적들은 이곳 마을들을 근거로 아무런 거리낌 없이 활동하고 있으며, 일부 분석가들로 하여금 이들이 푼트란드 정부의 암묵적인 승인 하에 활동하고 있다는 결론을 내게 하였다.

 

 해적들의 해방구는 신흥도시(boom town)라고 할 수 있는데, 새로운 주택들과 자동차, 기타 소비재들이 갖춰져 있다. 이들 현대판 해적들은 많은 소말리아인들 사이에서 영웅으로 치부된다. 한 해적 지도자에 따르면, 벌어들인 돈의 절반은 배를 탈취한데 가담한 해적들에게 간다; 30퍼센트는 해적들의 활동에 재정지원을 한 투자자들에게 간다; 20퍼센트는 배를 감시하고 통역자를 제공하며 음식이나 기타 보급품을 해적들에게 제공한 마을주민들에게 돌아간다. 현대판 로빈후드인 양, 이들은 가난한 이들에게 돈을 주기까지 한다.

 

 가루위(Garoowe)나 에일과 같은 곳에서는 모든이들이 해적이 되길 꿈꾼다. 가루위의 한 12세 소년이 기자에게 한 말에 따르면, "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해적이 될 거에요, 저는 제 가족들을 위해 일하고 더 많은 돈을 벌 거에요."라고 하였다. 만약 당신이 직접 해적이 되지 못한다면 해적과 결혼하면 된다. 에일의 한 젊은 여성은 "저는 적당한 돈과 좋은 집에서 살고 싶기 때문에 해적과 결혼할 거에요."라고 하였다. 지역주민들의 이러한 열광적인 성원으로 인하여, 소말리아에서 해적들을 박멸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좀도둑질과 저수준의 강도질, 장기 선박탈취, 납치 및 선박 절도에 이르는 다양한 종류의 해적질을 저지르는 동남아시아의 해적들과는 달리, 소말리아 해적들은 자신들의 활동을 통상 인질 획득 및 몸값 요구로 한정시키는 경향이 있다. 아덴만에서 인도양까지 이르는 지역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종류의 활동은 2008년 동안 급증하였으며, 그 숫자는 2007년의 인질 177명에서 2008년에는 815명으로 변하게 된다 (표 5 참조). 비록 해적사건의 숫자는 많았지만 사망자나 부상자의 숫자는 의외로 드물었다: 2년 동안 해적들에게 살해당한 선원은 총 6명이고 부상당한 선원은 8명이었으며 실종자는 14명이었다.

 

(표 5. 소말리아 해역에서의 유형별 해적질 건수)

 

 해적들의 대변인들은 종종 자신들이 소말리아 해안경비대(Somali Coast Guard)라고 주장하며, 단지 영해를 방위하고 불법 어로행위나 불법 투기행위를 단속하는 것 뿐이라고 주장한다. 사실 따지고 보면, 많은 해적들이 원래는 불법 어로행위로 생활 터전을 잃은 어부들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소말리아 어부들은 외국 어선들이 불법 어구들을 사용하며, 자신들의 어획물을 훔치고, 그물을 자르며, 어선에 충각공격을 해온다고 주장해 왔다. 따라서 이들은 자신들이 취하는 모든 행동들이 해적질이 아니며 단지 합당한 보복행위에 불과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모가디슈에 제대로 된 정부가 존재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유럽이나 아시아의 어선들이 소말리아 영해에서 불법어로행위를 할 기회는 충분했다. 유엔의 추산에 따르면 2005년 기간 동안 700척 이상의 외국 트롤 어선들이 소말리아 영해에서 불법적인 어로활동을 하였다. 분석가들의 추산에 따르면 매년 3억달러 어치의 물고기가 소말리아 바다에서 불법 어획되었다. 이것은 대단히 심각한 이슈인데, 불법 어로행위가 근절되어 소말리아 수산업이 복구됨으로써 소말리아인들이 합법적으로 살아갈 수단이 제공되지 않는 한, 소말리아의 해적들이 근절될 가능성은 희박하기 때문이다.

 

