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전쟁

[스크랩] [번역] 이아 드랑 계곡 작전 결과 보고서 1965 (After Action Report, IA DRANG Valley Operation) (2)

박용수 2014. 10. 27. 15:23

 < 원문 출처 : After Action Report (http://www.lzxray.com/documents/aar-xray.pdf)  >

 

 

 


 
V. 11월 15일의 적의 공세

 

A. 대략 06:50 무렵, C중대의 좌측을 맡고 있던 1소대와 2소대의 정찰병들은 각 소대의 100-200미터 전방에서 수색 및 차장 임무를 수행하던 중 정면과 좌측면으로부터 소총 사격을 받았다. 이들은 응사하며 방어진지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 시점에서 이들은 2-3개 중대 규모의 적으로부터 공격을 받고 있었다. 적들은 잘 위장된데다 낮게 웅크리고 있었다; 일부는 손과 무릎으로 기어서 움직이는 경우도 있었다. 중대 지휘소 우측에 있었던 양개 소대의 정찰대들은 적과는 마주치지 않았지만 즉각 방어 진지로 복귀했다. 격렬한 총격전이 벌어졌다. 적의 공격은 C중대 섹터의 좌측부에 중점적으로 지향되고 있었다. 1소대와 2소대의 정찰대가 퇴각하는 과정에서 사상자가 발생했고 일부는 전사했다. 이들을 구하러 가는 과정에서 피격당한 인원도 있었다. 일부는 데려올 수 있었지만, 07:30 무렵이 되면 포병, 박격포, 근접항공 사격에 따른 막대한 피해에도 불구하고 적이 사주방어진지의 개인호(foxhole) 바로 앞까지 근접해오게 된다. 이후의 2시간동안 C중대 지역- 주로 좌측 3개 소대 지역과 중대 지휘소 앞부분-에서는 치열한 근접전투가 발생했다. 백병전(hand-to-hand fighting) 역시 상당수 발생했다. 예를 들어 나중에 지휘참호 안에서 시체로 발견된 1소대장의 경우, 그 주변에는 적의 시체 5구가 흩어져 있었다. 어떤 인원은 죽어서도 죽은 적군의 목을 붙잡고 있는 모습으로 발견되었다. C중대의 전상자들과 수많은 적의 시체들이 서로 뒤섞여 있었다. 07:15 무렵, 적은 박격포가 위치한 D중대 섹터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이로써 사주방어진지는 2방향에서 공격받게 되었다. 포병, 공중포병(ARA), 공군(TAC Air)의 지원을 요청하였고, 이들의 사격은 정확하고 매우 효과적이었다. 공중포병과 공군의 지원을 이용하여 사주방어진지 주변을 불바다로 만들었다(ring the perimeter with fire). 모든 사격의 우선순위는 C중대에 주어졌다. C중대의 포병 관측장교 (FO)는 적의 소화기 사격으로 인하여 중대 지휘소에 고착되어 있었다. 따라서 포격 유도는 대대 지휘소에 있는 포병 연락장교에 의해 실시되었다. 대대 지휘소는 좋은 관측장소였다.

 

B. 대략 07:15 무렵, C중대장이 증원을 요청했다. 나는 C중대에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던 A 중대의 1개 소대를 C중대 지휘소 지역으로 파견했다. 소대가 개활지를 통과하는 동안 2명의 전사자와 1명의 전상자가 발생하긴 했지만, C중대 지역의 우측 중앙에 도달하는 데에 성공했다. 07:45 무렵 A중대 지역에도 적의 공격이 실시되었다. 이들은 나중에 가서야 단지 소규모 병력이었음이 드러난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동일한 강도의 사격이 가해지는 3개 방면으로부터 공격을 받고 있는 것이었다. 적의 소구경 화기와 자동화기 사격이 외곽진지(perimeter)를 통과하여 착륙장과 대대 지휘소, 구호소에 쏟아졌다. 적의 박격포 혹은 로켓포에서 발사된 고폭탄 12-15발 가량이 외곽진지(perimeter)에 떨어졌다. 지휘소 안과 근처에서도 소화기 사격으로 부상당하는 인원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전사자도 1명 발생했다. 나는 예비대에게 C중대 혹은 D중대 지역으로 투입될 준비를 하도록 했다 - 두가지 모두 야간에 세워뒀던 우발계획(contingencies)에 포함되어 있었다. 나는 여단장에게 무전연락을 하여 상황을 설명하였고, C중대에 발생한 손실과 적의 공세규모로 비추어 보았을 때 추가 중대 증원이 필요하다고 요청했다. 여단장은 밤사이 이미 7기병연대 2대대 A중대를 헬리콥터 수송이 가능하도록 준비시켜둔 상태였다. 내 요청은 승인되었으나, 이 시점에는 착륙장에 대한 사격이 심했던 탓에 해당 중대를 당장 불러들이지는 않았다. 양군의 배치에 대해서는 첨부 I(Tab I)를 참조하라.

