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소련·아프가니스탄 전역

[스크랩] [번역] 서평 : 아프가니스탄에서의 KGB (KGB v Afghanistanye) - NATO 방위대학교

박용수 2014. 10. 27. 16:11

< 원문출처 : Nato Defense College - Research Publication (http://www.ndc.nato.int/download/downloads.php?icode=160) >

 

 


 

 

 

 

 

아프가니스탄에서의 KGB (KGB v Afghanistanye)


원저자: 라리사 쿠체로바, 모스크바 (Larisa Kucherova, Moscow: Yauza/Eksmo, 2009, pp382, ISBN 978-5-699-35004-9)
서평자: 고든 베넷 (Gordon Bennett)

 

< 주석:
 이 논문에 나타난 견해들은 서평자 개인의 책임이며, 나토 방위대학교나 북대서양조약기구에는 책임이 없습니다. >

 

 

 

벨로루시 쪽 관점 (The Belorussian dimension)

 

 최근 러시아에서는 소련의 아프간 침공(Soviet intervention in Afghanistan)에 관한 여러 책들이 나타나고 있다. 이들 중에서 특히 흥미로운 책이 "KGB v Afganistanye" (아프가니스탄에서의 KGB)라는 책이다. 이 책을 출판한 곳은 러시아 출판사인 야우자-엑스모(Yauza-Eksmo)로서, 이곳은 특히 안보 및 정보 관련 주제를 전문으로 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1979년~ 1988년 사이에 아프가니스탄에서 복무했던 몇몇 벨로루시 출신 KGB 장교들의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저자 및 편집자인 라리사 쿠체로브나는 KGB 장교의 딸이자 아내로서, 면담자들이 말한 내용에 대해서 거의 바꾸지 않고 그대로 적고 옮겨놓은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 책은 소련의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공식 군사 "원조"에 대한 20주년을 맞아 여러 기고문들을 묶어놓은 모음집인 셈이다. 다만 최소한 한 챕터의 경우 최소한 10여년 전에 씌여진 내용인 것 같다.

 

 쿠체로브나는 벨로루시 KGB의 도움을 받았으며, 책의 서두에는, 책 안의 사건에 참여했던 사람들이나 관계자들을 포함한 32명에 대하여 도와줘서 고맙다고 밝히고 있다. 그 명단에는 V.N. 나타세프 대령(Col. V.N. Natachev)도 포함되어 있는데, 그는 벨로루시 KGB의 정보 및 대민관계실(information and public relation) 책임자이자 책의 서문을 써준 사람이기도 하다. 이 모음집의 주인공들과 공저자들은 주로 구소련 벨로루시 군구(Belorussian Military District) 출신들로서, 1979년에서 1988년 사이에 아프가니스탄에서 복무한 해당 군구 출신 140명의 방첩장교들(counterintelligence officers)로 되어 있다. 도움을 준 이들 중 일부는 KGB 특수부대 팀(KGB Special Forces teams)에 복무한 사람도 있다.

 

< 주석:
벨로루시는 옛 구소련 공화국 중에서 안보 및 첩보 기관에 과거의 명칭인 KGB를 그대로 유지한 유일한 국가이다. >

< 주석:
KGB는 소련 내에서 활동하는 모든 방첩활동들에 책임을 지고 있었다. 오늘날 이 임무는 FSB에서 수행하고 잇다.>

 

 이 책이 벨로루시측의 "일면(single dimension)"만을 다루고 있다는 점은 이 책의 한계를 보여준다. 전략적 안보 문제나 전략적 분석, 전략적 임무 등이 소련 공화국들의 부서들에서 다뤄지는 일은 없었다. 아프가니스탄 상황의 큰 그림과 관련된 전략적 결심수립에 관련된 벨로루시 내지 기타 공화국 사람이라면, 단지 KGB 중앙 조직에서 최고위층으로 복무한 사람에 한정된다. 이 책을 만드는데 도움을 준 사람들은 대부분 당시 젊은이들이었고, 이들 중 일부만이 향후 소련 붕괴 후의 벨로루시 안보 기관에서 중요한 직위까지 올라갔다. 그러나 이들의 현장 경험은 대단히 흥미로운 것으로서, 면밀한 관심을 가질 가치가 충분하다.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소련 군사 방첩팀들 (Soviet Military counterintelligence teams in Afghanistan)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소련 침공 기간, 벨로루시 군구의 군부대 들에서 - 당시 소련 모든 군구들의 모든 방첩 부서들에서 아프간 상황에 조금씩 기여하도록 방침이 정해져 있던 것 같다 - 젊은 군사방첩 장교들이 차출되었으며, 이들은 재훈련 - 특히 다리어(Dari)를 포함한 언어 코스 등이 포함된 - 을 거친 뒤 소위 아프가니스탄 제한 분견대(limited contingent in Afhganistan)의 부대들 중 한 곳으로 보내졌다. 일부 벨로루시 KGB 군사방첩 장교들 중에서는 출발 전에, 소련 안보 기구들이 어떻게 1944년에서 1953년 사이에 벨로루시의 저항을 억눌렀는지에 대해 공부하게 된 인원도 있었다.

