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적 · 아프리카 반군

[스크랩] [번역] 해적질과의 기나긴 전쟁사 : 역사적 경향 / 미육군 지휘참모대학, 2010년 / 제 1장. 소개

박용수 2014. 10. 27. 16:31

< 원문출처 : 미육군 지휘참모대학 (http://www.cgsc.edu/carl/download/csipubs/wombwell_32.pdf) >

 

 이번 번역하는 글은 해적의 역사를 다룬 논문입니다. 최근 삼호주얼리호 구출작전으로 소말리아 해적이 언론을 다시금 떠들썩하게 만든 바 있으며, 해적이란 '보물섬'이나 '피터팬' 등의 아동소설, '카리브해의 해적'과 같은 영화, '원숭이섬의 비밀'과 같은 게임 등에 자주 다뤄짐으로써 우리에게 친숙해진 소재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실질적인 해적의 역사에 대해서 다룬 학술자료는 쉽게 접하기 어려운데, 마침 미육군 지휘참모대학 홈페이지에 이 논문이 'NEW!'라는 표시와 함께 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와 번역을 시작하였습니다. 이 글을 번역하면서, 또 여러분들이 이 글을 읽으시면서 함께 해적문제에 대한 새로운 안목을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박용수 드림

 



해적질과의 기나긴 전쟁사 : 역사적 경향
(The Long War Against Piracy: Historical Trends)

 

저자 - 제임스 A. 웜웰 (James A. Wombwell)

 

 


 표지사진: 2009년 5월 13일, 미 해군 미사일 순양함 USS 게티스버그 호 (CG 64) 소속의 VBSS (visit, board, search, and seizure; 방문, 승선, 수색, 체포) 팀과, 미 해안경비대 전술 법률집행팀 제 409 분견대가 아덴만(Gulf of Aden)에서 해적으로 의심되는 자들을 붙잡는 모습이다. 이들은 연합해군사령부 (CMF, Combined Maritime Force)의 담당구역에서 작전 수행 중, 한 상선으로부터 구조요청을 받고 출동한 상태였다. 양개 팀은 다국적 임무부대(multinational task force)였던 제병연합 임무부대 (CTF, Combined Task Force) 151의 일부였으며, 동 임무부대는 CMF 책임지역 전반에 걸쳐 전세계의 해양 안보(maritime security)를 보호하기 위하여 해적행위를 적극적으로 억제, 교란, 제압하도록 임무기반(mission-based) 위임을 받은 상태였다. 이 사진은 미해군 사진부의 대중교류부문 1급 전문가(Mass Communication Specialist 1st Class; 미 해군에서는 1948년 이후 기술상병(specialist)계급은 없어졌기 때문에 '전문가'로 번역했습니다. 정확한 표현을 아시는 분은 연락 부탁드립니다. 역주) 에릭 L. 뷰로가드의 사진이다.

 


서지정보

(생략)

 

 

 

 

추천의 글 (Foreword)


 전투연구소(Combat Studies Institute)에서는 본 연구소 소속 사학자인 제임스 A. 웜웰이 작성한 '해적질과의 기나긴 전쟁사 : 역사적 경향'을 여러분께 소개하게 되어 기쁘게 생각합니다. 이 연구에서는 미 합중국, 대영제국, 기타 해양 국가들이 바다에서의 해적행위에 대해서 어떻게 다루었는지에 대해서 조사하였으며, 이어 이들 사례를 토대로 오늘날 급증하고 있는 해적활동을 제압하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는 고찰들을 이끌어내었습니다. 퇴역 해군 장교인 웜웰은 전 세계 다양한 곳에서 지난 300여년간 벌어진 여러 해적질들에 대해서 그 경과를 추적하였습니다. 비록 각 사례마다 구체적인 세부사항들은 다르지만, 웜웰은 이들 간에는 일반화를 통해 유용한 결론을 낼 수 있을만큼의 유사성은 충분하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러한 결론들 중에는 해적질의 원인이나, 해적질이 번성할 수 있게 허용하는 요소들, 그리고 이 문제를 박멸하길 원하는 정책입안자들이 쓸 수 있는 다양한 대응책들 또한 포함되어 있습니다. 해적질이 자라나기에 알맞은 조건이 존재하는 한편 법과 질서의 세력은 강력한 대응을 하지 않는 경우, 낮은 수준의 강도단으로 시작한 것들이 종종 엄청나게 불어나게 되고, 정상적인 교역에 대한 이러한 위협을 제거 혹은 제압하기 위하여 종국에는 상당한 군사력을 투입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게 됩니다.

