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세계대전

[스크랩] [번역] The Galipoli Campaign - Introduction. 1 of 14

박용수 2014. 10. 27. 14:31

< 원문 : (http://www.nzhistory.net.nz/war/the-gallipoli-campaign/introduction) >

 

  갈리폴리 전역

 

  "우리는 갑작스런 죽음이라는 그림자 아래에 묻혀 살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평소 시대와는 매우 다르게 사물들을 본다. 삶은 통상 복잡하지만, 여기서는 잔혹하게도 단순하다. 먹을 수 있을 때 먹어라, 도와줄 수 있을 때 도와주어라, 잘 수 있는 때와 장소라면 자라,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이빨을 드러내고 웃으며 굳건히 참아내라. 기계적인 미소조차도 걱정하는 표정보다는 낫다. 사람들에게 걱정하는 것이란 좋지 않은 것이다."

 

  Percival Fenwick, 갈리폴리에서, 군의관, 1915년.

 

  매년 4월 25일 - Anzac Day - 에 뉴질랜드인들(그리고 호주인들)은 1915년의 갈리폴리 상륙작전을 추모한다. 이 날, 수천명의 젊은 청년들이 그들의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터키의 갈리폴리 반도에서 해안가를 강습했다. 장장 9개월간, 뉴질랜드인, 호주인, 그리고 프랑스와 영국의 동맹국 사람들이, 가혹한 환경과 필사적으로 조국을 수호하려는 터키인들에 대항하여 전투를 벌였다.

 

(Anzac Cove 에서의 상륙)

 

  전역이 종료된 시점에, 총 12만명 이상의 사람들이 사망했다. 터키 병력 8만명 이상, 영국과 프랑스 병력은 호주 병력 8500명 이상을 포함하여  4만 4천명 이상이 죽었다. 사망자 중에는 2721명의 뉴질랜드 젊은이들도 있었는데, 이 숫자는 상륙한 인원의 약 1/4에 해당하는 것이다.

 

  세계대전의 역사에서 갈리폴리 전역은 별다른 흔적을 남기지 못했다. 비록 참혹하긴 했지만, 그 사상자의 숫자도 프랑스와 벨기에에서 죽은 숫자에 비하면 미미한 축에 속했다. 그러나 뉴질랜드와 호주, 터키에게 있어서, 갈리폴리 전역은 국가관이라는 것을 양양하는 데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한 사건이다.

 

 

출처 : FocusW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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