 

C. C중대와 D중대 지역에서만 격심한 총격전이 지속되고 있었다. 08:00 무렵의 한 시점에는 대전차 소대가 심각한 교전에 말려들어 착륙장이 심각한 위험에 빠진 적이 있다. 박격포병들은 박격포와 소총을 동시에 사격해야 했으며, 격심한 소화기탄 사격 아래에 놓이게 된다. 박격포 중 하나는 적탄에 맞아 작동불능이 되었다. 나는 예비대로 있었던 정찰소대를 투입하였고, 이들은 C중대 좌측으로 이동하였다; D중대를 향해 이동하여 적을 소탕했다. 이들은 D중대 잔여병력들과 합류했고, 그때부터 적의 공격 종료시까지 해당 부분의 외곽진지(perimeter)는 아군의 통제 하에 놓이게 되었다. 이로써 내가 7기병연대 2대대 A중대를 불러들일 수 있게 만들었다. 비록 착륙장은 여전히 적 사격하에 놓여있긴 했지만, 그 강도는 다소 줄어들어 있었다. 내가 증원하거나 반격하거나 아니면 C중대 지역이나 그 뒤에서 차단작전을 벌이거나 하기 위해서는 7기병연대 2대대 A중대가 꼭 필요했다. 나는 7기병연대 2대대 B중대장에게, 1개 소총소대와 지휘부를 전선에서 빼내고; 해당 지역은 중대의 나머지 소대에게 맡기고; 그 중대(-) 병력을 내 대대 지휘소 주변에 집결시키고; 125미터 동쪽에 있는 C중대 지역 또는 다른 지역에 대하여 의명 증원, 차단, 반격 임무를 수행할 준비를 하라고 지시했다. 이 시점까지 C중대는 장교 2명이 전사하고, 3명이 부상당했다. 그러나 중대장은 가슴에 피격당했음에도 돌아가 임무를 수행했고, 적을 몰아내는데 도움을 주었다; 거의 세시간동안 내게 여러차례 보고를 했다. C중대원들은 진지를 고수하고 있었다. C중대 섹터에서 끝난 D중대 병사 한명은 50미터를 담당한 유일한 병사였다(?)(One man of Company D who wound up in the C Company sector was the only soldier left covering 50 meters). 그가 무릎 쏴 자세로 M-16 소총으로 사살한 적의 수는 10-15명 가량이었다. 중대 통신병은 중대 지휘소 참호에서 적군 15-20명을 사살했다. 중대장도 부상당하기 전에 여럿을 죽였다. 적의 사격이 대단히 격렬했기 때문에, 해당 지역으로 들어가거나 접근하는 것은 아군 사상자를 증가시킬 뿐이었다. 외곽 진지의 외곽을 공군(TAC Air)과 공중포병(ARA), 포병의 공중 관측자들에게 식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07:55 경 내 명령에 따라 모든 소대 진지에서 유색 연막수류탄을 터트렸다. 모든 지원화력이 대단히 가까운 곳에 떨어졌으며 일부는 아군 진지에까지 떨어졌다. 네이팜 2발이 대대 지휘소에 떨어져 2명을 부상시키고 M-16탄약 일부를 유폭시켰다. 이건 정상적인 일은 아니었지만, 비상 근접(50-100미터) 화력 지원이 급박하게 필요했었기 때문에 예상하지 못한 바는 아니었다. 대략 09:10 무렵 7기병연대 2대대 A중대 선발대가 착륙하기 시작했다. 나는 7기병연대 2대대 A중대장에게 상황에 대하여 설명해 주었는데, 그가 7기병연대 2대대 B중대장으로부터 그가 들어가야 할 지역에 대해 이미 대강의 설명을 들었음을 알 수 있었다. 나는 7기병연대 2대대 B중대장에게, 지휘부와 1개 소대를 이끌고 C중대 지역으로 진입하여 C중대 잔여 병력의 지휘권을 인수하고 해당 지역의 방어 책임을 질 것을 지시했다. 그가 떠난 것은 09:41이다. 7기병연대 2대대 B중대 잔여병력들은 그 위치를 7기병연대 2대대 A중대가 인수한 뒤에 곧장 따라갔다. 7기병연대 2대대 A중대 3소대는 2대의 헬리콥터에서 내렸을 때 7기병연대 1대대 C중대의 전투 현장으로 향했고, C중대의 좌측 소대 뒤에 집결했다. 나는 이 소대를 7기병연대 2대대 B중대에 배속시켰고, 향후 2일간 해 중대와 함께 싸웠다. 10:00에 이르러 적의 공세는 격퇴되었다. C중대는 방어에 성공했다. 적은 C중대 진지를 돌파하지 못했다. 대략 13:30 무렵, 외곽진지에 있던 모든 중대에서 300미터 거리 지점까지 조사 및 전장정리를 실시하였다. 외곽진지 가장자리와 전방에는 북베트남군의 시체와 시체조각, 무기와 장비들이 잔뜩 널브러져 있었다. 수많은 시체조각들을 볼 수 있었다. 또한 북베트남군 사상자들이 끌려져 후송되면서 생긴 많은 핏자국들과 붕대조각 등등 역시 가득했다. 몇몇 적군 전사자들은 개미탑 뒤에 쌓여져 있기도 했다. 소로들이 끝나는 지점의 주변 숲지역 전역에 대하여 포병과 공군(TAC Air) 사격이 가해졌다. 수많은 적의 무기와 장비들을 수집했다. 포로 두 명을 잡아 후송했다. 아군의 사상자 역시 수집되었다. 이러한 조사과정(screening)에서도 아군 사상자가 몇명 발생했다. 7기병연대 1대대 C중대는 사주방어진지 중앙으로 이동하여 대대 예비로 전환되었으며, 7기병연대 2대대 A중대가 7기병연대 2대대 B중대의 예전 지역에 배치되었다.

