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고 관련

[스크랩] [번역] 할크 강 전투 1223 (The Kalka River 1223) - 몽고의 군대(1)

박용수 2014. 10. 27. 15:16

  다음은 Osprey Publishing 사의 Campaign 시리즈 중의 하나인 'Kalka River 1223 - Genghiz Khan's Mongols invade Russia' 를 (무단으로 ^^;) 번역한 일부입니다. 총 90페이지 정도 되는 책을 번역하다 보니 양이 많아 챕터별로 나누어 번역합니다. 

 

  


몽고의 군대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러시아나 유럽의 군사학자들은 몽고 내지는 타타르인의 군사 기술이 매우 원시적일 것이라고 믿어왔다. 학교 교과서에는 통상 몽고 전사들이 단순한 양가죽만 입고 있는 것으로 묘사되었다. 이러한 잘못된 편견은 중세시대에 쓰여진 기록들의 영향과 몽고 내지는 타타르 기원의 군사 유물이 대단히 드물었기 때문에 발생한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나마 군사 유물의 대부분도 몽고군이 정복한 지역에서 나오는 화살촉 정도에 불과했다. 비교적 최근에 들어 비교적 다양한 고고학적 유물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장소는 오늘날의 몽고 공화국 북동쪽의 몽고 민족과 국가의 발상지인 동부 트란스 바이칼(eastern Trans-Baikal) 지역으로, 오늘날 러시아 연방의 영토에 속해 있다. 비교적 최근의 민족학적 연구물들과 이전 시기의 발굴품들, 그리고 이 발견을 비교해 봄으로써 우리의 몽고에 대한 지식은 더욱 늘어나게 되었다. 그 결과 대다수 몽고 전사들이 사용한 군사장비에 대하여 상대적으로 명확한 그림을 그릴 수가 있게 되었다. 중세의 연대기 기록(medieval chronicles)과 이 연구들을 연관시켜 보았을 때, 타타르-몽고 군대는 중기병(heaviliy armoured)과 경기병(light cavalry)이 혼합되어 있었다는 것을 추정하는 것이 가능하다.

 

 (알타이 산맥과 몽고에서 출토된 13~14세기 몽고의 군사장비들: 1-2. 찰갑형 흉갑의 개별 찰갑편; 3. 투구; 4-6. 복합궁들; 7-34. 여러 가지 형태의 화살촉들; 35-39. 여러 가지 형태의 창날; 40. 기병도(sabre); 41. 도끼, 아마도 전투용이기 보다는 작업용으로 보인다; 32-43. 화살통.)


 

 몽고의 선대 민족이나 동시대의 민족들을 포함한 중앙아시아의 거의 모든 중세 민족들은 군대의 주 충격부대(main military striking force)로 중갑기병(armoured cavalry)을 사용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고학자들이 몽고-타타르 갑옷 유물들을 거의 찾지 못했다는 사실 때문에 최근까지도 징기스칸의 전사 대부분은 경무장한 기마궁수였을 것이라는 잘못된 결론이 지배적이었다. 물론 어떤 문명이던지 간에 완벽한 갑옷은 그리 잘 발굴되지를 않는다. 게다가 그것이 꼭 금속일 필요도 없는 것이다. 일부는 분명 몽고의 선대 민족인 거란족(Khitans)들에게서처럼 가죽제일 수도 있다. 거란인들은 요나라(Liao dynasty)를 세워 여진족 내지는 금나라(Jurchen or Chin dynasty)에 의해 대체될 때까지 북부 중국을 통치했다. 패배한 거란족의 일부는 보다 서쪽으로 이동하여 서요(Kara Khitai)를 세웠고, 이들은 징기스칸 정복 사업의 초기에 나름의 역할을 맡게 된다. 

 

(서부 스텝 지역에서 발견되는 13-14세기의 몽고 궁수용 물품: 1. 화살통 혹은 활가방(bowcase)의 부분 조각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뼈 조각품; 2. 유물 조각을 통해 재현한 활가방; 3-7. 활가방의 단면도, 위(3)에서부터 아래(7)까지.)


