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전쟁

[스크랩] [번역] Rick Rescorla: Ia Drang Hero

박용수 2014. 10. 27. 14:45

 다음 내용은 영화 We Were Soldiers로 유명한 Ia Drang전투에 참전한 Rick Rescorla라는 사람에 대하여 씌어진 글을 번역한 것입니다. 애초에는 베트남전의 Ia Drang 전투에 대한 이야기를 기대하고 번역하기 시작했는데, 번역하고 나서 보니 9.11테러와 관련된 추모글로 흘러가는 것 같더군요.

 

 아무튼 이 글의 내용을 통해서 미국 사람, 미국 군인들의 생각을 조금이나마 이해하는 계기가 된다면 의의는 있지 않을까 합니다.

 

 이하가 번역 내용입니다.

 

< 원문 : Rick Rescorla: Ia Drang Hero (http://www.historynet.com/rick-rescorla-ia-drang-hero.htm) >

 


 저는 이 사람을 만나기 전부터 이미 이 분의 목소리를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개애~리 오웬, 개리 오웬, 개리 오웬, / 몬타나 계곡에서 홀로 / 제 7기병대에게는 더 좋은 날이 있을 거야 / 우리가 친애하는 늙은 개리 오웬을 위하여 돌진할때...'

 

 제가 이 오디오 테이프를 손에 넣은 것은 1995년 여름이었습니다. 그 당시 저는 조지 암스트롱 커스터의 옛 부대인 제 7기병연대 2대대에서 중대장을 하고 있었고, 이 테이프는 1996년 봄 케산에서 만들어진 것이었습니다. 이 지직거리는 테이프 속에서 울려퍼지는 목소리는 제게는 역사의 한 페이지에서 들려오는 것과 같았습니다. 이것은 Rick Rescorla의 목소리였습니다.

 

 제 7기병대 사람으로서, 저는 Rescorla에 대하여 들어본 적이 있었습니다. 그는 1965년 이아 드랑(Ia Drang) 계곡 전투에서의 행동으로 인하여 유명해진 사람입니다. 이 전투는 베트남 전에서 미국이 겪은 최초의 대규모 전투이기도 하지요. 그는 전투에서의 행동으로 인해서 부대 내에서 전설이 된 사람이기도 하며, 젊은 기자인 Peter Arnett이 그의 사진을 찍어간 이후 그의 얼굴은 미국인의 표상이 되었습니다. 이 사진은 해당 전투에 참가한 Hal Moore와 Joe Galloway가 쓴 'We Were Soldiers Once... and Young'의 표지에도 실려 있습니다. 이 책과, 최근에 나온 영화 We Were Soldiers는 이 전투를 다루고 있습니다. Rescorla는 당시 소위에 불과하긴 했지만, 이미 전투 유경험자이기도 했습니다.

 

 영국 해안가 콘웰에서 태어난 Rescorla는 사이프러스에서의 영국군으로서의 첫 복무기간과, 로디지아에서의 보안군으로서 복무하는 기간 동안 이미 인간의 어두운 면을 익히 경험한 사람입니다. 그는 젊은 전사의 전형으로서, 영국이 수 세기 동안 꾸준히 배출해온 유형의 사람입니다: 과거 시기, 영국을 떠나 세계 곳곳에서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을 만들었던 젊은이들 말입니다. 다만 1960년대 당시에는 영국은 전쟁을 하지 않는 시기였기 때문에, Rescorla는 미국인이 되었고, 미국의 전쟁에 참가하게 됩니다.