 

( 첨부 I (Tab I) // 클릭하면 커집니다 )

 

 


VI. 포위되었던 B중대 2소대의 구출과 사주방어진지 재배치

 

A. 11월 14일 오후 늦은 시각, 여단장은 5기병연대 2대대를 빅터 착륙장(LZ Victor)으로 이동시켰다. 08:00 무렵, 동 부대는 도보로 엑스레이 착륙장을 향해 이동을 개시했다. 첨부 J(Tab J)에 당시 이동 경로를 표시하였다. 동 부대가 엑스레이 부근에 도착한 것이 12:05 무렵이었다. 5기병연대 2대대장과 본인은 병력 운용에 대해 협의하였다. 그 결과 5기병연대 2대대의 A, B중대와 7기병연대 1대대의 B중대가 구출작전에 동원되는 것으로 결론을 지었으며, 이를 위해 포병, 공중포병(ARA), 공군(TAC Air)의 준비사격을 하기로 했다. 당시 A, B중대는 산의 낮은 비탈지역에 있는 엑스레이 착륙장의 남쪽과 서쪽에서 북서쪽을 향해 이동 중이었다. 공격 경로는 첨부 K(Tab K)에 나타낸 바와 같다. 협의 결과 본인은 5기병연대 2대대 B중대의 작전 통제권을 갖기로 하였고, 또한 엑스레이 착륙장의 전 병력에 대한 전반적 통제권과 동 지역의 방어에 대해서도 책임지는 것으로 하였다. 5기병연대 2대대 B중대는 방어진지의 7기병연대 1대대 D중대 앞쪽으로 이동하였다. 5기병연대 2대대 박격포 전량이 진지를 구축하고 사격계획을 수립했다. 7기병연대 1대대 D중대(박격포 분대 제외)는 예비로서 7기병연대 1대대 C중대에 더해졌다. 5기병연대 2대대의 A, C중대와 7기병연대 1대대 B중대는 5기병연대 2대대장의 지휘하에 13:15 경 공격을 개시했다. 적의 저항은 거의 없었다. 15:10경, 7기병연대 1대대 B중대가 포위된 소대에 도달했다. 그곳에는 전사자 8명, 전상자 12명, 부상당하지 않은 자 7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소대에는 아직 탄약이 남아있었고 사기도 양호했다. 부상자는 후송되었고, 나머지 전 부대는 야간 전투에 대비하여 배치 및 참호 구축을 실시했다. 배치 상태는 첨부 L(Tab L)과 같다. 탄약과 물, 전투식량이 추진되에 분배되었다. 전사자 전원을 후송시켰다.

 

 ( 첨부 J (Tab J) )

 

   

( 좌측 : 첨부 K (Tab K) // 우측 : 첨부 L (Tab L) )

 

 

 
VII. 11월 16일 04:00-06:30간의 적의 야습

 

A. 대략 01:00 무렵 7기병연대 1대대 B중대 지역으로 적의 정찰병 5명이 나타났다. 2명이 죽고 3명은 달아났다. 23:20 경에 달이 떳고 구름 없는 날씨였다. 전날 밤과 동일하게 사격 통제(fire discipline)는 훌륭하게 이뤄졌다. 박격포의 조준자 불빛(?)(aiming stake lights on the mortars)은 모두 껐으며, 지난 밤과 동일하게 내 승인 없이는 박격포 사격을 하지 못하도록 했다. 모든 화력은 내 포병 연락장교에 의하여 조율되었다. 방어진지 둘레 전역에 걸쳐 연속적인 근접 H 및 I 사격(?)(close-in H and I fires)이 이뤄졌다. 산지에도 사격이 이뤄졌으며, 이 두 지역에 대한 사격 결과 일련의 2차 폭발들이 이어졌다.

 

B. 대략 04:00 무렵, 적이 7기병연대 2대대 B중대 지역을 정찰하기 시작했다. 04:22경, 250-300명 규모의 적군이 7기병연대 1대대 지역에 있는 7기병연대 2대대 B중대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공격 경로는 첨부 M(Tab M)과 같다. 플레어쉽을 호출하여 05:45까지 조명을 지속했다. 소화기 사격과 포병 사격으로 적의 공격을 격퇴했다. 04:31경, 200명 규모의 또다른 적이 7기병연대 2대대 B중대로 공격을 실시했다. 매번 조명탄(flare)이 켜질 때마다 적은 바닥에 업드리거나 수풀을 이용하여 은폐 엄폐를 했다. 포병이 많은 피해를 입혔다. 총 4개 포대가 사격에 참가했다. 북베트남군이 수많은 시체를 끌고 가는 것이 목격되었다. 05:03 무렵, 100명 가량의 적이 남서쪽을 공격하면서 적의 공격 중심이 전환되었다. 이 공격은 05:35에 격퇴되었다. 05:50경에는 플레어쉽의 조명탄이 고갈되었다. 이에 포병이 조명탄 사격을 담당하게 되었다. 양개 대대의 박격포들은 공격이 개시된 이래 고폭탄을 사격해오던 중이었다. 이에 박격포를 통한 조명탄 발사를 허락했다. 06:27 경, 또 다른 적군이 지휘소를 향해 공격해왔다. 06:41경 적은 격퇴되었고, 이들은 사격을 받아가며 시체들을 끌고 갔다. 7기병연대 2대대 B중대는 대단히 훌륭한 일을 해 냈으며, 피해는 경상자 6명에 불과했다. 공격 기간동안 탄약 재보급을 위해 각각 2차례 탄약을 전달할 필요가 있었는데, 한번은 7기병연대 1대대 정찰소대가 총탄을 무릎쓰고 수행해 주었고, 또 한번은 7기병연대 2대대 B중대 통신병과 부대대장(XO)이 실시했다.

