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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번역] 할크 강 전투 1223 (The Kalka River 1223) - 몽고 지휘부

박용수 2014. 10. 27. 15:15

 다음은 Osprey Publishing 사의 Campaign 시리즈 중의 하나인 'Kalka River 1223 - Genghiz Khan's Mongols invade Russia' 를 (무단으로 ^^;) 번역한 일부입니다. 총 90페이지 정도 되는 책을 번역하다 보니 양이 많아 챕터별로 나누어 번역합니다. 

 

 



몽고 지휘부

 

 

 주치(Jochi)는 징기스칸의 장남으로, 몽고의 풍습에 따르면 국가의 최전방 지대에 울루스(ulus), 즉 왕자령을 갖도록 되어 있었다. 비록 울루스라는 용어가 지리적인 영역을 의미하는 것 이상으로, 지배되는 사람들을 의미하는 바가 많긴 하지만, 어쨌든 주치의 울루스는 대략 서부 시베리아(western Siberia)에서 볼가 강(Volga River)의 투르케스탄(Turkestan)까지를 포함한다고 보면 된다. 주치는 이미 뛰어난 장군임을 입증한 바 있는데, 그 대표적인 예로 호라즘(Khwarazm)에 대한 몽고의 주공 전에 있던 카슈가르(Kashgar)에서 파가나(Farghana) 계곡에 이르는 천산 산맥(Tien Shan mountains) 일대의 대담한 위장 공격을 이끌었을 때를 들 수 있다. 그 후에는 몽고의 트란스옥사니아(Transoxania) 침공 당시 상당 규모의 독립 종대를 지휘한 바도 있다. 분명 주치는 아버지인 징기스 칸으로부터 신뢰받는 인물임은 사실이었으나, 몽고 씨족사회에서 그는 다소 민감한 위치에 있었다. 그의 어머니이자 징기스칸의 본부인(chief wife)인 보르테이(Bortei)는 주치가 태어나기 9달 전에 메르키트 족(Merkit tribe)에게 납치된 적이 있었고, 따라서 주치의 진짜 아버지가 누구냐에 대한 의문점이 있을 수 밖에는 없었다. 이는 나중에 몽고의 지배 왕조에 상당한 문제점을 안겨주게 된다. 사실 주치는 그의 아버지가 1227년 죽기 조금 전에 사망하였고, 몽고의 대칸의 칭호는 징기스칸의 유언에 따라 3남인 오고타이(Ogedei)에게 물려주게 된다. 주치의 차남이었던 바투(Batu)는 서부 울루스(western ulus)를 물려받게 되는데, 이 영역은 서쪽으로 몽고군의 말이 거쳐간 지역 전부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것이 소위 '금장한국(Golden Horde)'이 되었으며, 몽고의 제 2차 침공 당시 러시아를 정복한 것도 바투의 군대였다. 한편, 주치의 장남이었던 오르다(Orda)는 금장한국 동쪽에 다른 칸국(khanate)을 세웠는데 이를 '백장한국(White Horde)'이라고 부른다.

 

( 키에프의 산타 소피아(Santa Sofia) 성당에 있는 러시아 왕공에 대한 손상된 그림의 재현품. 이 인물은 비잔틴 스타일로 묘사되어 있으며, 비잔틴 황제와 똑같이 되어 있다. 이것은 키에프 러시아(Kievan Russia)가 비잔틴으로 부터 동방정교(Orthodox Christianity)와 상당 부분의 상류층 문화를 받아들이면서 들어온 것이다. 다만 서민 문화의 경우 근본적으로 슬라브적인 것을 유지했는데, 스칸디나비아와 터키, 핀란드의 영향도 상당히 받고 있었다.  )

 

 수부타이 바하두르(Subodei Bahadur)는 나중에 바투의 가장 중요한 장군이 되며, 그 자신은 1236년에 강력한 볼가 불가르인(Volga Bulgars)들을 정복하게 된다. 그는 일부 현대 사학자들에게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장군이라 간주되기도 하며, 징기스칸과도 동격으로 보는 경우도 있다. 1176년 경에 태어난 수부타이는 듀를루킨 몽고의 우리안쿠트 부족(Urianqut tribe of Durlukin Mongols) 출신이다. 그는 상 예니세이 강(upper Yenisei River) 지역에 살던 순록치기(reindeer breeder) 겸 사냥꾼이었다. 그는 25세가 되기 전에 처음으로 군대를 지휘하였고, 뛰어난 기병 지휘관이라는 것을 입증했다. 그와 제베 노욘(Jebei Noyon)은 소위 '사나운 물결(raging torrents)'이라고 불리는, 징기스칸을 위해 싸웠던 사람들 중의 하나였다. 그는 징기스칸에게 말하길, '옷이 바람을 막듯이(As felt protects from the wind)' '저는 당신의 적을 무찌르겠습니다(so I will ward off your enemies)'라고 했다. 수부타이는 명민하고 지혜로운 것으로 묘사되고 있으며, 용기와 함께 교활한 것으로도 명성을 얻었다. 전설에 따르면, 그가 한번은 적진에 홀로 말타고 들어가 마치 탈영병인 것처럼 행동하면서 적에게 그들의 적(즉 수부타이 군)이 엄청나게 멀리 떨어져 있다고 믿게 만들었었다고 한다. 그 결과 이들은 기습당하게 된다. 추정컨대 그 역시 징기스칸에게 불려가 호라즘 침공 계획을 수립하는데 참여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았을까 한다. 그는 그가 60세가 넘어서까지 장군으로 복무하였고, 1248년에 사망한다.