 

 1965년 당시 Rescorla는 전쟁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부하들은 아직 아니었습니다. 이들을 다잡고, 그들이 수백명의 사람들이 자신을 죽이려고 가까이 오고 있다는 공포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하여, Rescorla는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가 부른 노래들은 대다수 선원들 조차도 낯을 붉힐 정도로 지저분한 노래들이었습니다. 가사 사이사이에는 지휘 구령들이 섞여있었습니다: '착검... 정렬 ... 준비... 앞으로...' 이것들은 워털루, 솜므에서부터 전해 내려온 완전 무결하고, 거부할 수 없는 목소리였습니다. 부하들은 공포를 잊었고, 명령에 집중하였으며, 그가 역사의 한 장면으로 이끌어 갈 때에 앞으로 전진하였습니다: 제 7기병대 2대대 B중대 1소대... 'Hard Corps'

 

 제가 이로부터 수십 년이 지나고 나서 저희 연대의 베테랑들을 인터뷰하기 시작했을 때, 저는 Rescorla의 부하들이 아직도 그에게 갖고 있는 감정들에 맞닥뜨리게 되었습니다. 그의 옛 무전병(RTO, radio telephone operator)이었던 Sam Fatino에게는 30년이 지났음에도 눈 한구석에 '대체 소위님은 어디에 있는 거야(where-the-hell-is-the-lieutenant-now)' 라는 감정이 떠도는 것 같았습니다. 소대장과 그의 무전병(RTO)이 짝짜궁이 맞게 되면, 무전병은 수 많은 새로운 임무들을 맡아하곤 합니다 - 일부는 무전병 임무를, 일부는 구걸꾼 임무를, 일부는 '그의' 소대장을 돌보는 엄마 닭 임무를 말입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저는 Rescorla의 부하들에게는 Rescorla가 이끌기만 한다면, 굳이 명령하지 않더라도 지옥의 문으로 돌격하는 것도 기꺼이 해냈을 것이라고 믿게 되었습니다.

 

 소총 소대의 소대장 시기를 지난 뒤에 Rescorla는 공식적으로는 연락장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그는 Hal Moore가 운영하는 일종의 소규모 여단 장거리 정찰팀(LRRP, long range reconnaissance patrol)을 이끌고 있었습니다. Hal Moore는 당시 제 7기병연대의 1대대장(commander of 1-7 Cavalry)에서 제 1기병사단 3여단장으로 진급한 상태였습니다. 당시 이 팀은 지상 정찰 침투팀(Ground Reconnaissance Infiltration Team)이라고 불렸지만, Rescorla에 의하면 GRIT patrol이라고 불리는 경우가 더 많았다고 합니다. 150명의 지원자 중에서 Rescorla가 시범 정찰에 선발한 것은 15명이었습니다. 이 15명 중에서 지상에서 그를 수행할 인원 3명이 선발되었습니다. 그 중의 하나는 과거 영국 SAS 출신이었습니다. 'Crow's Foot' 과 같은 오지를 누비면서 잔여 여단 병력보다 훨씬 앞서 나아갔고, Rescorla와 그의 팀원들은 사단 정찰대와 대대 첨병간의 간극을 메우는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그가 말하는 '안락한 참모 업무'였던 것입니다.

 

 1966년 시시한 장교클럽에서 녹음되고 29년이 지나서 제 손으로 들어온 오디오 테이프를 통하여, 저는 역사책에서만 볼 수 있었던 목소리를 처음으로 들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 목소리는 강했고 터져 나오는 듯한 솔로를 울려 퍼트리며 젊은 미국 장교들의 합창을 리드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아마도 땅 속에서 영면하고 있을 부하들을 잊기 위해서, 아니 명예롭게 기억하려고 노래하였을 것입니다. 저는 그들 중에서 술에 취하지 않은(sober) 목소리는 없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가끔씩 배경음으로 105mm 곡사포의 발사음이 섞여 나오기도 합니다. 이것이 전쟁 중의 제 1기병사단입니다. 거의 30년간 아무도 이 테입을 듣지 않았다는 사실은 어쩌면 참 으스스하기도 합니다. 저는 이 테이프의 사본을 7개를 만들었기 때문에 아마도 이 테이프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중 한 개는 Rescorla 본인에게 증정하였습니다.

 

 저는 참 운이 좋습니다. 제 삶의 기간을 거치면서 저는 역사책에서나 볼 수 있었던 여러 역사적 인물들을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가끔씩은 제가 영웅시하는 분을 만나게 되기도 합니다.