 

C. 06:41 경, 침투한 적이나 저격수 등을 제거하기 위하여, 06:55부터 2분간 사주방어진지에 있는 전 병력은 주변의 나무나 개미탑, 덤불 등에 맹목사격(spray)하도록 지시했다. 사격과 동시에 7기병연대 2대대 A중대 전방 150지점에서 30-50명 규모의 북베트남군이 모습을 드러내고 응사를 개시했다. 이 맹목사격("mad minute" free spraying)으로 인하여 적이 준비되지 않은 채로 공격을 개시하게 된 것이다. 포병은 고폭탄(HE)과 가변신관(VT)을 이용하여 20분만에 적을 격퇴해 버렸다. 맹목사격 전술로 인하여 적군 6명이 사살되었다. 한명은 7기병연대 2대대 B중대의 좌측 소대 전방에 있었던 나무에 걸려있었다. 또 한명은 B중대 지휘소 바로 앞에 있던 나무에서 떨어졌다. 북베트남군 한명은 거의 한시간이 지나서 나무에서 내려오다가 걸려 사살되었다. 중대장은 내게 부하들이 이 맹목사격을 참으로 즐겼다고 보고해왔다. 적을 사살하는 외에도, 맹목사격을 통해 야간동안 쌓인 긴장감을 풀 수가 있었고 적이 주변에 있는지에 대한 의혹도 해소할 수가 있었다. 07:16 경, 착륙장 내부와 가장자리에 걸친 수색이 7기병연대 1대대 정찰소대와 C중대에 의하여 조심스럽게 실시되었다. 본인은 수색 과정에서 손과 무릎으로 실시함으로써 아군 사상자를 찾아내고 키큰 억새풀 속에 숨어있는 적군 침투병을 찾아내도록 지시했다. 나무들도 수색했지만 결과는 없었다.

 

D. 08:10 경, 사주방어진지(perimeter)에 있는 전 부대에게, 양 측면 부대와 협조하여 의명 전방 500미터까지 이동하여 수색 소탕할 준비를 하도록 지시했다. 이동은 09:55에 시작되었는데, 7기병연대 2대대 B중대가 50-75미터를 전진하자 적의 사격이 시작되었다. 소대장 한명이 치명상을 입었다. 모든 이동이 중단되었다. 7기병연대 2대대 B중대는 사주방어진지의 참호들로 퇴각하였고, 포병과 공군에 근접사격 요청을 실시했다. 우리는 다시 앞으로 나갔으며; 적의 저항을 모두 일소했고 지역을 정리했다. 이 소탕작전에서 27명의 북베트남 정규군이 사망했다. 도처에 적의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다. 나는 전사상자를 후송시킨 수많은 흔적들 - 피, 신체 일부, 피 묻은 피복류 등- 을 볼 수가 있었다. 또 우리는 아군 전사자 3명을 찾아냈다. 수많은 적의 무기들을 수집했다. 이 중 많은 것들은 사격으로 인해 산산조각 나 있었다.

 

E. 09:30 경, 7기병연대 2대대(-)의 선발대가 엑스레이에 도착하기 시작했다. 대략 12:00 무렵에 완료되었다. 10:40 경, 여단장은 내게 대대와, 7기병연대 2대대 B중대, 7기병연대 2대대 A중대 3소대를 UH-1D를 이용하여 팔콘 착륙장(FALCON LZ)로 이동시키고, 플레이쿠의 할로웨이 기지(Camp Holloway)로 이동시켜 2일간 휴식 및 재정비(rest and reorganization)를 실시하도록 지시했다. 그는 7기병연대 2대대 병력들과 5기병연대 2대대 병력으로 전선에 있는 내 병력들과 교대토록 지시했다. 나는 그렇게 실시했다. 그러나 나는 마지막으로 7기병연대 2대대 B중대를 이동시키기 전에 이들 전방 150미터 지역에 대한 수색을 한차례 실시하도록 지시했다. 이는 대단히 힘든 결정(scene of extremely heavy action)이었고 나는 전장이 완벽하게 정리되기를 원했다. UH-1D를 통한 퇴출은 완벽하게 성공적이었고, 이 과정에서 엑스레이 주변 지역, 비행 경로 주변과 주변 산 경사지에 대한 포병과 공군의 엄호사격이 있었다. 퇴출 과정에서 적의 사격은 없었다. 착륙장에 탑승자/탑승물(load)가 나타나기 전에는 헬기를 불러들이지 않았다. 따라서 UH-1D가 착륙장에 있었던 시간은 몇초 가량에 불과하다. 병력 퇴출과 동시에 잉여 군수품과 적 무기, 사상자의 무기 및 장비, 사상자 등이 후송되었다. 적의 수류탄이나 탄약, 대전차 무기 등은 큰 구덩이 안에 모아두었고, 7기병연대 2대대 지휘관이 휘하 공병 팀을 통해 이들을 폭파시켰다. 상당수 다른 적 화기들도 전장의 다른 곳에서 이전에 파괴되었다. 14:56 경, 7기병연대 1대대와 7기병연대 2대대 B중대, 7기병연대 2대대 A중대 3소대는 엑스레이 착륙장을 떠나 팔콘 착륙장으로 출발했다. 18:30경, 모든 병력들은 팔콘 착륙장을 떠나 플레이쿠 근방의 할로웨이 기지에 도착했다.

  

( 첨부 M (Tab M) )

 

 

 


 

 
VIII. 피아 사상자 및 노획 장비

 

A. 적군

확인된 전사자 (killed, body count) - 634명
추정 전사상자 (killed, wounded (Est)) - 1215명
포로 (Captured, evacuated) - 6명

 

B. 아군 (배속된 부대 포함)

전사자 - 79명
전상자 - 121명
행방불명 - 없음

 

C. 후송한 노획 장비

총검 장착 돌격 소총 (Assault carbines w/bayonet) - 54점
자동식 돌격 소총 (Assault rifles, automatic) - 57점
자동소총 (Automatic Rifles) - 17점
중기관총 (Heavy Machine Guns) - 4점
대전차 로켓포 (Antitank Rocket Launchers) - 5점
권총 (pistols) - 2점
81/82mm 박격포 (81/82mm Mortar Tubes) - 2점
의료 키트 (Medics Kits) - 6점

 

D. 목표 지점에서 파괴한 적 장비

승무원용 및 개인용 화기 (Crew-served and individual weapons) - 75-100점 (추정)
대전차 로켓 - 3발씩 들어있는 3세트 (3 cases of 3 rounds each)
수류탄 - 300-400점 (추정)
각종 소화기 및 탄약 - 5000-7000발 (추정)
참호 구축 장비 - 100-150점 (소형 삽 형태)