 

 본 논문은 시의 적절한 연구라 할 수 있는데, 이는 최근 아덴만(Gulf of Aden)과 소말리아 연안(off the Horn of Africa)에서 해적행위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 시점이기 때문입니다. 비록 다른 국제 항로에서도 해적질은 수십년간 문제가 되어 왔던 부분이지만, 이 소말리아 해적활동은 전 세계적인 관심을 받고 있는 문제입니다. 이 연구는 특히 미 육군에서도 관심을 가져야 하는 문서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역사적 기록을 통해 해적행위가 해양작전만으로 근절된 경우는 거의 없음이 명백히 밝혀져 있기 때문입니다. 웜웰이 다소 과도할 정도로 명백히 밝힌 바와 같이, 국가가 육상에 있는 해적질 가능 조건들을 군사/정치적인 수단을 동원하여 제거하는 경우에만 해적질 난동은 진정하게 제거될 수 있었습니다. 또한 해적 근절을 위한 싸움에 엄청난 자원이 소모되기 때문에, 해적 소탕에 앞장서는 국가는 거의 대부분의 경우, 세계적 혹은 지역적으로 가장 우세한 군사력을 가진 국가였습니다. 따라서, 저자가 제안하는 바처럼, 미 합중국의 지상군 역시 어느 시점부터는 소말리아 해상의 국제 교역을 다시금 안전하게 만들기 위해 불려갈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 시점이 오게 된다면, 제임스 웜웰이 작성한 역사적 맥락에 대한 조사가 정책 결정자들이나 군인들 모두에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과거가 발단이 됩니다!(The Past Is Prologue!)'

 

윌리엄 G. 로버트슨
전투연구소장

 

 

 

 

서문 (Preface)

 

 현대의 해적질은 그저 웃어넘길 대상이 아니다. 수천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해적들은 전 세계 많은 곳의 무고한 선원들에게 심각한 위협으로 남아있다. 또한 이들의 활동 형태는 긴 세월 동안 거의 바뀐 것이 없다. 이들은 범죄자들 - 도둑이자 살인자들 - 로서, 바다와 항구에 있는 무방비상태의 선원들을 먹잇감으로 삼는다.

 

 전직 미 해군 장교로서, 본인은 미 합중국 해군이 해적들을 상대로 하는 활동들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 그러나 오랫 옛날부터의 해적질들을 면밀히 관찰해 보면, 해상 기반 작전만으로는 해적질을 결코 근절할 수가 없음을 알게 된다. 종국에는 해적질은 지상의 문제이며, 군사적인 방법이든 정치적인 방법이든 간에 반드시 육상에서 해결되어야 한다. 이 논문에서는 과거의 해적들에 대항하여 각국이 취한 행동들을 연구하였으며, 오늘날 지도자들이 아프리카와 아시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오늘날의 해적 문제에 대해 어떻게 접근하여야 하는지 시사점을 제공하고자 한다.

 

 본인은 이 프로젝트를 도와준 모든 이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싶다. 우선 전투연구소장 윌리엄 G. 로버트슨을 언급하자면, 이분은 이 프로젝트를 고안하여 내가 진행하는 내내 용기를 주었다. 또한 연구 및 출판팀장 켄달 고트씨에게 감사를 드린다. 옛 해군 전우인 켄달 L. 카드 소장은 최근 소말리아 해안에서 자신이 맡았던 역할에 대해서 토론해 주었으며, 또한 그의 참모들은 내게 몇가지 유용한 정보원들을 알려주었다. 게임 디자이너이자 초보 역사가인 트레이 그린 씨의 경우, 내게 여러 책들과 기타 해적 관련된 자료들을 제공해 주었다. 내 아니인 파울라와 딸 헤더, 캐서린은 내가 계속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용기를 주었다. 마지막으로 마릴린 에드워드 부인은 최초 초안을 뛰어난 편집술로 향상시켜주었다. 이 책은 이들 모두의 도움으로써 훨씬 좋은 것이 되었다. 이 논문에서 생략되거나 잘못된 것이 있다면, 그 잘못은 모두 본인에게 있다.