 

 이들의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임무에는 표준적 부대 방호 임무와, 범죄 척결, 지역 정보요원 모집, 납치된 소련 병력 구출, 자발적으로 적과 협력하는 소련 병력 색출 등이 있었다. 후자의 경우, 소련 방첩기관에서는 적극적이고도 성공적으로 자신들의 옛 동지들과 싸운 자들이나, 혹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사람들에 주로 집중하였다. 이들 중 특히 중요한 인물로는 자야츠 중령(Lt Col Zayats)을 들 수 있는데, 그는 배신한 것으로 보이는 2명의 지역 안내자를 살해한 것 때문에 아군에게 기소당했다. 이에 분노한 자야츠는 APC를 타고 기지 밖으로 몰고 나갔으며, 이후로 다시는 목격되지 않았다. KGB 군사방첩기관에서 끝내 밝혀내지 못한 실종 사건에는 1980년대 초 흔적도 없이 사라진 한 러시아 지질학자 사건도 있었다.

 

< 주석:
소련군 지휘관들은 대체로 지역 안내자들을 불신하였으며, 자주 배신한다는 의혹을 품었다. >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파병부대 내에서 군사방첩 부문의 비중은 꽤 컸다. 예를 들어 "전방 부대(front line)"인 제 103 공중강습사단(Air Assault Division)의 경우 23명의 방첩장교가 있었다. 이들의 일들을 묘사하는 이야기들은 마치 커다랗고 결코 완료할 수 없는 퍼즐 속에서 작지만 재미있는 조각들을 보는 것과 같다. 책의 공저자 대부분은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실책이라고 보고 있다. 이들 중 한명은, 소련이 소전쟁(small war)를 수행하기 위한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고 하였고, 아프가니스탄에 최초로 들어간 사람들 중 하나이자 제 108 테르메즈 사단(Termez Division) 소속이었던 또 다른 한명은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한 준비가 당시 하나도 안되어 있었다고 말하기도 하였다. 또 다른 사람의 경우, 새로운 사회주의 천국 내에 자리잡게 된 물라(mullah)들에게는 과학적 사회주의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기 때문에, 이들은 자동적으로 소련군의 적이 될 수밖에 없었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이데올로기적 이유로 소련군이나 KGB에 협력하는 아프간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으며, 이는 일부 소련 지도자들도 명확하게 인식했던 내용이었다. 더 나은 미래에 대한 약속은 잠재적 협조자(potential collaborator)들에게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밀가루 한푸대나 달걀 수십개, 기름, 빵, 고기 통조림을 댓가로 필요한 정보를 기꺼이 제공하였다. 또는 반대파에게 살해당한 친척들을 위해 복수를 하려고 협조하는 자들도 있었다. 어떤 협조자들의 경우 그냥 자신들 동네의 적들을 징벌하는 것으로써 협조하기도 하였다. 정보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는 데에 있어서, 이반 야코블레비치 민코 소장(Maj. Gen. Ivan Yakovlevich Minko) - 당시에는 대위였다 - 에 따르면, 자신의 조직에는 정보를 사는 데에 필요한 예산이 전혀 없었다고 하였다. 하지만 민코 이후 몇년 뒤에 아프가니스탄에서 젊은 장교로 복무했던 바실리 아나톨례비치 샤발린 대령(Colonel Vasiliy Anatolyevich Shabalin)의 경우 정보를 사는 데 있어서 충분한 예산을 갖고 있었다고 하였다. 샤발린에 따르면, 소련은 페름 시(city of Perm)에 아프간 화폐를 찍어내었고, 따라서 정보를 사는데 필요한 현찰을 충분히 가질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 한 사례에서는 소련군이 이란 화폐를 수송하고 있는 대상(caravan)을 습격한 적도 있다.