 

 

IX. 제언

A. 이어지는 내용은 적과 일반적인 전장 기술에 관한 것으로 언급할 가치가 있는 것들이다. 대부분은 새로울 것이 없으며 적군인 북베트남 군에 적용 가능한 것에 대해 특히 강조하였다.

 

B. 화력 지원

(1) 화력 지원이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근접 사격일 필요가 있다. 우리가 상대했던 것과 같은 강력한 공격의 경우 일부 적은 매우 근접하게 되며, 어떤 경우에는 키큰 수풀 속에서 아군과 뒤섞이기까지 한다. 축차사격을 통해 극단적으로 가깝게 쏘는 것("walking them in" extremely close)이 아군에게 대단한 도움이 되었다. 지휘관은 자기 부하들이 모두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알 때까지 기다릴 수가 없다. 격심한 전투 속에서 만약 그렇게 기다린다면, 당장 사격할 때보다 더 많은 부하들이 희생되고 말 것이다. 일단 적이 25미터 이내로 접근하거나 아군과 뒤섞이게 되는 경우 적에게 유리한 상태의 싸움이 되는 것으로 이는 적이 원하는 바이다. 이 경우 근접 화력 지원을 통해 적과 적의 후속 부대간을 단절시킬 수가 있다. 적은 고폭탄에 비해 네이팜탄이아 백린탄을 더 두려워한다. 고폭탄 사격시 적은 흙에 쳐박혀 숨는다. 네이팜이나 백린탄 공격 하에서는 적은 종종 일어나 무질서하게 뛰어다니며, 아군의 소화기나 VT탄, 고폭탄의 좋은 타겟이 되어 준다. 250파운드 유산탄이나 CBU가 대단히 효과적이다.

 

(2) 부대가 목표 지점에 들어가게되면, 착륙 후 가능한 빨리 포병 사격이 가해져야 한다. 이를 통해 주변에 있을 지 모르는 북베트남 군을 죽일 수 있으며, 이들이 유도할 수 있는 포격 요청이나 적 증원군을 지연시킬 수가 있다.

 

(3) 공중 포병(ARA)의 경우 조종사가 아군의 정확한 위치를 알고 있을 경우 특히 효과적이다. 공중 포병은 적에게 대단한 충격 효과를 준다. 일반 포병에 비해 공중 포병이 더 효과적인 부분은, 공중 포병의 경우 지상 관측자에 의한 사격 수정 과정이 필요 없다는 점이다. 만약 전선(front line) 혹은 아군 위치가 표시되고 이를 조종사가 식별할 수 있다면 그 결과는 빠르고 신속한 화력 지원을 의미한다.

 

(4) 개미탑 뒤에 숨어있는 적군에 대해서는 LAW (66mm 경대전차 로켓포, 역자 주)가 효과적이었다. LAW에 대한 훈련이 강조될 필요가 있다.

 

(5) 아군의 공격간에 적과 근접 조우하게 될 경우 가장 좋은 전투 방식은, 포병과 공중 포병 지원을 받아 포병과 공중 포병이 지역을 쓸어버리도록 한 뒤, 나무와 수풀에 대해서는 다수의 M-79 유탄발사기로, 개미탑에 대해서는 LAW로 쓸어버리는 것이다.

 

(6) 공중에서 조명이 실시되는 경우, 대다수의 적은 사격을 중단했다.

 

(7) M-79 사수에 대해서는 사계가 최적화 되도록 신중하게 배치할 필요가 있다. 이들은 나무에 있는 적들을 바라볼 수 있는 위치에 있어야 한다. 개활지 뿐만 아니라 나무에 있는 적에 대해서도 M-79가 대단히 효과적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적이 보이지 않더라도 나무나 키큰 풀숲에 M-79를 사격할 필요가 있다.

 

(8) 이 작전에서 모든 박격포는 집중되어 중앙 사격 통제관(central FDC)에 의해 운용되었다. 그 결과는 대단히 만족스러웠다. 박격포는 대단히 효과적이었다. 박격포 조명탄 사격은 대대 수준에서 주의깊게 통제되었다. 박격포 조명탄의 경우 불발율이 매우 높아서, 한시간 동안 대대 방어진지에 조명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대단히 많은 탄약이 필요했다. 따라서 포병 혹은 플레어쉽의 조명 사이의 빈틈을 메우는 데에만 사용했다. 박격포만으로는 원하는 만큼의 조명을 제공할 수가 없다.

 

(9) 포병, 공군(TAC Air), 공중포병은 비행기 손실이나 비능률의 야기 없이도 동시에 사용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들이 동일한 목표에 대해 사격하는 경우, 공중포병과 공군은 포병의 대포-목표간 선상에 수직으로 비행했다. 다른 공격 항공기의 경우에는 대포-목표물 선상에 평행하게 날았다. 이는 전방 항공 통제장교(FAC)와 포병 연락장교간의 긴밀한 팀워크를 필요로 한다.

 

(10) 공격 혹은 방어 중인 적군 뿐만 아니라, 적의 가능한 증원 통로에 대해서도 포격이 이뤄져야 한다. 방어 중인 상황에서 적이 있는 곳이 발견되었다면, 이들이 공격하는 것이 아니더라도 연속적인 근접 H and I 사격이 필수적으로 가해져야 한다.

 

(11) 화력팀장을 포함한 전 인원에 대해서 포격과 박격포 유도 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강조할 필요가 있다.

 

(12) 각 소대는 아군의 전선 및 착륙장을 표시하는 데 필요한 유색 연막탄 및 대공 포판(panel; 지상군이 공중 부대의 피아 식별을 돕기 위해 지상/차량 위에 펴 놓는 특정 색상/형상의 천)을 휴대할 필요가 있다.