 

 안케에서의 오디오 테이프를 입수하고 몇 개월 후, 저는 이아 드랑 전투의 참전 용사들을 위한 연례 저녁 모임에 참가할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저는 영광스럽게도 Rick Rescorla를 직접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이제 거구에 토실토실해진 상태였고, 실제로 완전 거나하게 취해 있었습니다만, 그의 눈 속에서 그의 옛 부하들이 수 없이 이야기해 준 장난기의 일면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그는 이제 민간인입니다. 1966년에 미국으로 돌아온 뒤에, 1년 간 Fort Benning에서 교관을 했고 그 뒤에는 군문을 떠났습니다. 다만 그는 예비군(Army Reserve)에 남아있었고, 1990년에 퇴역하기 전까지 대령까지도 진급했습니다. 석사 학위를 따고 법무 학위를 땄습니다. 그러나 그의 기질상 우리들의 직업에 남아있는 이상을 완전히 버리게 할 수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Rick Rescorla는 결국 세계 무역 센터 (World Trade Center)의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모건 스탠리사의 보안 책임자가 됩니다.

 

 그는 군인 시인(warrior poet)으로서의 심성도 잃어버리지 않았습니다. 저는 종교적 추종자의 마음으로 그를 쫒아가서, 제가 갖고 있는 We Were Soldiers Once... and Young 책에 사인을 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는 제게 잠깐 기다리라고 하고, 술을 한잔 마신 뒤에, 앉아서 잠시 허공을 응시했습니다. 그가 제게 책을 돌려주었을 때, 그 안에는 이렇게 씌어 있었습니다: 'Bob Bateman 대위에게 / 늙은 개와 야생 거위가 싸우고 있네/ 폭풍의 전조야 / 당신은 이걸 전에 보았겠지 / 제 7기병대가 있는 곳이라면 / 거기에는 싸움이 있을거야 / 그리고 싸움이 없는 곳이라면 / 더 이상 7기병대는 없지 / 귀하께 배상 / Rick Rescorla, Hard Corps One-Six (베트남 전쟁 당시 Rick Rescorla의 콜사인임)'

 

 1993년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이 세계 무역 센터를 폭파했을 때 Rick도 거기에 있었습니다. 민간인들의 공포를 억누르기 위해서는 그가 군인 부하들에게 했었던 것처럼 노래를 불러서는 성공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Rick으로서는 사람들의 주의를 불러모으고 공포와 패닉을 멈추게 하며, 그들을 밖으로 인솔하기가 다소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래서 (최소한 전설에 따르면) 그는 책상 위로 뛰어올라 미국 자본주의와 예의범절의 꽃들에게 외치길, 만약 그들이 말을 듣지 않는다면 모두 엉덩이를 까주겠다고 했다고 합니다.

 

 제가 만난 어느 누구도 Rick이 연설을 할 줄 모른다고 한 적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당연히 멈춰섰고, Rick은 그의 일을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을 빌딩 밖으로 유도하여 많은 목숨을 구했습니다. 그리고 9월 11일에 그가 다시 하던 일도 이것입니다. 모건 스탠리의 여러 종업원들은 그가 회사가 점유하고 있는 20여층에 걸쳐서 목격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전투에서와 같이 그는 모든 곳에 있었습니다. - 침착하고, 공포의 표정 속에 익살을 담으며 그의 존재를 재확인시켰습니다. 그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구했는지에 대해서는 과장할 벙법이 없습니다. 모건 스탠리의 종업원들 뿐만 아니라, 모건 스탠리가 점유하고 있는 층 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그의 방향 지시에 신세를 졌습니다. 그분 덕분에 20여층에 걸쳐 있는 모건 스탠리사의 모든 종업원들이 빠져나올 수가 있었습니다. 수천 명 중에서 단지 7명 만이 그의 범위에서 벗어나 있었습니다. 생각해 봅시다. 회사에서의 그의 전설(사람들은 어떤 중역급 월급을 받는 사람이 직원들의 엉덩이를 벗기겠다고 위협한 일을 기억하고 있습니다)이 도움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건 이 사람들이 이동하게 하는데 충분했을 것이고, 다른 사람들이 따라서 밖으로 나가 살 수 있도록 하였을 것입니다.