 

 

 

 

 

 


목차 (Contents)

 

 

추천의 글

 

서문

 

제 1장. 소개

 

제 2장. 서인도 제도에서의 해적

카리브해의 해적, 1500-1730
19세기의 해적

 

제 3장. 지중해에서의 해적

바바리 해적
그리스에서의 해적

 

제 4장. 아시아에서의 해적

페르시아만에서의 해적
동남아시아에서의 해적
중국에서의 해적

 

제 5장. 현대 해적

20세기 말에 나타난 해적의 발흥
동남아시아에서의 해적
소말리아 해적

 

제 6장. 결론

 

참고문헌

 

부록 A. 1982년 12월 10일 유엔 국제 해양법 협약

부록 B. 선박의 종류

저자 소개

 


 

 

 

제 1장. 소개 (Introduction)

 

 

 저들은 야간에 밀려들어 신속하게 배의 측면으로 기어올라왔다. 단도와 권총으로 무장한 10명의 해적은 비무방 선원들을 신속하게 제압했다. 배를 다 털고 난 해적들은 선원들을 자신들의 배로 옮겼다. 포로가 된 선원들은 해적선에서 6일간 잡혀있다가, 이어 보트 한척에 태워져 바다 한가운데로 쫓겨났다. 해적들은 배에 노획물을 싣고 떠나갔으며, 이후 해적들을 환영하는 여러 항구들 중 한 곳에서 이 짐들의 일부를 처분하였다.

 

 비록 이 이야기가 영국 및 프랑스 해적들이 스페인의 해운을 위협하던 "해적질의 황금시대(Golden Age of Piracy)"의 이야기처럼 들리긴 하지만, 이 사건은 300년이나 전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 사건은 2000년 10월에 말라카 해협(Straits of Malacca)에서 벌어진 일이다. 이 이야기의 선원들은 그나마 운이 좋았다; 이들은 보트를 타고 11일 간이나 표류하던 중, 한 태국 어부의 손에 구조되었던 것이다. 이들 해적들은 나중에 인도 고아(Goa) 해안 근방에서 잡히기 전에, 알론드라 레인보우 호(Alondra Rainbow)가 갖고 있던 화물의 절반에 해당하는 알루미늄 잉곳 1천만 달러어치를 팔아치울 수 있었다. 이들이 팔아치운 화물이 이후 누구의 손으로 들어갔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알지 못하고 있다.

 

 비교적 최근, 소말리아 해적들이 보다 대담한 일련의 습격을 벌이면서 언론 주요 머릿기사를 장식하게 되는 2008년 무렵이 되기 전까지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해적이란 것이 오늘날에도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사실 오늘날이야말로 지난 16세기 말에서 17세기 초의 '해적질의 황금시대'보다 해적질이 더 심각한 상황이다. 이 논문에서는 해적질의 역사적 맥락을 고찰하였으며, 이어 전세계 해양 국가들이 직면하고 있는 현대적 딜레마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이 연구에서는 여러 시공간에 걸쳐 해적질을 살펴보았는데, 카리브해에서의 해적질, 지중해에서의 해적질, 아시아에서의 해적질, 페르시아만에서의 해적질, 인도양/아덴만에서의 해적질을 살펴보았다. 또한 과거 미 합중국과 대영제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들이 해적질을 어떻게 다뤘으며, 또한 오늘날 이를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다룰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제시하였다.

 

 상인들의 상선들이 바다로 나가기 시작하는 것과 거의 동시 시기부터 해적들의 공격은 시작되었다. 수메르인들, 바빌론인들, 크레타인들, 이집트인들 모두 고대 기록들을 통해 해적 문제를 언급하고 있다. 수메르 문서에 따르면, 수메르인들은 4000년 전부터 오늘날의 페르시아만에서 온 해적들로부터 습격을 받았다. 함무라비 왕(기원전 1948년-1905년)은 유명한 그의 법전에 해적질에 관련된 조항을 포함시켰다. 이 법전은 해적질을 금하는 최초의 성문법이기도 하다. 그리스 작가들에 따르면, 과거 2000-1400 BC 무렵 에게해를 주름잡던 크레타야말로 최초로 해군을 만든 국가라고 한다. 크레타 해군이 만들어진 데에는 이 지역의 해적들을 제압하는 데에도 일부 목적을 두고 있었다. 기원전 14세기, 해적들이 나일 삼각주에 들어와 선박들을 공격하자, 이집트의 왕 아멘호텝 III세는 특별 해양경찰대를 조직하여 삼각주 지역을 정찰하고 선박들을 보호하였다.