 

 (몽고군이 장거리 원정을 가면서 겨울을 보낼 때에는 언제나 가능한 한 가장 좋은 방목지에서 보냈다. 제베 노욘과 수부타이 바하두르가 북서 이란의 스텝 지대와 근처 아제르바이잔에서 겨울을 보낸 이유가 이것이었다. 한여름에도, 이란의 다른 지역에서는 풀들이 말라죽어버리는 것과 달리, 이 사진에 촬영된 바와 같이 풀들이 푸르른 것을 알 수 있다.)

 

 수부타이 바하두르만큼 유명하면서도 어린 동료인 제베 노욘(Jebei Noyon)은 예수트 부족(Yesut tribe) 출신이다. 용감하면서도 성급한 제베는 한때 1차 몽고 부족 전쟁에서 테무진(징기스칸)에 대항해 싸운 바가 있으며, 화살로 테무진의 말을 쏘아 넘어뜨리기까지 한 바가 있다. 나중에 포로가 되었을 때, 제베는 처형 당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뜻밖에도 제베 노욘, 즉 '화살'이라는 이름을 하사받은 채 새로운 주군의 군대에 편입되게 된다. 또 다른 전설에 따르면, 제베가 도보로 달아나던 도중 테무진의 기병에게 둘러싸이게 되는데, 그는 서로 말을 탄 채로 일대 일의 정정당당한 결투를 하자고 요구했다고 한다. 그러자 테무진이 그에게 흰 코를 가진 말을 주었는데, 이때 제베는 테무진의 부하들 중에 누가 나갈 지를 고민하는 사이에 가까운 언덕으로 달아나 버렸다고 한다. 며칠이 지나 제베는 비무장으로 테무진의 진영으로 찾아와 신하로 받아주지 않으면 죽어버리겠다고 한다. 여러 해가 지나 서요(Kara Khitai state)를 정복하던 시기, 제베는 흰 코를 가진 말을 모두 모아 징기스칸에게 선물로 바쳤다고 한다. 1218년의 전역이야말로 제베 노욘이 징기스칸 군대에서 두각을 발휘한 첫번째 사례로 판단된다. 이 당시 그는 마지막 나이만족 지도자(Naiman rulers)이자 징기스칸의 오랜 라이벌이었던 쿠출룩(Kuchlug)이 무슬림들을 괴롭히는 것을 막도록 파견되었었다. 나이만족의 영토는 이슬람과 수세기간 적대관계였던 서요 제국에 명목상 포함되어 있었다. 제베는 쿠출룩을 몰아내고 무슬림들에게 신앙의 자유를 찾아주었고, 한편으로 서요의 영토를 팽창하는 몽고국의 안으로 편입시켰다. 이 정복으로 몽고의 강역은 이슬람과 호라즘의 변경지대와 직접적으로 맞닿게 된다. 이것이 이슬람 세계로의 몽고의 침략을 촉발시켰다는 점이 참 아이러닉하다. 유명한 원조비사(Mongol Secret History)에는 제베 노욘과 수부타이 바하두르에 대한 수많은 영웅담이 수록되어 있다.

 

 (나무와 힘줄, 뿔 등으로 만들어진 강력한 합성궁(composite bow)은 몽고의 가장 유명한 무기였다. 이 무기는 그들의 적인 터키인들이나 아시아와 중동의 다른 민족들도 사용했다. 중세 시대에 사용한 합성궁들은 현재 그 유물이 거의 남아있지 않으며, 가끔 몽고의 얼어붙거나 바싹 마른 지역의 무덤에서 부분 부분 출토되기도 한다. 사진의 것은 최근 중동에서 발견된 것으로, 탄소연대 추정에 따르면 12세기 말에서 13세기 초의 것으로 나타났으므로, 몽고 침략자들에 대항하여 사용된 물건일 개연성이 다분하다.)

출처 : FocusW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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