 또한 몽고군은 승리 후에 전장에 거의 무기류를 남겨두지 않았다는 것도 주목해야 한다- 이런 행동은 사형에 해당하는 범죄로 간주되었다. 대신 이들은 갑주를 모아 분류하여 전사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전사가 죽게 되면 그의 군사 장비들은 후계자에게 물려주었고, 무덤에 같이 묻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 그러나 타타르-몽고의 갑옷조각 일부가 몇몇 무덤에서 발견되었다. 동부 트랜스 바이칼 지역에서는, 소위 드뵤르찌(Dvortsy), 즉 '왕궁(palaces)'이라고 불리는 매장 장소에서 갑옷들이 발굴되었다. 이 갑옷 조각에는 철판(iron plate) 또는 원형(round)과 가장자리만 둥근 방형(rectangular with rounded edge)의 2종류의 찰갑편(lamellae)으로 된 것 등이 있었다. 방형의 것은 좁고(폭 1.5cm) 얇으며(1~2mm 두께) 길이 2.5cm 가량의 금속 조각(strip of metal)으로 이뤄져 있었다. 이것들은 또한 등간격으로 벌어진 구멍 3개씩을 갖고 있었다. 이것들은 지름 5cm의 볼록한 디스크 형태의 것과 함께 발굴되었다.

 

 (키에프의 산타 소피아 성당의 한 벽에 그려진 모종의 궁정의 모습. 1113년에서 1125년 사이에 만들어진 것으로, 키에프 러시아(Kievan Russia)에서 일어난 일을 그렸다기 보다는 카티스마 궁전(Palace of Kathisma) 같은 비잔틴 수도 콘스탄티노플에서 있었던 일을 묘사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긴 하지만 중세 러시아 왕공들은 그들의 복장에서부터 궁정 의식에 이르기까지 상당 부분을 비잔틴 제국의 것으로부터 모방했었다. )

 

 중세의 기록에 따르면, 몽고인들은 가느다란 실로 이 판들을 조립하여 쿠야드(khuyad)라고 불리는 철 찰갑형 흉갑(iron lamellar cuirass; cuirass는 어깨에서 엉덩이 위까지를 보호하는 갑옷, 흉갑 혹은 동체 갑옷)을 만들었다고 한다. 갑옷 전문가들의 연구에 의하면, 이 흉갑들의 경우 크게 2가지 종류로 나뉜다고 한다. 한 종류는 '요갑-흉갑(corset-cuirass; corset은 허리 갑옷을 의미)'형으로, 두 부분으로 나뉘어 만들어진다; 이 부분들은 몸의 각 면으로 내려가거나 드물게는 앞뒤로 연결된다(these sections going down each side of the body or more rarely across the front and back). 또한 팔꿈치까지 내려가는 방형의 어깨 보호대가 존재하며, 무릎 혹은 정강이 중간까지 내려가는 넙적다리 보호대도 있다. 또 한 종류의 흉갑은 재킷 같은 형상에 앞에는 목에서 갑옷 끝단까지의 부품과 뒤에는 두개골에서 갑옷 끝단까지 이어지는 부품이 있는 형태다 (The second form of cuirass was more like a jacket with sections from the throat to the hem in front and from the base of the skull to the hem at the back). 여기에 다시 방형 혹은 좀 드물게 반원형의 어깨 보호대가 팔꿈치 혹은 더 아래의 팔까지 이어지게 설치된다(These again had rectangular or more rarely semi-circular shoulder protections reaching the elbows or sometimes further down the arms).

 