 

 해양 무역이 확대되면서 해적들이 약탈할 기회가 더욱 늘어나게 되었다. 대부분 사람들은 검은수염(Blackbeard), 캡틴 키드(Captain Kidd), 기타 17세기 및 18세기의 유명한 해적들이 벌인 활약들에는 익숙할 것이다. 하지만 19세기 및 20세기에 벌어진 해적 활동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미국 해병대가의 한 소절에는 "트리폴리 해안까지(to the shores of Tripoli)"라는 부분이 있는데, 이는 미 합중국이 19세기 무렵 바바리 해적(Barbary pirates)과 싸웠던 사실이 반영된 부분이다. 해적질은 단지 유럽이나 서방에서만 벌어진 현상이 아니다; 해적질은 중국, 동남아시아, 페르시아만, 인도양에서도 심각했다. 즉, 해적질은 수천년의 기간 동안 광범위한 지리적 영역에서 존재해 왔다.

 

 상업 항해의 경제학은 기원전 14세기에서든 기원후 19세기에서든 똑같이 해적행위를 부추겼다. 상인들은 항상 이윤을 극대화하려고 추구하였기 때문에, 전 역사를 통털어 상선들은 통상 무장은 거의 없는 반면 선원들도 최소한만 탑승하여 왔다. 선박 설계사들은 통상 선적 용량을 증가하는 데에만 신경을 썼고 방어 능력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 결과 중무장한 해적들은 희생물들이 바다에 있건 항구에 있건 이들을 거의 항상 압도할 수가 있었다.

 

 해적행위는 또한 주기적인 현상으로서, 해적 스스로가 결정적으로 반격을 당하면 종결되는 현상이었다. 해적행위는 통상 소규모로 시작하며, 위험 해역(dangerous water)에 위치한 취약 선박을 공격하는 형태였다. 초기 해적질은 위협이라기 보다는 귀찮은 문제 정도에 불과하다. 하지만 조직적인 저항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 해적행위가 번창하게 된다. 이들의 공격 빈도와 강도가 증가함에 따라, 이제 해상 무역 자체에 영향을 끼치기 시작한다.

 

 해적행위가 무역에 영향을 주기 시작하면 국가가 반응하게 된다. 해적에 대한 초기 반응은 제한되고 단편적인 경향을 띄는데, 이는 국가들이 종종 해적들을 다른 시각으로 보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영국의 경우 초기에는 카리브해 해적들을 긍정적으로 보았는데, 이는 이들이 스페인 선박들을 먹이로 삼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일단 해적들이 영국 선박들에도 영향을 주기 시작하자, 영국 상인들은 대영제국 해군이 해적들을 제압하도록 정부에 로비를 하기 시작했다. 반대로, 스페인의 경우 자국 선박이 자주 영국 해적들의 공격의 희생양이 되었기 때문에, 아예 영국을 "해적의 나라(nation of pirates)"로 간주해 버렸다. 스페인인들은 모든 영국인들을 가혹하게 다루었으며, 이들이 해적이든 아니든 바다에서 잡힌 영국인이면 즉결처형해버리는 일도 종종 발생했다. 게다가 국가의 해양력 발전단계가 초창기인 경우, 해적질이 그 국가에 최초로 무역로를 제공해 주는 상황도 가끔 발생했다. 특히 영국과 네덜란드의 초기 해적들이야말로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장악하고 있는 지역에 접근로를 만들어 주었다는 점에서 이러한 사례에 해당된다. 영국과 네덜란드 해적들이 벌어들인 이윤이야말로 상인들이 해양 교역- 합법적이든 비합법적이든 -에 투자를 하도록 자극한 것이다. 이후 네덜란드 공화국(Dutch Republic)이, 이후에는 영국이 연달아 해양 강국으로 떠오르게 된다.