 

(13) 의명 사주방어진지상의 전 부대들이 유색 연막탄을 투척하는 기법은 공군과 공중포병이 사주방어진지를 식별하는 데 대단히 도움을 주었다.

 


C. 이동 (Movement)

 

(1) 이동은 주의 깊게 공세적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적을 화력으로 고착시킬 필요가 있다. 소부대 분대 규모의 사격과 이동(fire and movement)은 완벽하게 이뤄져야 한다. 이는 대단히 중요하다. 제대로 실행되지 않을 경우 피격되는 인원이 생기고, 이는 다른 인원이 사격을 멈추고 사상자를 구호하려 시도하게 만들기 때문에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상당수의 경우 이들 역시 피격당하게 되며 분대 혹은 소대의 전투 효율은 급감하게 된다. 이런 점에 비춰 보았을 때, 적과의 접촉이 이뤄졌거나 적이 있을 가능성이 높은 경우, 화력 정찰 혹은 실제 화력 및 이동을 실시함으로써 적이 먼저 사격하는 것을 억제할 필요가 있다. 이는 다른 부대가 접적 상태로 적과 총격전을 벌이고 있는 상태에서 옆으로 이동하는 경우 특히 중요하다.

 

(2) 소대 및 중대의 사격 및 기동(fire and maneuver)은 완벽하게 이뤄져야 한다. 측면은 반드시 방호되어야 한다. 화력 지원으로 측면을 어느 정도 방호하는 것이 가능하다. 상황이 허용하는 한 분대들과 소대들은 반드시 가깝게 연결되어야 한다. 북베트남군에 대해서는 밀집할 수록 유리한데, 이는 적이 은폐된 사격 장소에 숨어있다가 아군이 지나가면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3) 포병과 공중포병, 공군이 정면, 후면, 측면을 근접 지원해 주는 것은 알려진 적이 있는 지역을 통과하는 데 있어 대단한 도움을 준다. 당연한 것이긴 하지만 종종 간과하기도 하는 사항이다.

 

(4) 중대들이 방어진지 외곽이나 특정 경로를 따라 소탕작전을 전개할 경우, 대대에서는 적이 사용할만한 대형에 대해 반드시 확인함으로써 중대들이 지형과 적의 상황에 알맞게 대응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D. 전투 기술

 

(1) 1개 소대 규모의 정찰대로 착륙장에서 50-100미터 떨어진 특정 지역을 정찰하게 하고, 중대(-)는 공세적 타격부대로써 보유하는 기법은 이번 작전에서 성공적으로 사용되었다. 일단 착륙장의 경계 책임을 진 지휘관의 입장에서, 실제 공격부대가 착륙하여 지형과 주변 환경에 대해 직접 느껴보기 전에는 어느 지역을 우선적으로 점검해야 하는 지 감을 잡을 수가 없다. 그리고 중대(-)를 집결시켜 둠으로써, 대대장은 적이 공격해 왔을 경우 재빨리 반격을 가할 수가 있게 된다. 이 작전의 경우, A중대에서 착륙장 방호 임무를 인수받을 만큼 충분한 병력이 도달하자 마자 B중대는 휘하 1개 소대에서 발생한 적과의 접촉 방향으로 신속하게 이동할 수가 있었다. 회고해 보면, B중대가 착륙장에서 신속하게 움직여나갈 수 있는 태세를 갖췄던 것이 적에게는 큰 충격을 주었던 것이다. 만약 B중대가 돌출부 지역을 향해 공세적으로 이동함으로써 적을 놀래키지 못했더라면, 우리는 적과 착륙장 가장자리에서 싸워야 했을 것이고, 이는 아군의 후속부대인 A,C,D중대가 헬리콥터를 타고 오는데 대해 적에게 좋은 사격 위치를 제공했을 것이다. 본인은 처음 B중대, 그다음 A중대가 착륙장에서 벗어나 북베트남군을 상대하고 이어 C중대가 양호한 차단진지를 점령한 사실이 적으로부터 주도권을 빼앗아오는 원인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때부터 3번의 낮과 2번의 밤동안 적은 아군의 존재에 따라 반응해야 했다.

 

(2) 야간에 부대는 좁게 사주방어진지를 편성해야 하고, 클레이모어와 조명지뢰를 이용하고 참호를 구축해야 한다. 전초 및 청음초의 활용은 지형과 적 상황에 알맞게 활용해야 한다. 이 작전간에 전초와 청음초를 사용했다면 이는 자살행위와도 같은 것이었는데, 이는 적이 은폐 엄폐하기 용이했던 탓으로 적들이 이러한 전초와 청음초를 몰래 해치우기가 용이했기 때문이다. 사계가 확보되고 잘 위장된 사격호를 추천한다. 당연한 것이기는 하지만, 적 사격하에서 이렇게 하기는 쉽지 않은 경우도 있다.

 

(3) 사주방어시 해가 뜨자마자 전방 지역을 소규모 정찰대를 이용하여 점검하고, 이어서 주간 내내 주기적으로 100-200미터 가량에 대해 점검하여 침투자를 색출하고, 전장을 정리하며, 적이 공격을 위해 대규모로 집결하는 것을 방지해야 한다. 이를 수행하기 전에 할 일로는, 특정 시간에 2-3분간 사주방어진지의 전 병력들이 전방의 나무, 수풀, 개미탑 등에 맹목사격을 실시하는 일이 필요하다. 정찰 병력들이 앞으로 나가 있을 경우, 포병 사격을 먼저 해 주거나, 화력 정찰을 하는 것도 필요하다. 공중 정찰대(Air Cav Scouts) 역시 관측에 도움을 준다. 공격시에는 부대는 사격과 이동(fire and movement)을 통해 움직여야 한다. 모든 병력들은 적이 침투, 저격, 공격용 집합을 할 때 앞이나 위에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All men must give the enemy the capability of being to the front and overhead as infiltrators, snipers, or massing for an attack).

