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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번역] 이라크 보안군에 대한 한국에서의 교훈, 2006, SSI Op-Ed

박용수 2014. 10. 27. 15:47

 < 원문출처 : Iraqi Security Forces and Lessons from Korea (http://www.strategicstudiesinstitute.army.mil/pubs/display.cfm?pubID=745) >

 

 이번 번역글은 6.25 동란 전후의 대한민국에서의 국군 및 경찰 재건 과정에서 벌어졌던 분열 문제 - 일제 청산문제, 좌우의 대립 등 - 를 사례로 하여 미국이 이라크 보안군 재건에 어떤 태도로 접근하여야 하는 지에 대하여 시사하는 바를 정리한 글입니다.

박용수 드림

 

 


 이라크 보안군에 대한 한국에서의 교훈

(Iraqi Security Forces and Lessons from Korea)

 

셰일라 미요시 예거 박사
전략연구소

 

 


 실질적인 이라크 보안군의 창설이야말로 이라크에서의 성공(그리고 미군의 철수)을 위한 필수 불가결한 조건이다. 핵심적인 문제는 이것이 과연 가능한가에 있다. 미국이 이와 같은 과업을 맡았던 것이 처음 일은 아니다. 일부 성공한 사례(발칸반도와 엘살바도르)도 있고, 일부 실패한 사례(베트남), 그리고 일부 진행 중인 사례(아프가니스탄)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국방군을 창설했던 첫번째 사례로는 2차 대전이 끝나고 해방된 남한(South Korea)의 사례를 들 수가 있다. 그리고 이 사례는 성공적인 사례다. 사실 우리는 남한에서 이 과정을 2번 수행했는데, 한번은 한국전쟁 이전의 일이었다; 그 다음은 한국전쟁 도중 및 이후에 산산조각난 국군을 재건하던 것이었다. 신생 남한 군대가 1950년 6월의 북한군의 공격의 물결을 막아내지 못했다는 사실은, 우리 정책이 남한에 재래식(conventional) 공격을 방어할 수 있는 적합한 군사력을 건설하는 데에 실패하였다는 측면을 부각시킬 뿐만 아니라, 동 군대가 그동안 북한의 지원을 받은 좌익 폭도들의 반란을 진압하는 데 보여준 성과들을 퇴색시키는 측면도 있다. 이러한 한국에서의 경험은 이라크에서 실시하고 있는 미국의 활동에도 많은 시사점을 제공하고 있다.

 

 이라크에 대한 한국에서의 가장 핵심적인 교훈은, 우연이든 운명이었든, 또는 고의였던지 간에 1945년 무렵 사분오열되었던 남한 정치권이 1950년에 이르러서는 통일된 형태(homogeneous entity)로 변모 되었다는 사실이다. 군 자체도 내부의 분파적 요소들을 제거함으로써 응집력 있는 국군으로 변모하였다. 이라크의 깊고 강렬한 지역적, 민족적, 분파적 골들은 이라크 국가 형성 및 제대로 된 보안군 창설에 있어 가장 커다란 걸림돌이다. 현재 미국이 이라크 보안군 창설에 있어서 갖고 있는 계획에서는 이러한 문제들을 정면으로 해결하려고 하고 있지 않다. 그 결과 우리는 보안군을 지원하기 위하여 장기간 이라크에 남아있어 주던가, 아니면 우리가 떠난 뒤에 이라크가 유혈 내전 끝에 셋으로 쪼개지도록 방치하던가의 기로에 서게 되었다.

 

 미국이 남한에 보안군(security force)을 건설하고자 한 것은 일본 식민지로서 해방을 맞은 1945년 9월, 군정기간이 시작된 직후부터 시작된 일이다. 당시 남한에는 "한국군"이란 없었으며, 단지 상당수 한국인들로 이뤄진 대규모 식민지 경찰력만이 남아있었다. 미 군정은 편의상 일본인을 제외한 식민지 경찰력을 거의 그대로 유지하였다. 이는 폭발적인 정치적 상황을 유발하였는데, 당시 식민지 경찰은 식민지 압제의 핵심적인 기관으로서 가장 타기되고 있었으며, 여기에 복무하던 한국인들은 반역자요 부역자로 간주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른 여러 미국인들의 결정들과 함께 이 결정이야말로 오늘날까지 남한에서 반미 감정이 성장하게 하는 주요 소재로서 이용되고 있다. 이 사례에서 볼 수 있는 교훈은, 이라크 군대(Iraqi Army)를 해체했어야 하는가에 대한 논쟁에서, 해체 결정이 옳았다고 하는 쪽에 손을 들어주고 있다. 국가에 의해서 폭력적으로 압제당해왔던 사회에서, 그러한 압제 기구와 연결된 고통스런 기억이 남아있을 수 있는 상황에서, 우리가 주민들의 신뢰와 믿음을 얻을 수 있는 보안군을 창설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보안군과 정권을 완전히 붕괴시킨 후에 바닥에서부터 재건함이 옳다고 볼 수 있다.