 

 역사적으로 국가들이 해적행위를 독특한 방식으로 보았던 또다른 중요한 역사적 이유로 사략선(privateers)의 운영을 들 수가 있다. 실질적으로 사략선이란 국가가 운영하는 해적이다. 이들은 정부 관리로부터 적국의 상선을 공격하도록 허가를 받은 민간인 보조병이었다. 자국 정부에서 발행하는 사략 허가증(a letter of marque)을 통해 이들의 해적행위는 합법화되었다. 하지만 이들 사략선의 주요 희생양이었던 스페인의 경우에는 대부분의 사략선의 사략 허가증에 대해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았고, 통상 이들을 그냥 해적으로 간주하였다. 이 연구에서는 해적과 사략선을 동일선상으로 간주하여 엮어갈텐데, 이는 사략선들도 합법적인 목표물을 찾기 어려운 경우에는 종종 마구잡이 해적질을 하곤 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주기의 마지막 단계에 도달하게 되면, 해적질로 인한 위협은 보다 명확해지고, 국가들은 해적을 막기 위한 해군 부대를 조직하여 파견하게 된다. 통상 이러한 작전은 해당 지역에서 가장 강력한 해군력을 가진 국가가 일방적으로 벌이게 된다. 강력한 해군 전단이 바다의 해적 세력을 탐색 및 격멸하게 된다. 이들이 육상의 해적 본거지를 공격하여 해적에 대한 지원활동을 근절하는 것도 동등한 중요성을 갖는다. 이들 해군 작전이 대단히 성공적이더라도, 이들이 육상의 해적 지원시스템을 성공적으로 근절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에는 해적행위가 완전히 근절되지 않았다. 그 결과, 세계 많은 곳에서 해적질이 때때로 제압되기는 했지만, 어쨌든 낮은 수준으로는 계속 명맥이 이어지며 부활할 기회를 엿봐왔다.

 

 비록 해적질은 전세계 어느 곳에서건 발생할 수 있지만, 그 시작은 지역적 현상으로부터 시작한다. 다른 표현으로 하자면, 해적질이 번성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특정한 조건들을 필요로 한다:

 

* 적합한 해양 지형: 해적들은 부유한 항로에 쉽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이들을 방해할만한 해군이나 경찰력이 닿기 어려운 격오지역이라면 더욱 좋다. 이들은 약탈할 대상을 쉽게 찾을 수 있는 곳으로 몰려온다. 그 결과 해적행위는 특정 병목지점이나 기존의 해상 교역로 주변에 몰리는 경향이 있다. 또한 이들은 먼바다에 있는 선박인 경우 상대적으로 드물게 공격하는데, 이는 먼바다에 있는 희생자는 찾아서 공격하기가 더 어렵기 때문이다.

 

* 우호적 정치 환경 : 해적들은 전쟁이라던가 내전, 법적인 애매모호함, 사법권 다툼, 기타 정부 기능 문제 등으로 발생하는 불안정과 불확실성들을 활용한다. 이러한 각각의 상황은 정부가 해적 행위를 방해할 만한 가능성을 낮춤으로써 이들에게 유리한 조건을 조성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는 정부의 치안 대책이 부적합하거나 약할 수가 있고, 또한 부패한 관리와 해적들이 결탁할 수 있는 기회를 확대시켜 준다.

 

* 육상의 안전한 도피처 : 해적들은 병참 지원을 받고 장물을 처분하며, 신병들을 모집하고 정보를 수집하며, 법률 집행기관으로부터 숨을 수 있는 안전한 항구를 필요로 한다. 해방구가 발생하는 원인은, 종종 주민들의 문화가 해적질을 용인하는 문화를 갖고 있는 경우, 혹은 부패 관리나 장물아비가 조성해 주는 경우 등으로 살펴볼 수 있다.

 

 대부분의 국가들이 해적질을 금하는 법령을 갖고 있는 반면, 해적질이 무엇이고 여기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관해서는 국제적인 동의가 잘 이뤄지지 않는다. 국가들은 해적질에 대해 서로 다른 견해를 갖게 되는데 이는 각국이 해적질에 대한 피해자인지, 혹은 암묵적인 공모자인지에 따라 달라진다. 예를 들어 많은 소말리아인들은, 21세기 초반부터 발생한 소말리아 해적들을 영웅으로 간주한다. 인터뷰를 하다 보면, 소말리아 해적들은 종종 자신들이 단지 외국의 소말리아 해양자원 약탈에 보복하고 있을 뿐이라고 주장하는 경우가 있다. 대다수 다른 국가들은 이들을 단지 도둑놈들로 볼 뿐이다.

