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문출처 : 미육군 지휘참모대학 (http://www.cgsc.edu/carl/download/csipubs/wombwell_32.pdf) pp 151 ~ pp 156 >
(5장 계속)
해적들은 도착 직후 해안에서 육지가 보이는 지점에 정박한다. 이제부터 선상에서의 생활은 쳇바퀴를 돌기 시작한다. 해적들은 셈로우 호의 선원들이 선박 뒷편에서만 생활하도록 하였다. 비록 선원들이 학대당하지는 않았지만, 음식은 부족했고 식수도 배급제로 제공되었다. 한편 해적들의 경우에는 4~5일마다 한번씩 휴식을 실시했다. 해적들은 평소 무기를 손질하거나 주갑판에서 훈련을 하고, 카트(khat) - 암페타민(amphetamine)과 비슷한 흥분제가 들어있는 토착 식물임 - 를 씹거나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해적들은 음식도 배불리 먹었다. 해적들은 육지에서 염소와 감자, 토마토, 양파 등을 가져왔으며, 또한 WFP의 쌀도 멋대로 이용했다.
한편 소말리아인들은 케냐에 기지를 둔 선사측과 WFP측에 동시에 협상을 실시하여 몸값으로 50만 달러를 뜯어내고자 하였다. 선사의 사장은 자신의 가난한 회사 입장에서는 몸값을 낼 능력이 없다고 주장하였다. 유엔과 케냐, 스리랑카, 탄자니아 관료들로 이뤄진 그룹이 소말리아로 날아가 이 상황에 대해서 과도정부 및 부족 지도자들과 논의하였다. 협상이 실패로 돌아가자 WFP는 소말리아로의 해상원조지원을 중단하게 되었다.
9월 말, 해적들은 셈로우 호를 동원하여 또다른 해적질을 시도하게 된다. 이집트 시멘트 운반선 MS 이븐 바투타 호(MS Ibn Batuta)가 9월 23일 경 셈로우 호 근처를 지나고 있었다. 해적들은 셈로우 호를 모선으로 활용하여 이븐 바투타 호에 가까이 접근한 뒤, 고속정을 동원하여 이븐 바투타 호를 탈취하였다. 협상 끝에 이븐 바투타 호는 셈로우 호를 견인하여 엘 마안(el Maan)까지 가기로 하였는데, 그 이유는 당시 셈로우 호가 연료가 바닥난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이후 해적들은 두척 모두 석방하고 엘 마안까지 가게 놔 두었으며, 셈로우 호는 엘 마안에서 WFP의 쌀을 하역하게 된다. 비록 WFP에서는 나쁜 선례를 남기지 않기 위하여 몸값 지불을 하지 않았지만, 선사에서는 해적들에게 13만 5천달러를 지불하였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해적선풍이 몰아닥치게 된다. 셈로우 호가 석방된지 5일 뒤인 10월 8일, 소말리아 해적들은 MV 토레겔로우 (MV Toregelow)호를 납치하는데, 이 배는 셈로우 호에 식량과 연료를 실어나르던 중이었다. 이어 10월 12일에는 유엔 원조선인 MV 밀쪼우 호(MV Miltzow)가 해적들에게 납치당한다. 해적들은 밀쪼우 호는 아무 몸값도 받지 않은 채 2일만에 석방한다. 10월 19일에는 소말리아 해적들이 MV 파고니아 호(MV Pagonia)를 납치하는데, 이 배는 철광석을 싣고 있던 우크라이나 선박이었다. 해적들은 이 배의 석방에 70만 달러를 요구한다.
소말리아 해적들이 더욱 더 악명을 떨치게 된 것으로 2005년 11월 5일 이른 아침, 2척의 고속정에 분승한 해적들이 미국의 호화 여객선 시번 스피리트 호(Seabourn Spirit)를 공격했던 사건을 들 수 있다. 이 여객선은 당시 151명의 승객과 161명의 선원을 태우고 있었으며,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싱가포르까지의 16일간의 항해 과정에 있었다. 05시 50분 경 해적들이 공격했을 때, 선장은 승객들을 깨운 뒤 위험을 경고하였고, 이어 배의 중심부였던 식당칸(dining room)으로 집합하도록 지시하였다. 선장은 동시에 LRAD 방어시스템을 가동하고 배의 속도를 높여 해적들을 뒤쳐지게 만들었다. LRAD 시스템은 비살상 무기로서, 조작자가 고주파 음향을 특정 방향으로 지향시켜 적을 쫓아내버리는 기능을 하게 되어 이었다. 그러나 위험한 상황은 끝난 것이 아니어서, 소말리아인들은 소총 사격을 하고, 적어도 3발의 RPG를 발사하였으며, 이 중 1발은 배에 명중한다. 다친 승객은 없었으나, 선원 중에 1명은 이 과정에서 파편상을 입는다.