 

 소련 장교들 스스로는 이러한 "국제적 임무(international duty)"에 대하여 그리 잘 보상받지 못했다. 이들 중 일부는 아내를 아프가니스탄까지 데려오기도 하였는데, 이럴 경우 자동적으로 봉급이 30% 인상되었기 때문이었다. 한편, 소련 공산당 고문관들은 많은 보수를 받았으며, 이들의 통역관들조차도 사단의 군사 고문관들보다 많은 보수를 받았다.

 

 이 책을 도와준 사람들 중 대다수는 소련군이 종종 포로들을 고문했다고 시인하였다. 제 103 사단에서 방첩장교로 근무했던 빅토르 코슈바(Viktor Koshuba)는 소련군이 포로들을 때때로 두들겨 팼는데, 이는 저들 아프간 반군들도 소련군 포로들을 고문하고 불구로 만든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주장하였다. 코슈바는 이 구타가 "... 우리 방식, 슬라브 방식, 영혼을 담아..." 이뤄졌고 "... 이것이 전쟁이다... "라고 하였다. 제 890 파르자바드 연대(Farzabad regiment) 지휘관은 스스로 포로들을 고문했을 뿐만 아니라 부하들도 이를 본받기를 기대했다. 정찰부대의 통역관들은 심문관의 역할도 수행했는데, 한 공저자에 따르면 이들은 대단히 폭력적(brutal)인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이 고문이 꼭 성공적이라는 뜻은 아니었으며, 특별히 잘 버티는 포로들의 경우 추가 단계를 밟기 위해 아프간 방첩국 KhAD로 보내졌다는 정황으로 알 수 있다.  일부 소련군 부대에서는 포로들을 살해하였는데, 통상 이들이 도주를 시도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살해 행위는, 포로가 된 저항군 전사들이 아프간 당국으로 넘겨진 뒤 종종 풀려나 다시 저항군에 합류한다는 사실이 명백해 지면서 더욱 증가하게 된다.

 

 저자들은 자신들의 대 간첩 기법들에 대해서는 그다지 많이 밝히지 않았다. 그러나 이들은 자신들의 성공사례 몇가지를 소개하였는데, 이것들 중에는 지역 시간에 자신의 손목시계를 맞추는 것을 깜박한 파키스탄 정보장교를 적발해낸 사례라거나, 파키스탄인 교관을 포섭했던 사례 같은 것이 있다. KGB는 영국 첩보부에서 한 GRU 장교를 포섭하려는 것을 성공적으로 저지한 사례도 갖고 있다. KGB 팀에서는 해당 요원의 장비가 영국제라는 것을 (다만, 이 책에서는 어떻게 영국제인지 알아냈는가는 밝히지 않았다) 눈치챘다고 한다.

 

 소련군은 용의자가 무자헤딘인지 아닌지를 판별하는 방법으로, 해당 인원에게 셔츠나 그에 해당하는 옷을 벗으라고 한 뒤에, 명백한 총기끈 흔적(tell-tale sings of sling)이나 총으로 인한 멍자국(rifle bruises)이 있는지를 확인해 보았다고 한다. 또한 KGB는 저항군들이 회담장으로 사용하는 시장 상점들에 성공적으로 도청장치를 심기도 하였다. 1987년, KGB에서는 몇몇 아프간 관리들이 미국인들과 접촉하는 것을 가로채는 전자 감청에 성공하기도 하였다. 이들 아프간인들은 압축 송신기(burst tranmitters)를 공급받은 상태였고, 사람들이 몰려있는 번잡한 장소에서 메시지를 전송하라는 지침을 받고 있었다. KGB 감청팀은 이들을 붙잡을 수가 있었는데, 이는 이들 아프간인들이 지침을 무시하고 집에서 메시지를 전송했기 때문이었다. 이 책에서는 주로 인간정보(HUMINT) 작전들에 대해서 다루고 있긴 하지만, 한 이야기에서는 KGB 군사방첩기관에서 사용해야 했던 여러 측면에서 쓰기 번거로운(그러나 어떤 측면인지는 저자가 기술하지 않았다) 한 암호표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다. 방첩장교들은 이를 간단하게 하기 위해 자신들의 신분증(ID)에 인쇄된 글자와 연관된 숫자들을 사용하였고, 필요한 경우 몇몇 알파벳들을 더했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이들이 이러한 1회용지를 소지하고 다녔었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서술하지 않았다.