 

 마지막으로, 국가간의 경쟁 또한 해적에 대한 법적 처리에 방해를 주는 경우가 있다. 18세기 초반 해상 최강대국이었던 대영제국(GB, Great Britain)의 경우, 바바리 해적들이 영국의 적이었던 프랑스나 스페인 선박들만 집중적으로 노렸기 때문에, 이들을 별로 공격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비록 대영제국에는 바바리 해적들을 제압하거나 박멸할 수 있는 충분한 해군력이 있었음에도, 영국 지도자들은 바바리 해적들에 직접적인 조치를 취하기보다는 협상을 통해 자국 선박들의 안전 통행을 보장하는 쪽을 선택하게 된다.

 

 게다가 국가들은 종종 자국 출신의 해적들을 좋아하는 경우가 있었고, 특히 타국 출신의 선박으로부터 약탈물을 가져오는 해적들을 좋아했다. 해적들은 인원의 휴식 및 선박의 보수, 약탈물의 판매를 실시할 수 있는 육상의 안전한 해방구를 필요로 한다. 예를 들어 항해조례(Navigation Acts)에 미국 식민가(American colonists)들이 분노했던 이유는, 단지 저렴한 해적들의 장물들을 구매할 수 없게 된 부분이 원인이었다. 해적들이 장물을 지역 시장에 내다팔 수 있도록 허용함으로써, 부패한 식민지 관리들이나 상인들은 많은 재산을 긁어모을 수가 있었다.

 

 해적들을 재판하고 처벌할 수 있는 국제 재판소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기소는 해적을 붙잡은 국가의 손으로 넘어간다. 소말리아 해적의 사례를 살펴보면, 영국은 이들을 가능한 체포하지 않으려 했고, 자국 법정에서 기소하고 싶어하지를 않았다. 반면에, 이들을 소말리아로 돌려보내는 것도 별로 좋은 방법이 아니었는데, 이렇게 할 경우 소말리아에서 시행되고 있는 가혹한 샤리아 법 때문에 해적들이 영국에 망명신청을 할 수가 있는 근거를 제공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미국은 이 문제를 케냐와의 쌍무협정을 통하여 우회 해결하였는데, 이를 통하여 미국은 소말리아 해적들을 케냐 당국에 넘겨 기소하도록 할 수 있었다.

 

 해적질은 강인하고도 끈질긴 생존력을 갖는 문제거리다. 해적들은 찾아내기가 쉽지 않으며, 이들을 박멸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전통적인 처벌 방법 - 처형 - 을 시행할 수 없는 현실에서, 현대의 해적들은 국제 법조 시스템에 별로 두려움을 갖고 있지 않다. 이들은 아무런 제재없이 바다에서 활동할 수 잇으며, 이들은 대양을 항해하는 취약한 상선들로부터 인질들을 잡거나 값비싼 물품들을 탈취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현대 시기에 있어 해적행위는 다양한 시기 세계의 다양한 장소에서 발생하였다. 카리브해에는 해적행위에 있어 2가지의 뚜렷한 시기가 존재한다. 우선 스페인이 자신의 새 식민지들로부터 부를 뽑아내기 시작하자, 곧 해적들은 스페인 보물선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해적질의 황금시대는 1670년대에서부터 1725년까지 지속되었다. 이 시기가 대부분 사람들이 친숙하게 알고 있는 해적질의 시대다. 이 시대는 영국 상인들이 영국 정부로 하여금 강경책을 취하도록 압박함에 따라 종말을 고하게 된다. 당시 프랑스와 스페인과의 일련의 전쟁을 통해 해상 최강국으로 떠올랐던 영국 해군은 1730년까지 카리브해에서의 해적행위를 박멸하게 된다.