 

(4) 대대 지휘부는 공격시 292 안테나를 꼭 소지해야 하고 가능한 한 항상 이를 설치해 두어야 한다. D중대는 내 예비 지휘소였는데, 공격시에 292 안테나를 하나 갖고 있었고 이를 설치했다 - 이는 정말로 소중했다.

 


E. 보급, 지원, 전투근무지원 (Supply, Support, Services)

 

(1) 공격 간에는 최소한의 장비만을 갖고 다녀야만 한다. 식량 1끼분, 판초우의, 물 2통, 소금 알약, 그리고 다량의 탄약이다.

 

(2) 사상자는 심각한 문제다. 사격으로 개개인이 고착되었을 때, 한명이 사상자가 되면 그를 구하려는 여러 명을 위험에 빠뜨리게 된다. 부상자를 구출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엄호사격이 필요하다. 각 계층의 지휘자들은 사상자를 퇴출시킬 때 주의깊게 행동해야 한다. 나는 사상자들을 구출하는 과정에서 많은 지휘자들을 잃었다. 부상자는 가려진 장소로 옮겨 치료할 필요가 있다. 병력들은 부상자에 대해 신경쓰지 않도록 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적과  임무에 대하여 망각하게 된다. 사람 한명을 퇴출시키는 데에는 최대 4명까지가 소요되며, 이는 해당 부대에 중요한 시점에 문제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3) 이 작전에서 사상자를 접전지역 밖으로 후송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편제표상에 들것 취급병이 포함되었다면 상당한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실전에서 드러난 바와 같이, 부상자를 퇴출시키는데 3-4명의 전투병이 사용되어야 했다 (걸을 수 있는 부상자라도 보통 최소한 한명은 필요).

 

(4) 인원이 부상당하거나 사망한 경우, 그 인원의 무기와 장구류가 그 인원으로부터 분리되는 경우가 많았다. 군수 담당 대표(S-4 representative)로 장교 혹은 부사관이 대대 전방 구호소(battalion forward aid station)나, 전방 치중대(Forward Support)의 수집 중대에 나와있을 필요가 있다. 우리 장비의 일부는 인원과 함께 퀴논(Qui Nhon)까지 쭉 후송되었다. 또한 다수의 M-16이 망가졌기 때문에 전투 지역에서 많은 교체 수요가 있었다. 그 결과 우리는 다수의 무기를 전투 지역에 재불출용으로 보관했다. 아군 전사상자와 함께 보냈던 노획 적 무기들은 다시 볼 수가 없었다. 목표 지점에서 적과 싸우고 있는 부대 지휘관은 일단 적아의 장비가 헬리콥터를 타고 떠나가면 이에 대한 통제를 잃게 된다. 후방 여러 장소로 보내지는 이러한 장비들에 대한 통제를 위해 보다 효과적인 후방지원 시스템이 필요하다.

 

(5) 식량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전투가 격심한 가운데에서는 어느 인원도 먹는데 그리 신경쓰지 않았다; 그러나 물 문제는 대단히 심각했다. 주변에 개울 같은 것이 없는 상황에서는 특히 그 공급량에 신경쓸 필요가 있다.

 

(6) 패스파인더 팀은 대단히 훌륭했다. 이들이 14일 16:30에 도착하기 전까지, 모든 진입 헬기들을 대대 지휘망을 통해 유도해야 했다. 모든 대대 규모 공세에서 패스파인더 팀은 꼭 필요하다.

 

(7) M-16 탄창을 한발씩 재장전하는 데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우리가 맞닥뜨렸던 격심한 전투 상황에서는 이는 결정적 상황에서 상당한 시간을 잡아먹었다. 특히 적의 야습때가 심각한 문제였다. 또한 격렬한 총격전이 발생할 때 총알 수를 기억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었다. 본인 생각에는 과거 M-1 소총탄 8발씩 들어있는 클립을 밴돌리어에 담아 지급했던 것처럼, 탄약 재보급시 플라스틱 형태로 된 1회용 탄창을 지급하는 것이 해결책이라고 본다. 또한 현재의 M-14 탄입대는 포복시 배에 무리를 주는 문제가 있다.

 

(8) 각개 병사는 위장 기술에 있어서 최소한 북베트남 병사만큼 잘 할 필요가 있으며, 이동을 은폐 및 엄폐하기 위해 지형과 식생을 잘 이용할 필요가 있다. 이는 꼭 강조되어야 한다.

 


F. 적 북베트남 정규군

 

(1) 이들은 잘 훈련되었다. 이들은 공격적이다. 이들은 풍부한 자동화기와 탄약으로 무장하고 잇다. 이들은 3-5개의 중국제 방망이 수류탄을 휴대한다. 이들은 소프트볼 공 크기의 주먹밥을 휴대하며, 대부분이 방수 플라스틱과 해먹이 포함된 침낭을 휴대한다. 무기는 잘 정비하여 다닌다.

 

(2) 이들은 위장에 전문가이며, 모든 은폐 엄폐 요소들을 사용한다. 이들은 아군의 지원 화력을 무력화하여 그들에게 가능한 유리한 상태에서 싸우기 위하여, 가능한 한 아군에 근접할 때까지 소화기와 박격포, 대전차 무기만을 가지고 은밀하고 신속하게 접근한다. 강력한 화력 지원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이들은 전문적인 위장 기술이나, 집단 공격, 침투 공격, 잔류 습격조 등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3) 적은 사격에 뛰어나다. 본인은 부상당하거나 전사한 부하들을 돌보는 과정에서 대다수가 머리와 그 근처에 피격당했다는 사실에 놀랐다. 적들은 지휘자들을 노린다 - 크게 외치고 있거나 뭔가를 가르키는 사람, 무전으로 이야기 하고 있는 사람들을 노린다. 또한 무전기를 운반하고 있는 사람도 노린다. 이들은 계급장을 달고 있는 사람들- 특히 팔에 줄무늬가 달린 부사관들 - 에게도 집중하는 것 같다. 나는 이 전쟁에서 부사관들이나 기타 병사들이 사격을 불러일으키는 표시를 달고 다닐 필요가 있을지가 의심스럽다. 소부대 내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지휘자가 누구인지 다 안다. 기지에 돌아와서는 지휘자들이 계급장을 달아야 한다. 적과 싸우는 작전 중에는 아무 표시가 없는 작업복(fatigues)을 입어야 한다.