 

 Rescorla는 제가 브로드웨이에서 공연 주제곡들을 흥얼거리는 것만큼 당연하게, 빌딩에서 모든 사람이 대피할 때까지 밖으로 나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가 그의 아내에게 전화를 했을 때는 첫번째 비행기가 반대편 빌딩에 부딛히고 얼마 지나지 않을 때였고, 그는 아내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하고, 자신이 모든 사람들을 대피시키고 있다고 했습니다. 비록 첫번째 비행기가 부딛히고 나서 빌딩 스피커를 통해 전 직원들은 제자리에 가만히 있으라고 방송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Rescorla는 명백히 '저 미친새끼(Bugger THAT!)'라고 외치고는, 즉각 사람들을 대피시키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밖으로 나왔을 법한 시점에서 그는 다시 안으로 들어가 구조대원들과 함께 계단을 올라갔습니다. 이것이 그가 마지막으로 목격된 것입니다. 빌딩이 무너졌을 때 그도 안에 있었습니다.

 

 저들이 제 영웅을 죽였습니다. 그러나 영웅들은 절대로 진짜 죽지 않습니다. Rick은 영원히 살 것입니다. 제 펜에 잉크가 있고 제 목소리가 오늘날의 진지를 지키고 있는 당신들의 아이들에게 올려퍼지는 동안 그는 살아있을 것입니다. Rick은 징병제 군대 시절의 자원자였습니다. 어떤 면에 있어서 이는 그를 힘들게 한 것이기도 합니다. 오늘날에는 어렵지 않은 일입니다. 오늘날은 모든 병력이 자원자로 이뤄지며 저와 함께 복무하는 모든 젊은 남녀들은 제가 말함으로써 Rick의 이야기를 들을 것이고, 이들은 기억할 것입니다. 우리가 기억한다는 것이야 말로 우리의 프로로서의 강점입니다.

 

 오늘날의 세계 평화는 과거 로마 시절의 평화가 'Pax Romana'라고 불리웠던 것처럼, 소위 'Pax Americana'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이것은 항상 희생을 요구하는 평화였습니다. Rick은 알고 있었고 그 삶을 살았습니다. 저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합니다. 그가 저 아래 Fiddler's Green - '지옥으로 가는 길의 중간쯤에 있는', 모든 기병들이 길에서 벗어나 술을 마시는 곳 - 에서 다음 번의 음란한 발라드를 작곡하며 이아 드랑에서 마지막으로 본 소대원들과 이야기하며 지난 30여년간 그들이 보지 못한 것들을 말하고 있지 않을까 말입니다. 그는 분명히 소대원들에게 구라를 칠 것입니다만, 그것들은 기가막히게 포복절도할 구라일 것이고, 그들 모두는 당신 눈에 눈물이 날 정도로 재미있는 한 마디씩을 저마다 할 것입니다. 젠장, 그는 지금쯤이면 바에 가 있을 겁니다.

 

 '... 그래서 당신이 이걸 읽고 나면, 반합의 컵을 드시오 / 그리고 여기에 꿀술(mead)이든 스카치(scotch)든 싸구려 술(rotgut)이든 채워 넣으시오 / 그리고 그걸 바닥이든 마루 위에든 쏟아 부으시오 / Rescorla가 더 이상 없는 제 7기병대의 심장을 위하여/ 개리 오웬'


 이 글은 미 육군의 Robert L. Bateman 소령에 의해 씌어졌으며, 원본은 Vietnam 지의 2002년 6월판에 출판되었던 것입니다.

 


 

 

 

첨부파일 music_g-owen1.mid

 

 

출처 : FocusWar
글쓴이 : 박용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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