 (두 명의 군인 성자들을 묘사한 북부 러시아 네레디차(Nereditsa)에 있는 이 벽화는 1199년에 제작되었다. 여기에 그려진 성자들은 완벽하게 비잔틴 스타일이며, 무기나 갑옷류도 당대 러시아에서 사용되었던 것들과는 전혀 무관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형태의 철 갑옷에 더하여, 몽고인들은 노출된 다리나 팔, 손 등을 보호하기 위해 나무 방패를 사용했다. 이러한 방패를 칼카(Khalka)라고 불렀다. 비록 오늘날 유물로 남은 칼카는 전혀 없지만, 남부 시베리아 등지의 주변 민족들이 사용하던 것과 유사하지 않을까 추정할 수는 있다. 분명히 갑옷의 스타일은 주변에서 베껴가게 되어 있다. 중무장한 타타르-몽고 군대의 갑옷 일습에서 빼놓을 수 없는 다른 요소로는 일명 두가(duuga)라고 불리웠던 투구를 들 수 있다. 중앙아시아 양식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바와 같이, 최종적인 형상은 다양하긴 하지만 투구는 통상 여러 개의 금속편으로 만들어지는 공통점을 가졌다. 예를 들어 여진족(Jurchen)의 경우에는 투구를 7개의 판을 가지고 만드었고, 예네시 키르기즈 터키인(Yenesi Kirghiz Turks)들의 경우에는 8개의 판을 가지고 만들었는데, 모두 다 정수리 부분에서 모여 리벳 가공된 특징이 있다. 이렇게 만든 투구는 구형 내지 원뿔형 형상을 띄게 되며, 높이는 18~22cm에, 정수리 부분에는 작은 판과 표족한 창 혹은 깃털 꽂이가 달려있는 형태가 된다. 수평 혹은 수직 이마판(brow-plates)과 십자 형상의 안면보호대(cross-shaped visor)는 몽고 특유의 것이다. 또한 전사의 목부분은 머리 크기에 맞춰 만들어진 두꺼운 철판 판막(thick flap of iron plate)으로 보호하거나, 헬멧에 달린 쇄갑 형태의 얼굴 커버(mail face covering)로 보호했다. 일부 몽고군의 경우, 철 찰갑형 흉갑 대신에 '연질갑옷(soft-armour)'이라고 불리는 천 또는 펠트천을 여러 겹으로 싸고, 여기에 금속 판을 덧대기도 한 갑옷을 입었다.

 

 (이것은 거의 완벽한 일습의 서부 스텝지역 유목민 전사의 전투장비들로서, 아벤테일(aventail; 투구의 하단부로부터 늘어뜨려서 목,어깨를 보호하는 쇠사슬 드림)의 흔적이 남아있는 투구와, 버클(buckle; 허리 죔쇠)이 달려있는 호벅(hauberk; 쇠사슬 갑옷), 세이버(sabre; 기병도), 단도, 창날, 마구(horse-harness)까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들의 연대는 대략 12세기 말에서 13세기 무렵으로 추정되며, 이 무덤에 묻힌 사람은 폴롭티아인일 것으로 추정된다.)

 

 추브(tsuv)라고 불리는 포제 외투는 타타르-몽고 전사 복장의 또다른 일면이었다. 이것은 보통 외투나 별 차이가 없었지만, 안감이 전혀 없었다. 또한 뒤에는 허리부분에서 끝단까지가 잘려져 있었고, 추브 앞쪽 치마 부분은 허리에서 무릎까지만 닿게 되어 있었다. 이 코트의 장점은 비가 왔을 때 기수가 말에 탄 상태로도 비를 막아주었다는 점이다. 게다가 옷깃(lapels)을 이용하여 더욱 더 기상 변화에 대처할 수도 있었다. 어떤 코트의 경우에는 별도의 방형 두건(hood or cowl)을 이용하여 옷깃(collar)까지도 덮을 수도 있었다.

 

 (일단 몽고인들이 북서 이란의 고지 초원지대에 있는 동계 주둔지를 떠나게 되면, 이들은 곧장 복잡한 산악 지대로 들어서게 된다. 사진에 나타난 이란의 마쿠(Maku) 지역에서처럼, 처음에는 산들이 낮고 암반지대를 만나게 된다. 그러나 일단 코카서스 산맥으로 도착하게 되면 동부 유럽 및 서부 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산봉들 사이에 놓인 자신들을 만나게 된다. )

 