 

(4) 공격시, 우리와 대적하고 있는 북베트남 부대가 집단 공격 전술을 사용하기 전에 경박격포나 대전차 로켓 사격을 실시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내 생각에 대전차 로켓사격의 일부도 박격포 사격으로 오인되기도 하는 것 같다. 적들은 종종 50-75명 규모의 집단을 이뤄 포위 기동을 실시하기도 한다. 적들은 기관총을 대단히 잘 이용하며 제압사격(grazing fire)의 가치에 대해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 야간에 적들은 소수의 병력을 아군 진지 위로 침투시킨다. 이 적들은 풀이 많은 개미탑 위나, 나무, 기타 근접 사격에 유리한 장소에 기관총을 설치한다. 이들은 야간에 아군 방어 진지를 찔러보는 데 능하며 아군이 사격하도록 강요하는 데에 많은 노력을 쏟는다.

 

(5) 적이 박격포, 포병, 공군, 공중 포병 등의 강력한 포격을 받았을 때에는 다소 무질서해지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들은 물러서지 않는다. 적은 네이팜과 백린탄을 확실히 싫어한다.

 

(6) 적에게는 무전기가 없는 것 같다. 지휘자들은 통상 육성으로 지휘한다. 11월 14일-15일 야간에는 나팔이 사용되었다. 또한 산에서 밤에 이들은 신호등을 사용했다.

 

(7) 적들은 죽을 때까지 싸운다. 부상당했어도 이들은 소화기와 수류탄으로 싸움을 계속 한다. 적들은 부상당했을 때 광신적으로 변하며 접근시에 대단히 주의할 필요가 있다. 아군 상당수가 부상당한 적군에게 피격당했다.

 

(8) 적들은 저들의 사망자 및 부상자의 신체와 장비를 회수하는데 광적으로 노력을 기울인다. 적들은 이를 포기하지 않으며, 이를 위해 야음이나 수풀, 개미탑, 기타 은폐 요소들을 활용한다. 우리는 적군 사망자들 다수가 발목에 밧줄이 묶여있는 것을 목격했다. 또한 아군 사망자 2명에 대해서도 비슷한 밧줄이 발목에 묶여 있는 것도 보았다.

 

(9) 적과 얼굴을 맞대본 일부 부하들의 진술에 따르면 일부 북베트남 병사들이 "(약에)취해있는"("hopped up") 상태로 보였다고 했다. 이들이 이 결론을 내린 근거 중의 하나로는, 적들이 피격당한 뒤에도 쓰러지기 전에 몇발자국을 더 걸어갔다는 점이었다. 이런 경우에는 고속의 M-16 탄환이 적을 깨끗히 관통하는 바람에 즉각적인 저지효과는 발휘하지 못한 것이 아닐까 한다. 또한 어떤 인원은 일부 적들이 사격을 받고 있는 중에도 어깨걸어 총(at sling arms)을 한 상태로 움직이는 것을 봤다고 했다. 한 부사관은 약 30명 규모의 적들이 휘하 소대의 측면 근접 사격에 노출되어 박살이 나는 상황에도 그냥 쭉 걸어가는 모습을 보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10) 우리가 만난 북베트남군이 잘 쓰던 전술은 공세적인 소부대 포위기동 전술이었다. 또 하나는 2-3명의 아군에 대해 6-10명의 적군에 의한 급속 공격이었다.

 

(11) 우리는 적의 시체에서 아군 전사자의 인식표와 지갑이 들어있는 경우를 몇 건 발견했다.

 


VIII. 상기 모든 것 중에서 본인이 강조하고 싶은 바는 다음과 같다:

A. 우리는 반드시 창의적이어야 하며, 아군의 화력 지원의 우세를 최대한 활용하여 적이 근접해 오기 전에 적을 무찔러야 한다. 이는 M-79 유탄발사기와 수류탄을 이용하여 적을 최대한 멀리 떨어지게 하여 포병, 공군, 공중포병이 적을 해치울 수 있게 하는 것도 포함된다.

 

B. 우리는 아군 인원 특히 보충병에 대해서 소부대 사격과 이동(fire and movement), 사격과 기동(fire and maneuver)에 대해 익히도록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만약 이를 소흘히 한다면 죽지 않아도 될 아군이 죽게 될 것이다.

 

C. 전장의 지휘관은 반드시 지속적으로 어떤 미래가 닥칠지 혹은 닥치는 것이 가능한 지에 대해서 고려해야 하며, 그 미래가 닥쳐오기 전에 준비 조치를 할 필요가 있다. 적에 대한 고려, 화력지원에 대한 고려, 탄약/물/의무 물자 공급에 대한 고려, 적 행동에 대한 아군의 대응방식, 그외 특정 상황에 대한 모든 다른 문제들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 또한 지휘관은 전투 내내 행동하는 것을 주기적으로 멈추고 객관적 상황을 판단해볼 필요가 있다 -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해야 하지만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이 무엇이고, 이뤄지지 말아야 하는데 이뤄지고 있는 일은 무엇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해롤드 G. 무어, 대령, 보병)


 

출처 : FocusWar
글쓴이 : 박용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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