이 공격으로 말미암아 미국과 기타 국가들은 보다 강력한 반응을 결심하게 된다. 2006년 1월 21일, USS 윈스턴 처칠 호(USS Winston Churchill)가 소말리아 모선이었던 다우 선박 알 비사랏 호(dhow Al Bisarat)를 나포한다. 해적감시센터(Piracy Reporting Center)의 보고에 근거하여, 윈스턴 처칠 호는 1월 20일 오후 모선으로 의심되는 선박의 위치를 확보한다. 이 다우 선이 정선을 거부하자, 윈스턴 처칠 호는 현측에 경고사격을 가했고, 이로써 신속한 정선을 이끌어내게 된다. 다우 선박에 올라간 윈스턴 처칠 호의 선원들은 10명의 해적들과 무기들을 발견한다. 이 배의 선원들은 체포되어 케냐로 넘겨졌고, 이곳에서 7년의 징역형을 선고받는다.
몇달 후인 2006년 3월 18일, USS 곤잘레스 호(USS Gonzalez)와 USS 케이프 세인트 조지 호(USS Cape St. George)가 모선으로 의심되는 선박과 총격전을 벌인다. 2척의 미국 선박들은 2척의 작은 보트들을 끌고가던 의심스러운 어선용 다우 선박을 따라잡았다. 곤잘레스 호의 선원들이 다우 선박에 올라갈 준비를 하던 중, 이들은 RPG로 무장한 인원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소말리아인들이 곤잘레스 호에 사격을 개시하여 여러차례 명중탄을 내자, 양개 미국 선박들도 반격한다. 미국인들은 다우선을 격파하고 해적 1명을 죽였으며, 5명을 부상시킨다. 더하여 7명의 다른 해적들도 붙잡는다.
2006년 6월, 이슬람 법정연합은 모가디슈를 장악하고 주변지역 대부분도 석권한다. 이슬람 민병대는 해적들이 이슬람 법정연합에 대항하는 군벌들과 한패라고 생각하여 2006년 후반 기간 동안 해적소굴 상당수를 소탕하였다. 그 결과 2006년에는 소말리아 인근에서 단지 20건의 해적질만이 발생한다. 그러나 2007년 에티오피아 군대가 이슬람 법정연합을 몰아낸 이후, 해적질은 다시 기승을 부리게 된다. 위험에서 벗어난 해적들은 2007년 다시 44척의 선박을 공격대상으로 삼게 된다.
해적들은 또다시 WFP의 선박을 납치한다. 2007년 2월 25일, MV 로젠 호(MV Rozen)가 납치되어 40일간 억류당한다. 이 배는 당시 소말리아의 베르베라(Berbera)와 부사소(Boosaaso)에 구호품을 전달한 뒤 푼트란드 주 근방에서 납치당한다.
2007년 미해군은 2차례에 걸쳐 해적들과의 교전에서 실패를 맛보게 된다. 2007년 6월 2일 해적들이 덴마크 선박 다니카 화이트 호(Danica White)를 납치하였을 때, 미군 군함이 대응하였다. USS 카터 홀 호(USS Carter Hall)는 다니카 화이트 호의 선수 위로 경고사격을 하고 신호탄을 발사함으로써 이 배가 소말리아 영해로 들어가지 못하게 하려고 하였다. 비록 카터 홀 호는 이 납치를 막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이 배의 뒤에 견인되고 있던 해적선 2척을 파괴하는데는 성공하였다. 카터 홀 호는 이 상선이 소말리아 영해로 진입하면서 교전을 포기한다. 2007년 10월 28일에는 일본 화학 운반선 골든 노리 호(Golden Nori)가 아덴만에서 납치당한다. 골든 노리호의 구조신호에 USS 알레이 버크 호(USS Arleigh Burke)와 USS 포터 호(USS Porter)가 대응한다. 미국 선박들은 선수 윗쪽으로 경고사격을 하여 공격을 저지하려 하였으나 해적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결국 미국인들은 운반선 뒤쪽으로 견인되던 작은 해적보트 몇척을 격침시키긴 했지만, 해적들이 이 배를 소말리아 영해로 끌고가는 것은 막지 못한다. 이 2 사례들은, 제약이 많았던 교전규칙으로 말미암아 해군이 보다 강력하게 해적들을 막지 못한 상황이었다.