 소말리아 해적들은 지난 몇년간 점차 세련되어져 갔다. 최초 이들의 전술은 단지 해안으로부터 어선을 발진시켜 우연히 만나는 첫번째 배를 공격하는 단순한 것이었다. 카리브해의 해적들과 마찬가지로, 이들은 소형 선박을 사용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했다가 점차 성공이 누적되면서 보다 크고 빠른 선박과 보다 강력한 무기 및 항법시스템을 활용하게 된다. 이들의 습격 빈도가 증가함에 따라, 상선들은 점차 해안으로부터 멀리 떨어져서 움직이게 된다. 많은 해상보안 전문가들은 당시 해적들이 소형선박을 사용하기 때문에 50마일, 100마일, 200마일 이상 해안에서 떨어져 있으면 항양성이나 연료문제 등으로 제대로 해적질을 못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소말리아인들은 해안에서 420 해리 떨어진 지점에서 사우디 유조선 시리우스 스타 호(Sirius Star)를 납치함으로써 이러한 기대를 보기 좋게 무너뜨리게 된다. 소말리아인들은 트롤어선이나 소형 화물선들을 납치하여 이들을 모선 혹은 해상 작전기지로 활용함으로써, 이러한 항로패턴 변경에 적응했던 것이다. 이들 모선 혹은 해상 작전기지들은 외관상 다른 상업 선박들과 똑같기 때문에, 해적들이 자신의 목적을 위장하고 출격범위를 수백마일에 걸쳐 연장할 수 있는 데에 제격이었다. 이제 소말리아인들은 항로상에 숨어서 상대적으로 편안하고 안전하게 먹잇감을 기다릴 수 있게 되었다. 해적들은 일단 먹잇감을 식별하게 되면 마치 이리떼와 같이 스웜 전술을 사용하여 피해자를 공격하며, 통상 6척 이상의 고성능 고속정을 동원한다. 소말리아인들은 먹잇감이 저항 없이 투항하도록 위협하기 위하여 중화기로 무장하고 있다. 이들은 피해자들이 신속하게 항복하도록 유도하기 위하여 조타실 등에 자동화기나 RPG 등을 발사한다. 만약 이 공격으로 상선이 속도를 줄이거나 멈추게 되면 이들은 상선에 올라타 단지 수분 내로 배를 장악하게 된다.

 

 소말리아 해안에서의 초기 공격 사례를 하나 살펴봄으로써, 오늘날에도 계속 사용되는 여러 기법들을 엿볼 수 잇다. 1994년 9월 9일, 24명의 해적이 탑승한 소말리아 다우선(dhow) 한 척이 아덴만 칼룰라(Caluula) 북부 3마일 해상에서 MV 본셀라 호(MV Bonsella)에 접근한다. 해적들은 본셀라호에 박격포 2발을 발사하여 강제 정선시킨다. 이들은 배에 탑승한 뒤 자신들을 소말리아 해안경비대라고 소개한다. 이들은 선장에게 불법 어로행위를 하는 트롤어선들을 체포하기 위하여 본셀라호를 모선으로 징발하겠다고 말한다. 다음날, 이들은 어선으로 추정되는 2척의 배들을 추격한다. 소말리아인들은 이 배들이 일반 상선들임을 인지한 뒤에도 추격을 계속한다. 본셀라 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해적들은 이들 선박들을 멈추게 하는 데에도 박격포를 사용한다. 그러나 이번에는 두척 모두 속도를 늦추지 않고 추격을 따돌려 버린다. 해적들에게 왜 상선인데도 계속 추격했냐고 물어보자, 해적들은 단속범위를 넓히기 위하여 본셀라 호보다 빠른 배를 징발하고 싶었다고 대답한다. 10월 13일, 해적들은 다른 배를 나포하려 하지만 또다시 실패한다. 마침내 10월 14일, 해적들은 배에 있는 모든 현금과 거의 모든 보급품, 장비들, 그리고 화물로 실려있던 원조물자들을 몽땅 빼앗고는 본셀라 호를 풀어준다.

 

 사실 소말리아 해적질은 성격상 납치 및 몸값 사업이기 때문에, 해적들은 인질들을 상대적으로 잘 돌봐주는 경향이 있다. 해적들의 주요 본거지인 에일 항구에는 인질들의 식사 제공을 위하여 몇몇 신규 레스토랑들이 문을 열었다. 선사들은 해적들이 선원들과 배, 화물 등에 피해를 입히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해적들의 요구에 보다 순응하는 경향이 있다. 게다가 선사들로서는 몸값 지불 외에는 취할 수단이 별로 없다. 무력으로 선박을 되찾으려 시도할 경우, 자칫 선원들에 대한 인명피해가 있을 수 있으며, 배를 위험에 빠뜨리고, 소말리아인들의 무력 보복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배를 그냥 해적들이 잡아두게 놔 두는 것도 별로 좋은 선택이 못되는데, 이 경우 선사 입장에서는 매일 25000달러 가량의 기회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몸값을 빨리 지불하여 인질극을 빨리 끝내는 것이야말로 해적들에게나 피해자들에게나 가장 이득이 되는 선택이 된다.