 

 그러나 이 지역의 해적행위는 1820년대 무렵부터 스페인의 남아메리카 및 중부 아메리카의 식민지들이 모국으로부터 분리독립하기 시작하자 다시 기승을 부리기 시작한다. 신생 국가들은 보유한 해군력이 제한적이었기 때문에, 사략선에 의존하여 스페인을 공격하게 된다. 스페인 또한 사략 허가장(marque of privateers)을 발행하여 보복을 하였는데, 이들은 중립국 선박까지도 공격 대상으로 삼았다. 미국 상선들은 스페인 사략선들의 좋은 공격 대상이 되었는데, 이는 미국이 남아메리카 및 중부 아메리카의 반란자들에 대해 지원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미국과 영국은 지 지역에 해군 전단을 주둔시킴으로써 대응하게 된다. 1826년 무렵이 되면, 이들 해군 부대로 말미암아 카리브해의 해적은 다시 한번 박멸되게 된다.

 

 지중해의 해적행위는 그리스 시대 및 그 이전까지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지중해에서 가장 거대했던 해적 제국을 꼽는다면, 아프리카 북부 해안에 존재하던 바바리 공령(Barbary principalities)들에 위치했던 것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비록 이들은 형식적으로는 오스만 제국에 충성을 바치고 있었지만, 실질적으로는 해적질에 의존하여 생존하는 독립국가들이었다. 바바리 해적(Barbary corsairs)들은 국가에서 지원하는 해적들로서, 금전적인 동기 외에도 종교적인 동기까지 갖고 있었다 - 즉, 이교도들을 공격한다는 사실 자체가 기독교인들의 물건을 빼앗고 노예를 취하는 것 만큼이나 중요했다. 이들은 300년 이상의 기간 동안 지중해의 해운에 위협이 되어왔다. 미 합중국과 대영제국의 해군 작전에도 불구하고, 바바리 해적들은 1830년대 무렵 프랑스가 북아프리카를 침공하기 전까지는 근절되지 않았다. 이 사례에서는 지상 작전이야말로 바바리 해적 문제를 근절하는 데 있어 결정적이였다.

 

 1820년대 그리스인들이 오스만 제국에 대항하여 봉기를 일으키면서 발생한 정치적 혼란은 동부 지중해에 해적이 창궐하게 되는 계기를 제공한다. 이러한 혼란을 이용하여, 그리스 해적들은 모든 국적의 선박들을 먹이로 삼았다. 이들의 성공은 결국 영국과 프랑스를 개입하게 만든다. 이 양개 강국의 해군들은 그리스 독립 문제를 해결해 놓은 뒤, 해적에 대해 대응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리스 해적들은 발견되면 배를 버리고 육지로 도망가는 방법으로 체포나 죽음을 피하였다. 이로 인하여 영국 해군 지휘관은 신생 그리스 정부에게, 만약 그리스 정부가 해적들의 해방구를 제거하지 않으면 직접 상륙작전을 벌이겠다고 위협하게 된다. 이 사례에서도 지상 작전이 해적 제압에 있어 필수적인 요소임이 입증되었다.

 

 해적질은 아시아에서도 수천년간 존재해 왔다. 동남아시아의 좁은 해협 지역은 아직도 많은 해적들의 고향이 되고 있다. 말라카 해협(Straits of Malacca)에는 매년 5만척 이상의 상선들이 통과하며, 또한 해적들에게는 언제나 매력적인 장소가 되어 왔다. 이 좁은 해역에는 선박들이 느리게 움직일 수밖에 없으며, 또한 수많은 골짜기(cove)나 만(bay)들은 해적들이 숨기에 안성맞춤인 장소를 제공한다. 19세기 무렵, 영국 해군은 이 지역에 1년 내내 주둔하며 적극적인 활동을 펼침으로써 마침내 해적질을 근절할 수 있었다. 1830년대 무렵 지역 해적들이 미국 상선 콸라 바투(Qualla Battoo) 호를 공격하였을 때에는, 미군 군함이 한척 파견되어 보복을 감행하였다. 보복의 공포로 말미암아 이후 미국 선박에 대한 약탈은 크게 감소되었다. 하지만 타국 선박들은 계속 해적질의 대상이 되었다.