 

< 주석:
소련군 신분증(ID)는 일부분은 인쇄되어 나오고 나머지는 손으로 작성하게 되어 있었다.>

 


특수부대 (The Special Forces)

 

 KGB에서는 아프가니스탄을 여러 지역으로 구분하여 번호를 매겼다. 각각은 여러 주들을 포함하고 있었고, 어떤 지역의 경우 무자헤딘이 70% 이상을 장악한 지역도 있었다. 각각의 지역에는 해당 주들의 안보부서들을 통제하는 KGB 대리자들이 있었으며, 이들 부서들로는 GRU 부대들이나, 아프간 경찰 및 아프간 정보국 KhAD(Khadamat-e Etela'at-e Dawlati)에 대한 소련 고문관 등이 있었다. KGB 작전 그룹은 KGB 특수부대 팀들의 지원을 받았다.

 

 아프가니스탄의 KGB 특수부대들은 일반적인 특수부대들이 통상 하지 않는 일을 하였다: 대단히 동적인(kinetic) 특수작전들을 수행하였는데, 예를 들어 1979년 12월의 아프간 정부를 제거한 일이라거나, 최고 VIP나 중요 자산를 경호한다거나, 필요한 경우 적들을 추적하는 임무등을 맡았다. 1980년 여름 당시, KGB는 "카스카드(Kaskad)"라고 불리는 조직을 갖고 있었다. 이는 아프가니스탄 일대의 특수부대 팀들간의 소규모 네트워크였으며, 1979년 12월 작전 당시의 여러 공격부대 구성원들이 융합된 것이었고, 발라시카(Balashikha)의 특수부대 훈련센터 수료자 및 KGB 제 1국장(First Chief Directorate(Intelligence))에 속한 특수부대 "빔펠(Vympel)" 부대 요원들이었다. 카스카드에는 전체 지휘관과 사령부, 그리고 8개의 지역 사령부가 있었다.

 

 - 카불(Kabul)에 위치한 "우랄(Ural)"
 - 칸다하르(Kandahar)에 위치한 "카프카즈(Kavkaz)"
 - 헤랏(Herat)에 위치한 "카르파티(Karpaty)"
 - 신단드(Shindand)에 위치한 "카르파티-2(Karpaty-2)"
 - 젤랄라바드(Dzhellalabad)에 위치한 "티벳(Tibet)"
 - 마자르-샤리프(Mazar-Sharif)에 위치한 "세버(Sever)"
 - 쿤두즈(Kunduz)에 위치한 "세버-2(Sever-2)"
 - 가즈니(Ghazni)에 위치한 "알타이(Altay)"

 

 1983년 봄까지는 카스카드에 직속하는(serving consecutively) 부대가 4개가 있었다.

 

< 주석:
1979년 12월의 공식 침공 이전에도 아프간에 "카스카드" 부대가 이미 비공식적으로 파견되어 있었다. 카스카드 부대가 공식적으로 설치된 것은 1980년 7월 18일 소련 국무회의 및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의 결정에 의한 것이었다. 1983년 봄까지 카스카드는 다양한 시기에 걸쳐 총 4개 팀을 전개하고 있었다. >

 

 '아프가니스탄에서의 KGB'에서는 초기의 카불 공격이나 기타 다른 중요 전략 요충지에 대한 공격들이 여러 러시아 책들이나 전문 기고문들에서 묘사한 것처럼 영웅적이고 혼란스러운 총격전이었을 뿐만이 아니라, 훌륭한 정보 및 정찰활동을 통하여 대단히 정교하게 준비된 작전임을 알려주고 있다. 카불에 대한 소련의 정찰 및 정보 활동은 신중한(meticulous) 것이긴 했지만 항상 교묘한(subtle) 것은 아니어서, 중국을 포함한 외국 정보기관들의 주목을 끌게 되었다.