3번째 교전은 결과가 좀 더 괜찮았다. 2007년 10월 30일, 소말리아 해적들은 북한 화물선 대홍단 호(MV Dai Hong)를 납치하고자 시도한다. USS 제임스 E. 윌리엄스 호 (USS James E. Williams)는 대홍단 호의 구조신호에 헬리콥터를 파견하여 반응한다. 현장에 도착한 헬리콥터 승무원들은 해적들에게 브릿지-브릿지 무전으로 교신을 시도하여 무기를 내려놓으라고 명령한다. 해적들이 헬리콥터로 인해 주의가 분산된 기회를 틈타 선원들이 소말리아인들을 무찔러버린다. 육박전 과정에서 해적 1명이 사망하고 3명이 부상을 입는다. 선원 3명도 부상당한다.
이븐 유노스 호(Ibn Younos)의 선장과 선원들의 행동은 방어 행동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2007년 5월 14일, 소말리아인들은 이 배에 대한 탈취 시도를 실패한다. 1시간 이상 벌어진 공격 과정에서 해적들은 선박의 함교를 자동화기로 소사하였으며, RPG로 인해 선원들의 거주공간이 파괴되었다. 그러나 이븐 유노스 호의 선장은 항복을 거부하였다. 그 대신, 속도를 올리고 지그재그 코스를 택함으로써 해적들을 따돌리게 된다.
2008년은 소말리아 해적들에게 기념비적인 해이다. 이들은 2008년 동안 111척의 배를 공격하여 44회의 성공을 거두었다. 이러한 노력으로 대략 3천만 달러에서 8천만 달러에 해당하는 금액을 몸값으로 벌게 된다. 소말리아 해적들은 2008년 기간 동안 지속적으로 뉴스에 등장하게 된다. 그리고 이 기간에는 MV 파이나 호(MV Faina)와 유조선 시리우스 스타 호(Sirius Star)와 같은 드라마틱한 사건들도 있었다.
또한 해적들에 대한 공격도 벌어졌는데, 즉 프랑스 군대가 르 포낭 호(Le Ponant)를 납치한 해적들을 붙잡았던 사건이었다. 프랑스 호화 요트 르 포낭 호는 2008년 4월 4일 소말리아 해적들에게 납치당한다. 당시 해적들은 잭팟을 낚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들 6명의 해적들에게 이것은 잘못된 꿈에 불과했다. 이 드라마는 4월 초, 9명의 해적들이 빌린 2척의 고속정을 이용하여 예멘 트롤 어선을 납치한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이들은 이어 트롤 어선을 모선으로 삼아 보다 먹음직스런 목표를 찾기 위해 아덴만으로 향한다. 이들은 2008년 4월 4일, 돛 3개의 850톤짜리 요트를 발견한다. 해적 중의 3명이 고속정 한척을 타고 요트에 접근한다. 르 포낭 호의 선원들은 소화용 호스를 이용하여 저항을 시도하였으나 해적들은 이들에게 사격을 개시한다. 다른 해적들도 트롤 어선을 버리고 공격에 참가한다. 해적들은 금방 비무장 선원들을 제압하고 배를 가라드(Garrad)로 향하게 한다. 이곳은 지역민들이 경비업무 및 기타 여러가지 서비스를 해적들에게 제공하는 지역이었다. 해적들은 몸값을 최종적으로 2백만 달러로 정한다. 이들을 돕는 댓가로 마을 주민들은 각각 50달러씩 받기로 하였고, 또한 해적들은 각각 11,000달러에서 20,000달러까지 챙길 계획이었다.
한편, 프랑스인들은 반격할 군사력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우선 프랑스 프리깃 함인 코만단트 부앙 호(Commandant Bouan)가 해적들의 이동을 추적하였다. 이어 헬기모함 잔다르크 호(Jeanne d'Arc)가 가세하였다. 해적들이 몸값을 받은 후 30명의 승무원들을 석방한 직후인 4월 11일, 헬리콥터에 탑승한 프랑스 코만도들이 공격을 개시했다. 프랑스인들은 자동차로 도주를 시도한 9명의 해적 중에서 6명을 생포한다.
해적들이 MV 파이나 호를 나포한지 며칠 뒤인 2008년 11월 15일, 다른 소말리아 해적들은 초대형 원유 수송선 시리우스 스타 호를 나포함으로써 진정한 잭팟을 낚게 된다. 이 유조선에는 약 2백만 배럴의 원유가 실려 있었는데, 이는 사우디 아라비아의 일일 원유 생산량의 25퍼센트에 해당하는 양이기도 했다. 이 사건은 대부분의 해양 전문가들을 충격에 빠뜨렸는데, 이는 이 배가 희망봉을 거쳐 미국으로 향하는 항해 중에 납치되었을 당시 소말리아로부터 450마일 동쪽 지점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해적들이 그렇게 먼 거리에서 그렇게 커다란 배를 납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대단히 드물었다. 그러나 10명의 해적들은 조차실에 사격을 가하여 정선시킴으로써, 이 배를 단지 20분만에 장악한다. 해적들은 이 배를 하라데레로 끌고가 2500만 달러의 몸값을 요구한다. 해적들은 나중에는 요구사항을 점점 낮췄고 결국 2009년 1월 9일, 몸값 3백만 달러를 받은 뒤에 배를 석방한다. 다만 해적들 중 일부는 돈을 나눠갖고 육지로 향하던 중에 수장당한다.