 

 마찬가지로 중국 해적들도 수천년간 아무 방해 없이 활동을 지속해 왔다. 청나라가 허약해지던 19세기 초반,  중국 남부 해안에는 거대한 해적 연맹이 일어나게 된다. 이들 해적 연맹은 중앙 정부의 권한에 도전하였으며, 여러 전투를 통해 청나라 해군을 격퇴하였다. 당시 청나라 정부의 힘이 약했기 때문에, 청나라는 이들을 힘으로 제압하지 못하고 결국에는 해적을 정부가 인정하게 된다.

 

 해적들은 중국 해안에서 이후 100여년간 더 번창하게 된다. 해적질을 막기 위하여 영국 해군과 미국 해군 모두 이 지역에 영구 주둔하였다. 19세기에서 20세기에 걸쳐 영국과 미국은 중국 해적을 대상으로 여러 차례의 작전을 실시한다.

 

 현대적인 해적행위 문제가 잘 알려지게 된 것은 말라카 해협에서의 해적 행위가 증가하면서부터였다. 1970년대 말까지도 이 지역에는 해적행위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1980년대 초, 국제 상업 회의소(ICC, International Chamber of Commerce)에서는 급증하는 해상 범죄에 대응하기 위하여 국제 해사국(IMB, International Maritime Bureau)을 설립하게 된다. 해적질에 대한 우려가 증가함에 따라, IMB는 해적 공격을 추적하고 이러한 해적 위험을 완화시키는 방법에 대한 조언을 하기 시작한다. 유엔에서는 해적질의 정의 및 이에 대해 각국이 수행할 수 있는 대응책에 대해 재정의하는 조치를 취한다. 마침내 1990년대, IMB는 말레이시아에 해적신고센터(Piracy Reporting Center)를 설치하게 된다. 이러한 관심들로 말미암아, 이 지역의 해적 공격은 아직 완전히 박멸되지는 않았지만 점차 감소 추세에 있다.

 

 페르시아만 지역에서도 수천년간 해적질이 번성해 왔었다. 오늘날 아랍에미레이트에 해당하는 지역 해안에는 여러 해적 국가들이 번성하였었다. 아랍 해적들이 영국 무역에 영향을 주기 시작하자, 대영제국은 아랍 해적들에 대항하여 2차례의 원정대를 파견한다. 이들 원정대가 해적선과 마을을 불살랐지만, 기본적으로 해상 기반 방식이었기 때문에 영국의 노력은 큰 효과가 없었다. 1820년대 초반의 제 3차 원정 당시에는 상당수의 지상군 병력이 포함되었으며, 이번에야말로 아랍 지도자들로 하여금 영국에 협조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점을 설득되게 할 수 있었다.

 

 오늘날의 신문지상에는 소말리아 해안 멀리에서 벌어지는 해적행위에 관한 기사들이 넘쳐나고 있다. 이 해적질 또한 전통적인 주기를 따르고 있다. 초기 이 해적행위들은 그저 귀찮은 문제 수준의 소소한 사건들이었다.  그러나 제대로 된 대처가 없게 되자 소말리아 해적들은 대담해졌고, 이어 여객선이나 값비싼 요트, 대형 화물선이나 유조선까지도 공격하게 되었다. 이러한 눈에 잘 띄는 공격들로 말미암아 전세계 해양 국가들의 대응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그 결과 2009년 무렵, 미국이 주도하는 해적소탕부대인 제병연합 임무부대(CTF) 151이 소말리아 해안에서 작전을 개시하게 된다. 비록 아직까지는 해적들을 붙잡는 데 많은 성과를 올리지 못했지만, 이 부대의 존재는 분명 억제효과를 발휘하고 있으며, 앞으로 추가적으로 다른 활동들을 벌일 것임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후의 장들에는 서인도 제도, 지중해, 아시아, 중동에서의 해적질에 대해서 고찰할 것이다. 해적질 성장에 관한 3개의 주요 조건들을 프레임워크로 삼아, 이들 장들을 통해 이러한 조건들이 어떻게 해적 세력의 팽창에 기여하였으며, 이러한 조건들을 제거하거나 무력화시키는 것이 어떻게 해적질을 제압하는 데 도움을 주었는지에 대하여 살펴볼 것이다. 이제 보게 되겠지만, 거의 모든 사례에서 해적질을 근절하는 데에는 단순한 해군력 이상의 것이 필요하였다.


 

1장 참고문헌

(생략)

 

 

출처 : FocusWar
글쓴이 : 운영자-박용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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