 

 1948년 8월의 대한민국(Republic of Korea) 건국은 미 군정의 종식을 의미했고, 점령군의 철수를 의미했다. 미 합중국은 새로 창설된 국군과 경찰을 훈련시키고 조언할 수 있는 군사 고문단을 창설했다. 1948년 8월 이전, 미국은 경찰(national police)의 좌익 게릴라에 대한 반란 진압 작전을 돕는 것을 주목적으로 하는 경찰예비대(constabulary force)를 조직하였다. 군사고문단(Korea Military Advisory Group, KMAG)은 오늘날 이라크에서 미국이 운영하고 있는 것과 비슷한 구조를 가졌으며, 대대급 및 군사학교에까지 고문단이 배치되었다.

 

 북한 침공이 있기 직전인 1950년 6월까지, 보안군들(security forces; 경찰과 국군을 통틀어 이야기한 것으로 보임)은 폭도들을 제압하는 데 있어 성공적이었다. 이들 작전의 기록에 대해서는 비록 논란의 소지가 남아있긴 하지만, 1950년 6월 무렵에 이르렀을 때에는 폭동이 거의 진압된 상태였다.

 

 그러나 남한 사회를 구성한 정치권을 분열시킨 큰 문제가 있었다. 정치적으로 우파와 좌파간의 대립은 심각한 것이었다. 이러한 정치적 균열은 지역적, 종교적(기독교도 vs. 공산주의자), 계층적 갈등으로 심해졌다. 이러한 국내 사회 분열 양상이 벌어진 것은 이라크의 경우와 유사하다. 여기서 중요한 교훈은, 한국이 다양한 분열 요소들을 갖고 있었다는 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분열 요소들이 2개의 지리적, 정치적 실체 - 남한 및 북한 - 로서 분열 및 집결되었다는 것이며, 더욱 중요한 점은 보안군에 이러한 분열이 반영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경찰과 육군(당시 해군과 공군은 이라크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그 규모가 매우 작았다)에는 우익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러한 결과가 나오게 된 주요 원인으로는 수백만명의 사람들이 남쪽으로 이주한 것을 포함, 남북의 분단으로 우익이 남쪽에 집중되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또다른 중요한 요소로는 1948년에서 1950년 사이에 육군에서 벌어진 좌익 숙군 과정(purge of leftist elements from the Army)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숙군과정은 그다지 매력적인 일은 못되었고, 고문단 역시 개입되었을 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이로 인해 국군의 응집성은 강력해졌다. 남한군이 북한군의 공격을 막아내지 못한 것은, 이들의 응집성과 의지 측면 탓이라기보다는 미국의 무기 및 훈련 지원 정책에 기인한 바가 더 크다.

 

 이라크에서의 교훈이 바로 이것이다. 사회를 반영하는 혼합된 보안군을 창설하는 것은 단지 시아파가 대다수를 차지하는 군대를 만드는 것이나 다름없다. 지역에 기반한 군사 및 경찰 부대들의 경우, 오늘날 일개 특정 분파가 대다수를 차지하는 상황을 맞게 되었다. 이러한 부대들은 잠재적으로 국가 정체성, 충성심, 사명감, 의지 측면을 갉아먹을 수 있는 심각한 분열 양상에 빠져들 수가 있다. 1950년 6월 이전에도 남한의 반란 성향의 병사들이 폭도들의 핵심이 되어 내전을 일으킨 사례가 있다. 이라크 보안군 내의 분파적 성향은 이제 이라크 내전을 일으킬 핵심 요소가 되고 있다.

 

 이라크 문제에 있어서 쉬운 해결책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남한에서의 교훈을 통해, 1940년대 말 한국의 경우보다 더 깊은 민족적, 역사적, 문화적 분열 요소를 갖고 있는 이라크의 분파적 분열 양상을 봉합시킬 방안을 찾지 못한다면, 미국의 현재의 계획은 내전을 단지 시간문제로 만들 뿐이며, 유고슬라비아에서의 상황을 재연하게 될 것이다. 그 결과 분열된 이라크만이 안정된 상태로 간주되는 상황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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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FocusW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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