 

 이 책에서는 또한 아프간인들이 소련인들이 자국에 뭔가 불쾌한 일을 준비하고 있음을 의심하고 있었다는 것 또한 확인시켜 준다. 하지만 하피줄라 아민(Hafizullah Amin) 정권은 워낙 대중에 인기가 없었기 때문에 KGB와 GRU 팀에서 쿠데타를 준비하는 데 있어 별다른 어려움이 없었다고 한다. 침략자들은 단순히 아프간인들을 협박하는 것으로도 목표를 이룰 수 있던 경우도 있었다. 쿠데타 전날인 1979년 12월 26일, 제 357 공중강습연대가 바그람(Bagram)에 착륙했을 때, 아프간 공항 요원이 활주로 유도등을 끄려고 시도했었다. 당시 이미 지상에 있었던 소련군의 반응은 대단히 격렬했는데, 그 결과 지상의 소련 요원이 활주로 유도등을 담당하는 아프간 동맹자들을 두들겨패는 과정에서 활주로 유도등은 꺼지고 켜지기를 반복했다고 한다.

 


KhAD

 

 이 책의 주인공들에 따르면 (적어도 소련 침공 초기에 있어서) KGB가 유일하게 신뢰할 수 있는 동맹자는 KhAd(Khadamat-e Etela'at-e Dawlati) 국가정보국(State Information Agency)이었다고 한다. 다만 이 책의 공저자들 중 하나의 말에 따르면, 이 조직 또한 서로 반목하는 2개 파벌로 나뉘어 있었다고 한다.

 

 이 책에서는 소련과 Khad간의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침공 직후 KGB는 KhAD 제 5국(Fifth Directorate)과 함께 신정부와 소련군에 대항하는 무장세력과 맞싸울 특수부대를 창설했다. 이 새로운 부대의 수장은 바카 박사(Dr Bakha)였다. 그의 주요 소련 고문관은 데니센코 대령(Col Denisenko)였다. 저자에 따르면 그는 KGB의 "S" 국장이었다고 한다. "S"국은 불법입국자(illegals)에 관한 부서였고, 제 5국의 주요 임무는 아프간 지역사회 내에서의 정보 업무였던 것으로 보인다. KGB는 특히 제 5국의 3과 (3rd Department of the 5th Directorate)를 중요시했는데, 이곳은 무자헤딘에게 붙잡힌 소련 포로들을 찾아내고 가능하면 구출하는 임무를 맡고 있었다. 이 부서는 사이드 아크바 중령(Lt Col Said Akbar)이 맡고 있었으며, 그의 주요 소련 고문관은 블라디미르 가르카비 소령(Major Vladimir Garkaviy)이었다.

 

 소련과 KhAD간의 협력에는 종종 어려움이 가득했다. KGB 요원들은 대단히 특이한 문제들을 여럿 겪게 되었는데, 그들 중 하나는 한 회복 중이던 KhAD 요원이 같은 병원에 있던 한 환자를 죽였을 때의 사건이었다. 당시 그 요원은 그 환자가 유명한 저항군 조직 지도자의 형제임을 밝혀냈던 것이다. KGB에서는 당시 그 환자를 이용하여 포로로 붙잡힌 소련군 병사와 교환하려고 하고 있었지만, 당시 KhAD 살인자는 KGB와 다른 KhAD 요원들이 시체를 회수하기 전에 시신을 땅속에 파묻어버렸다. 무자헤딘 조직 지도자는 살해당한 형제의 시신과 소련군 포로를 교환할 준비가 되어 있었는데, 그는 형제가 어쩌다 죽게 되었는지 앞뒤 정황을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KGB는 KhAD 지휘부의 도움을 얻어 바브락 카르말 대통령(President Babrak Karmal)에게 그 시체를 발굴하도록 허락해달라고 청원하게 된다. 허락을 받은 이들은 시체를 발굴해내게 되는데, 이번에는 이 거래를 반대하는 측에서 시체의 발가락들을 잘라 던져버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들은 분노한 환자의 형제가 거래를 무산시키기를 바랬던 것이다. 한 KhAD 요원이 사라진 발가락들 찾아냈고, 이어 소련 의사들이 이들을 도로 시신에 꿰맬 수가 있었으며, 결국 교환은 이뤄졌다. 이 교환을 감독하던 KGB 요원은 위조된 서독 여권을 갖고 있었으며 작전을 대단히 부드럽게 운영했기 때문에, 당시 KhAD에서는 데니센코 대령에게 이 KGB 동료가 사실 이중첩자일 것이라고 보고할 정도가 되었다. 문제의 장교는 독일어를 유창하게 구사하였으며, 그에 따르면 서독 정보부(BND)가 해당 소련군 포로들을 무자헤딘으로부터 사서 서쪽으로 옮겼기 때문에 일이 쉬워졌다고 하였으며, 또한 아프간 저항군 지도자의 한 캠프에는 서독 고문관들이 일하고 있었다고 하였다.