 

 해적들로부터 인질들을 구출하고자 시도할 경우 벌어지는 위험에 대해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로, 2009년 4월 4일에 소말리아인들에게 납치된 요트 타닛 호(Tanit)를 구출하기 위해 프랑스인들이 벌인 작전을 들 수 있다. 이 배에는 선장의 3살 난 아들을 포함하여 5명의 프랑스 시민들이 탑승하고 있었다. 프랑스 군함이 요트의 돛에 사격하여 요트가 소말리아 해안까지 이동하지 못하도록 막는다. 요트가 표류하고 몸값 협상이 정체됨에 따라서 프랑스 코만도 부대가 4월 9일 공격을 개시한다. 총격전 과정에서 요트 선장인 플로렝 르마콩(Florent Lemacon)이 사망한다. 선장의 아내와 아들, 그리고 또다른 부부는 살아남는다. 해적 2명이 사살당하고 3명이 체포된다.

 

 1990년대의 대부분 해적공격 사례에서는 영해 불법 침입이나 불법 어로행위들이 핑계로 제시되고 있다. 예를 들어 1998년 1월에는 소말리아 민병대가 불가리아 화물선을 견인하던 시리아 선박을 억류하였는데, 당시 이들은 이 배들이 소말리아 영해에 불법으로 들어왔다고 주장하였다. 이 배들은 선주들이 벌금 11만 달러를 낸 뒤인 2월 경에 석방되었다. 그해 말, 소말리아 민병대는 케냐 어선 한척을 나포하였는데, 이 당시의 주장에 따르면 이 배가 에일 근방 해안에서 불법 어로행위를 했다고 한다. 이 배는 소말리아 법정에서 50만 달러의 벌금을 부과당한다.

 

 아덴만과 소말리아 영해에서의 해적질 건수는 2005년 이전까지는 상당히 적은 편이었다. 2000년에는 단지 23건만이 보고되었다. 2001-2002년 기간 동안에는 미국 주도의 해상부대인 합동임무부대 150(Combined Task Force 150)이 2001년 항구적 자유작전(Operation ENDURING FREEDOM)을 지원하는 과정에서 인도양과 아라비아 해 북부, 아덴만 지역을 순찰하게 되면서 더욱 줄어들게 된다. 그러나 간헐적인 해적질은 꾸준히 벌어졌는데, 이에 따라 2002년 8월 IMB에서는 뱃사람들에게 소말리아 해안으로부터 50마일 이내로는 접근하지 말고, 가능하면 100마일 이상 떨어져서 항해하라고 조언하게 된다. 2002년 7월 초에는 소말리아 민병대가 키프로스 소위의 배를 푼트란트 연안에서 나포한다. 화물선 아아미르 호(Aamir)는 아랍연합토후국(UAE)로부터 모가디슈로 향하고 있었으나, 악천후로 인하여 소말리아 북부 해상에서 투묘했던 것이다. 선주는 배를 돌려받기 위하여 결국 40만 달러를 지불하게 된다. 그달 말, 소말리아 해적들은 북한 소유의 선박 한 척을 납치하여 30만 달러를 요구한다. 2002년 말, IMB에서는 소말리아 해안에서의 해적질 위협이 증가되었음을 선언한다. 그러나 2003년과 2004년에는 해적질이 다시 감소하며 2004년에는 단지 10건의 해적질만 발생한다.

 

 이러한 상황은 2005년이 되면서 다시 변하게 되는데, 당시 소말리아인들은 다수의 인상적인 공격을 벌임으로써 주목을 받게 된다. 이러한 섬뜩한 사건들 중의 하나가 MV 셈로우 호(MV Semlow)에 대한 납치사건인데, 당시 이 배는 2004년 12월 인도양 쓰나미 사건(Indian Ocean tsunami)로 인한 소말리아 희생자들을 원조하기 위하여 850톤의 쌀을 싣고 가던 중이었다. 이 배는 2005년 6월 27일 해적들의 습격을 받을 당시 케냐 뭄바사로부터 소말리아 부사소(Boosaaso)로 향하고 있었다. 선장 셀라투라이 마할링감(Captain Sellathurai Mahalingam)의 회상에 따르면, 해적들이 갑자기 들이닥쳐 5~ 10발의 총격을 선교에 가했으며, 이어 고속정을 타고 선측에 달라붙었다고 한다. 권총과 AK-47 소총, RPG 등으로 무장한 10명의 해적들이 배의 측면으로 기어올라 15분만에 배를 장악하였다. 마할링감에 따르면, 해적들은 배를 일단 장악한 뒤에는 대단히 조용해졌다고 한다. 해적들이 말한 바에 따르면, 셈로우 호는 그 해의 20번째 먹잇감이었다고 한다. 일단 배를 장악한 해적들은 배를 뒤지기 시작한다. 이들은 배의 금고에서 8500달러를 훔쳐갔고, 기타 선원들의 개인 물품들을 빼앗아갔다. 이후 해적들은 마할링감에게 배를 킬 후르(Ceel Huur)로 향하도록 지시한다.


(계속)

출처 : FocusWar
글쓴이 : 운영자-박용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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