이러한 드라마틱한 공격 외에도 2008년은 또한 해적 소탕을 위한 다국적 임무부대가 보다 공세적으로 나선 측면에서도 두드러진 해이다. 10월에는 프랑스 프리깃 함이 아덴만에서 해적 9명을 생포한다. 11월에는 HMS 컴버랜드 호(HMS Cumberland)가 덴마크 화물선(a Danish cargo ship)을 납치하려던 해적 의심선박을 격침시킨다. 컴버랜드 호는 네덜란드 선박(Dutch ship) 근방에 있는 다우 선박을 발견하고 정선을 시도한다. 이 배가 거부하자, 컴버랜드 호는 탑승부대를 고속고무보트(rigid inflatable boat)에 태워 보냄으로써 강제 정선을 시도했다. 해적들은 이에 영국 선박에 발포한다. 총격전 과정에서 해적 2명이 사망하고 1명이 치명상을 입었으며, 다른 5명도 생포당한다. 1주일 후, 이들은 케냐로 보내졌고, 케냐에서는 이들을 기소하는데 동의한다. 얼마 후, 인도 해군의 타바르 호(Tabar)가 해적모선으로 의심되는 선박과 교전하여 격침시킨다. 인도 해군은 잔해 속에서 1명의 캄보디아 선원이 구출된 후에야 이 공격 과정에서 무고한 15명의 어부들까지 해적들과 함께 죽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 사건은 합법적인 어선과 해적선을 구분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잘 보여주는 사건이기도 하다.
2009년 초, 소말리아 해적들이 점차 대담해짐에 따라 연합군 역시 공세의 고삐를 조이게 된다. 그러나 해군이 지나치게 호전적이 되는 데에 대한 우려 또한 크게 존재했다. 지금까지는 해적들이 그래도 이성적으로 행동하여 배와 화물, 선원들의 안전을 보장해 왔다. 만약 국가들이 너무 공격적이 되면, 해적들이 지금까지의 태도를 바꿀지도 몰랐다. 실제로 18세기 및 19세기의 사례들에서 그래왔다. 18세기 서인도제도의 해적들은 대영제국이 보다 정기적으로 자신들을 핍박하자 점점 더 잔인해졌다. 19세기에는 해적들을 처벌하는 정책이 완전히 정착된다. 그 결과 19세기 해적들은 16세기 해적들에 비하여 포로들을 더 잔인하게 대하였는데, 이는 생존자가 남게 되면 자신들에 대해 불리한 증언을 할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소말리아 연안에서의 상황은 단지 해군력 만으로 해적질을 소탕하는 것이 부질없는 일이라는 사실을 강조해주고 있다. 강력한 해군 함대의 현시 - CTF 50 - 와 첨단 감시장비의 활용에도 불구하고, 연합군 임무부대로서는 소말리아 인근 1백만 평방마일에 해당하는 지역을 모두 커버할만한 능력이 되지 못했다. 소말리아인들은 여전히 자유롭게 활개쳤다. 최근 미국과 프랑스 군대가 해적 몇명을 죽이긴 했지만, 소말리아인들은 금방 4척을 더 나포함으로써 반응했다. 이것은 마치 해적들이 연합군에게 해적소탕은 불가능한 것이라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 같았다. 해적소탕부대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책은 단지 주요 항로를 경비하면서 선장들로 하여금 이들 연합군이 지키고 있는 항로로만 다니게 권고하는 것 외엔 없었다.
결론적으로 소말리아에서 창궐하고 있는 해적질은 단지 지상에서만 해결할 수 있다. 이것은 단지 지상의 해방구를 공격하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공격은 일시적이며 제한적인 가치만을 갖는다. 소말리아의 해적질 문제는 소말리아 자체를 치유하는 것으로서만이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소말리아는 아직도 사회적, 정치적 혼돈 속에 있으며, 현재의 과도연방정부 역시도 기존의 13개 정부들 이상으로 잘 해내리라고는 기대할 건덕지가 없는 상태다. 1990년대 초의 미국의 소말리아에서의 경험을 살펴보았을 때, 미국 정책입안자들이 이 문제에 개입하는 것을 꺼려하는 것도 이해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과거의 해적질의 역사를 살펴보았을 때, 이러한 해적질의 창궐은 우월한 해양국가 - 미합중국 - 가 바다와 육지에서 동시에 단호한 노력을 가했을 경우에만 해소될 수 있다.
(5장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