 

 KGB와 KhAD간의 연계는 대체로 효과적이었으며, 소련측에서는 종종 분석과 정보 측면에서 이들 아프간 동지들을 추앙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소련군이 아프간에서 철수하기 시작하고 Khad 요원들이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살아남고자 하던 시기, KGB와 KhAD간의 관계는 금이 갔고, 그리 유쾌하지 않은 일들이 벌어졌다고 한다 - 저자는 이 금이 간 일에 관하여 구체적인 이야기들은 언급하지 않았다.


 

저항 (The opposition)

 

 소련 파병부대는 전반적으로는 아프간 동맹자들을 절대 신뢰하거나 존경하지 않았고, 이들과 저항군들과의 구분도 항상 불명확했다. 이러한 태도는 '아프가니스탄에서의 KGB'의 공저자들에게서 잘 드러난다. 이러한 불신을 크게 뒷받침해주는 근거 중의 하나가 지난 9년간의 소련의 아프간 개입기간 동안 총 285541명의 아프간 군인이 탈영(AWOL)했다는 사실이다. 소련 "동맹자(allies)"들은 아프간인들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 책의 공저자 중의 하나인 올렉 블라디미로비치 페레스야트닉(Oleg Vladimirovich Peresyatnik)에 따르면 동방 사람들의 마음을 사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며, "당신은 저들의 환한 미소 뒤에 무슨 생각을 갖고 있는 지 알 길이 없다"라고 하였다.

 

 1981년에만 해도 파키스탄에 124개 - 이들 중 상당수는 아프가니스탄에 매우 가까웠다 - 의 훈련 캠프가 있었으며, 이곳에서는 국경을 넘어 임무를 수행할 전사들을 준비하고 있었다. 어떤 아프간 저항군 부대에는 1000명 이상의 전사들이 있었으며, 이들은 소련군에 대항한 작전을 위해 보다 작은 집단으로 쪼개졌다. 무장 저항세력의 숫자는 1981년의 3만명에서 1983년에는 4만 5천명, 1986년에는 15만명으로 늘어났다. KGB는 적들을 4개 부류로 구분하였다: 신념을 갖고 있는 과격분자들, 과격분자가 무서워서 소련군과 싸우는 자들, 밭에서 일하는 것보다 싸우는 것이 더 쉽고 벌이가 좋다고 생각하는 부류들, 저항군에 가담함으로써 지역사회에서의 자신들의 위상을 높이려는 자들.

 

 '아프가니스탄에서의 KGB'의 저자들이 주로 소련 방첩장교들이기 때문에, 이 책에서 반 서방적인 태도와 함께 소련 시절에 대한 향수가 분명하다는 것은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 이들 중 일부는 오늘날 1979년 당시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 군사기지를 설치하려고 계획한 것이 분명히 드러났다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들은 이에 대한 증거는 전혀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서방 국가들을 비난하면서 이들의 정보기관들에 대해서는 경의를 표한다. 파키스탄을 비난하면서 자신들이 아프가니스탄에서 겪은 많은 어려움들에 책임이 있다고 한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KGB는 미국과 파키스탄, 영국, 독일, 이라크 정보기관들에 대항해 활동했다고 한다.

 

 저자들은 소련 침공 2개월 뒤인 1980년 2월 23일 카불에서 발생한 폭동이 미국인들에 의해 사주되었다고 썼다. 소련 방첩팀은 폭동 주모자들 중 하나를 구금했는데, 그는 미국 시민권자였다. 그는 체포된 후 KhAD에 넘겨졌다. KGB에서 왜 이렇게 가치있는 선전 자산을 KhAD에 넘겨줬는지에 대해서는 설명되어있지 않다. 그의 미국인 서류가 가짜였을까? 그가 이중 시민권을 가진 지역민이라 TV 선전에 내보내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던 때문일까? 책에는 아무 설명이 없다.