 몽고 전사는 구탈(gutals)이라는 장화를 신었다. 이 장화의 디자인은 단단한 안장 위에서 장시간 발을 박차에 넣은 채로 고속 질주할 때에 특히 유용했다; 즉, 여러 세기에 걸쳐 발전된 안장에서 안전하게 말을 타는 방식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 장화들은 유프트(yuft), 즉 러시아식 가죽으로 만들거나, 천, 벨벳(velveteen; 면 벨벳, 거죽에 고운 털이 돋도록 짠 면제 비단), 수에드(suede; 양가죽의 일종)등으로 만들기도 했다. 각각의 장화는 쭉 뻗은 정강이 부분(straight shin)과 뻣뻣하지만 조절 가능한 뱀프(vamps; 구두의 앞닫이, 등가죽)가 있었고, 여러 펠트 층으로 만든 두꺼운 깔창이 있고, 발가락 부분은 위로 올라간 구조로 되어 있었다(Each boot consisted of a straight shin piece with stiffer adjustable vamps, a thick sole made of layers of felt with a relatively stiff upturned toe). 겨울에는 보다 고급 장화인 보이톡(boitog)을 착용했다.

 

 (여러 박물관이나 개인 소장고들 안에는 아직도 몇몇 아름답게 만들어진 완전한 찰갑형 흉갑이 존재하고 있다. 대부분은 티벳이나 서부 중국에서 유래한 것으로, 만들어진지 기껏해야 1세기 남짓한 것이 대부분일 것으로 추정되어 왔다. 그러나 최근의 과학적 검사 결과, 몇몇은 실제 중세시대에 만들어진 것임이 밝혀졌다. 이것들은 티벳의 불교 사원의 갑옷 성물함 안에 보관되어 있던 것들로, 원래 몽고 족장들로부터 기증된 물건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 갑옷들은 중국과 이슬람 그림들에서 나타나는 몽고 전사들이 입고 있는 갑옷들과 동일하다.)

 

 타타르-몽고의 기수들의 무기 중에는 노모(nomo)라고 불리는 합성궁이 있었으며, 행군중에는 특수한 보관가방에 넣고 다녔다. 이 가방을 카닥(Khaadak)이라고 부른다. 투머 불수(tumer bulsuu)라고 불리는 화살은 평평하거나, 3~4개의 날을 가진 머리를 갖고 있었고, 케게닉(khegenyg)이라고 불리는 자작나무 껍질로 만든 전통(birch bark quiver)에 보관되었다. 여기에는 쿠레(khyre)라고 불리는 줄(file) 역시 보관했다. 켈메(khelme)라고 불리는 날선 기병도(razor-sharp sabre)가 있었고, 메세(mese)라고 불리는 날이 넓은 칼(broader sword)을 쓰기도 했으며, 굴다(gulda)라고 불리는 철제 철퇴(iron mace)나, 알마 쿠네(alma khune)라고 불리는 전투 도끼(war-axe)를 쓰기도 했으며, 자다(zhada)라고 하는 창을 사용하기도 했다. 모든 전사들은 쿠툭(khutug)이라는 칼(knife)을 휴대했는데, 장화의 정강이 부분에 보관하거나, 게드(gerd)라고 불리는 특별한 칼집에 넣어다녔다. 이 외에도 슙게(shubge)라고 불리는 송곳(awl)이나, 케테(khete)라고 불리는 부싯돌용 쇳덩이나, 젤리(zeeli)라 불린 장옷(robe), 말다리 묶는 줄(hobbles for his horse) 등을 휴대했다. 말다리 묶는 줄에는 다시 3가지 종류가 있었다: 투샤(tushaa)는 앞다리용이고, 우로드(urode)는 앞다리 혹은 뒷다리용, 슈더(shuder)는 앞뒤 다리를 한꺼번에 묶을 때 쓰는 것이었다. 또한 줄구르(zulguur)라는 말가죽 빗(horse-comb)과, 준(zuun)이라는 바늘, 우타스(utas)라는 실, 타슈르(tashuur)라는 채찍, 마이칸(maikan)이라는 간단한 텐트를 휴대했다. 어떤 인원의 경우에는 오보호이(ovohoi)라는 것을 가지고 다녀야 했는데, 이것은 유르트(yurt)라는 여러 명이 잘 수 있는 틀이 잡힌 천막(framed tent)의 덮개였다.  

 

출처 : FocusWar
글쓴이 : 박용수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