 

 이 책에서는 GRU (일반 참모부의 주요 정보부서)의 활동에 대해서도 몇차례 서술하고 있다. GRU의 정보 수집 센터는 아프가니스탄 전역에 흩어져 있었다. 양 조직간의 접근방식의 차이에 대하여 언급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GRU 쪽에서는 먼 미래에 자신들의 "투자"가 빛을 발하기를 기대하며 장기적 관점에서 인원을 모집한 반면, KGB 측에서는 신속한 결과를 원하는 편이었다. 이러한 흥미로운 차이점에 대해서 책에서는 더 깊게 다루지 않았다.

 

 책에서 다룬 또다른 흥미로운 이야기로는 무자헤딘이 점령한 동굴에 대하여 기화탄두형(fuel-air(volumetric)) RPG인 "쉬멜(Shmel)"(범블비(Bumblebee))를 사용한 데 대한 묘사이다. 소련군은 화염방사기를 사용한 경우도 있었으나, 특히 어려운 상황에서는 비밀무기인(super-secret) "쉬멜"을 사용했다고 한다. 이는 살상범위가 80 세제곱미터에 달하는 탄두를 갖고 있었다. 이 무기는 대단히 비밀무기 성격이 짙어서, 1개의 "쉬멜"마다 3명의 책임자가 있었으며, 해당 무기를 사용할 때마다 어떤 상황에서 사용했고, 그 결과가 어땠는지에 관한 서면 보고서를 제출해야만 했다. 소련군은 Su-25에서 투하하는 자유낙하탄 형식의 기화폭탄도 사용했다.

 

 이 책에는 다양한 흑백사진들이 소개되어 있는데, 주로 각 장의 주인공들을 소개하는 것들이며, 종종 러시아 및 아프간인 동료들의 모습이 담겨있기도 하며, 카불로부터 온 엽서도 담겨져 있다. 인쇄 품질은 조악한 편이며, 목차도 없다.

 

 

부록

 

다음의 책들은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소련군 작전에 대한 재미있는 정보들을 알려주는 러시아어로 씌여진 책들이다.

 

"Kaskad i Omega" - 발렌틴 유토프 저, X-History, Moskva 2003

 이 책에서는 "카스카드"와 "오메가"의 2개 KGB 특수부대의 역사와 활동, 지휘관들과 영웅들의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여기에는 무자헤딘의 구조나 전투 방식에 관한 정보도 수록되어 있다. 또한 2개 특수부대 팀이 아프가니스탄, 러시아, 모잠비크에서 활약한 일들에 대하여 몇몇 흑백사진과 함께 소개되어 있다. 이는 러시아에서 출판된 아프가니스탄의 특수부대 작전에 대한 20여 종의 책들 중의 한권이다.


"Moya Poslednyaya Voyna"(내 마지막 전쟁) - 육군대장 마흐무트 아흐메토비치 가레프 저, Insan, Moskva 1996

  저자는 소련 일반참모부 차장이었으며, 아프가니스탄 대통령의 마지막 소련 군사고문관(1989-1990)이었다. 현재는 러시아 군사과학대학 학장이다. 이 책에서 가레프 장군은 1988년 이후 아프간 군대에 대한 소련 원조라든지, 저항군의 구조 및 규모라든지, 1989년 아프간 정부군의 손실과 같은 통계 자료들을 많이 제공하고 있다. 그는 KGB와 이들이 아프가니스탄에서 한 역할에 대해 대단히 비판적이며, 몇몇 신세대 러시아 외교관들에 대해서도 이들이 외국어 지식 뒤에 숨어 국제 사회의 비난으로부터 조국을 지키는 것과 복잡한 문제들을 분석하는 일에는 전혀 도움을 주지 않고 있다고 비난하였다. 마지막 장에서는 아프간 전쟁에 대한 결론과 교훈을 담고 있는데, 이는 1979년-1989년 동안의 아프간에서의 군사활동에 대한 논리적 평가라기보다는 소련 지도부와 서방측에 대한 비난에 가깝다. 이 책은 목차가 잘 되어 있으며, 사진들과 3개의 지도가 담겨져 있다.

 

 - 1990년 7월의 젤랄라바드 반격 계획
 - 카불 방어 조직
 - 1990년 아프가니스탄 군 조직

 

"Tragedya i Doblest Afghanistana" (아프간 전쟁의 비극과 영광) - 알렉산드르 랴호프스키 저, EKSMO, Moskva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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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 생략)

 

 

출처 : FocusWar
글쓴이 : 운영자-박용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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